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미디어가 강력한 언론장악으로 권력을 행사한 예전과는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위시한 뉴미디어는 보다 한 발 빠르게 이슈를 발견하고 조명하는 시대가 왔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된 사건들을 뒤늦게 뉴스와 신문이 재조명시키는 세태에, <댓글부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있어 이름을 바꾼다. 내용은 전부 사실이다.' 라는 문장을 보험삼아 온라인 언론장악이 어떠한 형태로 이뤄지는지 파헤친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영화 속 장면

▲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영화 속 장면 ⓒ 에이스메이커


사실상 한국의 특정 기업을 저격하는 이 영화는 진실과 경계의 벽을 능구렁이처럼 타고 넘으며 기업단위 온라인 여론조작의 실태를 추적 스릴러의 형태로 힘있게 밀어붙인다. 온라인 여론조작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싱거울 수도, 누군가에게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커뮤니티 게시글의 특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 온라인 여론조작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의 저널리즘이 아닌,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문학적 상상력의 확산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커뮤니티 게시물에는 진실과 거짓의 비율을 적절히 섞어낸다. 다큐멘터리보다 장르물이 인기가 많은 것처럼.

문득 영화를 보며 <빅쇼트>의 문구가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진실은 시와 같고, 사람들 대부분은 시를 싫어한다"라는 문구는 <댓글부대>가 가리키는 방향에 부합한다. 커뮤니티 게시글은 진실을 싫어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최적의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이 온전히 순수하게 상상만으로 쓰여진 게 아닌 것처럼, 온라인 여론을 장악하는 게시물 또한 마찬가지다. 무엇이 진실과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온라인 회색지대를, 영화는 쉽게 타인의 머리에 총을 겨눌 수 있는 무법지처럼 묘사한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영화 속 장면

▲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영화 속 장면 ⓒ 에이스메이커스


<댓글부대>는 실제 사례들