"정춘수 동상 철거 이유 밝히겠다"

민족문제연구소, 정춘수 동상 좌대 앞 안내문 설치키로...청주시 "이미 안내문 있어 불허"

등록 2004.11.02 17:18수정 2004.11.02 20:00
0
원고료로 응원
청주시 우암산 자락에 위치한 삼일공원에는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권동진, 신홍식 선생과 함께 감리교 목사 정춘수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러나 정춘수 목사의 친일행적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부 청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1996년 2월 8일 2·8 독립선언 77돌에 맞춰 정춘수 동상을 철거했다.

철거 과정에서 파손된 정춘수 동상은 청주시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상이 있던 좌대 아랫 쪽에는 청주시가 부착한 다음과 같은 아주 작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a

철거된 정춘수 목사 동상 좌대 앞에는 작은 안내문만이 설치되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정춘수 선생 동상은 1996년 2월 8일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친일 행적과 관련 파손되고 철거되고 좌대만 남아있음

그러나 이 안내문만을 놓고 보면 정춘수 목사의 구체적인 친일행적이 무엇인지,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심지어 안내문을 읽다 보면 정춘수 '선생'의 동상이 부당하게 철거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지부장 김진한)는 공원을 찾는 많은 시민들에게 정춘수의 친일행적과 함께 동상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정을 알리기 위해 새로 안내문을 자체 제작해 설치하기로 하고 청주시 측에 설치 허가를 요청했으나 시 측에서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는 이유로 새 안내문 설치를 불허했다.

이에 대해 김진한 대표는 "청주시는 정춘수의 친일행적을 굳이 감추려는 듯한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하며, 청주시민들은 물론 성지를 찾는 많은 분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림으로써 역사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적극 부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 설치하려는 안내문 초안
청오 정춘수(靑吾 鄭春洙 창씨명 禾谷春洙1875∼1951) 목사 동상 철거 안내문

▲ 정춘수 목사
청주출신인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감리교 목사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으로 참가해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38년 5월에는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수난을 당하면서 그 해 9월에는 '전향 성명서'를 발표한다.

전향 발표 이후 일제의 비호를 받아 조선감리교 제4대 감독으로 피선된 그는 본격적인 친일행각을 벌인다. 1940년 10월에 발표한 감리교 혁신안에서는 민주주의·자유주의의 배격, 일본 정신의 함양, 일본 메소디스트 교회와의 합동, 일본적 복음의 천명 등을 규정하고, 심지어는 모든 교회의 애국반 활동 강화와 교도로 하여금 지원병에 다수 참가하게 할 것까지 규정하고 있다.

1941년 10월과 1942년 2월에는 교회의 철문, 철책은 물론 교회 종도 헌납해 성전(聖戰) 완수에 협력할 것으로 요구하였고 심지어 1944년 3월에는 교회를 통폐합시켜 그 나머지를 팔아 일제에 전투기 헌납을 앞장서기도 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감리교 교역자들을 모아 한강과 남산에서 각각 신도 의식과 신사 참배를 하기도 했다. 이 밖에 총진회(總進會)라는 일본 경찰과 밀착한 일종의 교회 내 '비밀 경찰' 조직의 회장을 맡아 교인들의 사상을 통제하기도 했다.

정춘수는 교계 안에서의 친일협력뿐만이 아니라, 1941년 초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그 해 10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맡았으며, 1944년 말경에는 조선전시종교보국회 이사를 맡아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올라 충북 청원군 강외면 궁평리에 머물다가 1951년 10월 27일 피난지에서 79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곳 3·1공원에는 3·1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권동진, 신홍식 선생과 함께 정춘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이와 같이 정춘수의 친일행적이 널리 알려지면서 의분을 느낀 청주시민들은 1996년 2월 8일 2·8 독립선언 77돌에 맞춰 [충북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의 이름으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친일청산을 통해 역사 정의를 실현코자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정춘수 동상을 철거하여 현재는 5인의 동상만이 모셔져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5. 5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