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0 13:22최종 업데이트 23.07.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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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해 무장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기 위해 트럭에 탱크를 싣고 있다. 지난 23일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바그너 그룹 후방 캠프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지시했다고 비난하며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나 벨라루스의 중재로 하루 만에 반란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2023.06.25 ⓒ 연합뉴스

 
6월 23일 러시아의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를 향한 북진을 시작할 때, 21세기 러시아 위기의 베일이 마침내 벗겨졌다. 그 위기의 중심에는 푸틴이 있지만 위기가 단지 그의 것만은 아니다. 소련 붕괴 후 한 세대를 거친 러시아는 여전히 국가구성의 정신적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략은 러시아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혼탁한 이념적 혼란이 빚어낸 사건이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도 그랬고 그에 앞선 2008년 조지아 침공 역시 거대국가 '러시아연방'이 당면하고 있는 근본적 정체성 부재 또는 결핍에서 비롯된 표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러시아를 지배한 소비에트 이념은 분열의 틈을 주지 않았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모두 소비에트 이념 아래서 역할을 담당했고 그 아래에서 공식적으로 15개의 공화국, 실제로는 훨씬 많은 민족들이 연방체제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이념이 붕괴한 이후의 러시아 제국주의, 민족주의는 지표를 잃었고 그 불안정성은 연방국 러시아의 응집력을 수시로 뒤흔들었다.

친서방 노선을 견지했던 보리스 옐친 초대 대통령은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만 심어주었다. 공산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에만 급급했던 서방 국가들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당면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에는 방관했다. 그리고 러시아 국부는 빠르게 외국으로, 신흥재벌들(올리가르히) 주머니로 빨려 들어갔다.

러시아의 정신적 구심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콘크리트 지지벽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때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다는 그들의 공허한 자존심은 시선을 과거에 머물게 했고 결국 소비에트 이념이 사라진 빈 자리에 남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러시아인들의 이 공허함을 파고 들었다. 사실 20세기의 러시아에도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융화(融化)시킨 팽창주의의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P=연합뉴스

 
물론 러시아 팽창주의에는 서쪽 세계에 대한 동경과 질투-경계심 또한 혼재돼 있다.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 러시아도 외부세력에 대한 결사적 저항과 격퇴의 기억을 국가의 국경일로 삼는데 나치독일의 패망을 기념하는 5월 9일 '승전기념일'이 그렇다. 원래 큰 의미를 갖지 않던 이날은 소비에트가 패망한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를 상징하는 주요 국경일로 자리 잡았다.

공산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국가 정체성의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사실 유럽의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5월 8일 또는 9일을 전승일 또는 종전일로 기념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나치즘과 군국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종전일'로, 또는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의 '제로의 시간'(die Stunde Null)으로 이 날을 부르고 있다.

러시아의 위대함을 기리는 날이 되길 바라는 그들에게 김빠지는 일이었을까? '혁명'을 대체할 '국민통합'으로서 승전기념일은 점점 그들만의 배타적 기념일로 삼기에 너무 보편적인 날이 되어 있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정신을 하나로 묶을 새로운 국경일을 생각해내는데 그것이 11월 4일 '국민통합의 날'(День народного единства)이다.

이 날은 1612년 모스크바를 점령한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던 날로 제정 러시아의 국경일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소비에트 혁명과 함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던 것이 푸틴의 집권 시작 얼마 후 2005년 다시 러시아의 국경일로 복권된 것이다.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11월 7일)에 있는 10월 혁명* 기념일은 반대로 국경일에서 제외됐다.

*양력(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7일이지만 당시 사용하던 구력(율리우스력)으로 10월 25일이었기 때문에 10월 혁명으로 부른다. 같은 이유로 현재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7일이다.

10월 혁명 기념일과 국민통합의 날이 3일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국민 가운데서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둘의 상징적 차이는 크다. 푸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러시아의 구심점은 보편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닌 배타적 러시아 민족의 위대함에 모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가을 공휴일이 3일 당겨진 것은 이처럼 이념적 전환의 의미가 담겨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불러온 극우주의
 

2015년 11월 4일 러시아 모스크바 교외 루블리노에서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국민 통합의 날을 기념하는 이른바 '러시아 행진'에 참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해마다 11월 4일이면 러시아의 많은 대도시에서 민족주의자들의 대행진이 펼쳐진다. 참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순화된 표현으로 민족주의자일 뿐 사실 극우주의자들이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표현이 민족의 자결권 수호를 중요시하는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들에게 민족주의는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에 대한 주장이다.

그들이 '러시아행진'(Русский марш)이라 부르는 이 연례행사는 이제 러시아 극우의 상징이 돼 버렸다. 다양한 정파들도 이 안에서는 '위대한 러시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소비에트가 묶어줬던 슬라브족 대동단결이 이제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집단행동이 점점 극단화되면서 이제는 권력 당국이 예의주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소비에트를 대체하겠다는 슬라브 민족주의는 과연 거대국가 러시아연방을 하나로 묶는 빅텐트가 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러시아 영토 내의 많은 타민족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러시아 영토 밖의 러시아계 시민들은 그 안으로 합류해야 할까? 소비에트 이념 안에 함께 융화돼 있던 '유라시아 제국주의'는 이들 '슬라브 민족주의'와 어떤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이 품었으나 떠나고 난 그 땅에 덩그러니 남겨진 두 유아(遺兒),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러시아에서는 그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싹트고 있다. 같은 곳에 함께 있는 듯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지향하는 지점은 다르다. 러시아의 위대함을 설파하지만 그 '러시아'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은 다르다.

첫 번째 '유라시아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위대한 러시아의 구성원을 말하는 데에 슬라브족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공간과 인간이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라시아라는 광대한 지정학적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구소련 당시의 국경 또는 그 이상으로 확장되는 러시아를 추구한다. 푸틴의 정신적 멘토로 회자되는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이 대표적 인물이다.

두 번째 '슬라브 민족주의자'들에게 러시아란 슬라브족의 우월성이 지배하는 국가의 모습이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러시아의 미래는 현재의 국경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우크라이나 동부이든, 크림반도이든, 발트해 연안이든, 코카서스 산악지대이든 슬라브족이 사는 땅이면 러시아 땅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현재의 러시아는 너무 다국적이며 더 이상의 이민자 유입은 안 된다. 19세기 후반 활동한 미하일 포고딘(Mikhaïl Pogodine)의 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푸틴의 전쟁, 그 속내

러시아 극우를 구성하는 두 흐름이 크렘린을 끝없이 압박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그의 집권 초기부터 극우 세력들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푸틴 본인이 극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현재의 러시아에서 극우세력의 지지 없이 집권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는 크렘린에 대한 극우 세력의 압박이 협박 수준으로 변모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럴 때 내부의 분열이나 동요를 제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의 공동이익을 실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제국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공동이익은 대외전략에서 구체화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러시아와 분리된 독립국가로 인정하기 꺼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은 극우가 아니더라도 러시아의 많은 대중들이 가진 사고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러시아 국민들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방관적 동조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푸틴이 국제관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면서 러시아는 이제 출구전략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정확히 전쟁 발발 그리고 초기 당시와는 반대의 양상을 유발한다. 수렴(convergence)의 시대에서 분열(divergence)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푸틴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결국 오고 말았다.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 도모는 러시아가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게 사상적 배경을 묻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푸틴의 행동대장 격인 그는 푸틴 주변의 어느 누구 못지않을 만큼 슬라브 민족주의에 경도된 인물이다.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러시아의 경계선은 어쩌면 민족 라이벌 게르만족과 맞닿은 곳일 수도 있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 연합뉴스

 
현재 벨라루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를 서방 세계가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러시아의 호전세력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폴란드 인근까지 진출해 있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러시아의 분열이 서유럽의 악몽이 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왔다. 러시아의 시계가 제로인 만큼 유럽의 시계도 제로다.

과연 푸틴이 현재 러시아의 위기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크렘린을 향한 여러 극우세력의 압박이 결국 반란 수준까지 온 마당에 푸틴의 전략은 무엇인가.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이기에 용병이 대통령궁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더 우려될 뿐이다.

러시아는 군사력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강한 나라다. 이제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 무력이 아닌 매력으로 이웃국가들을 현혹시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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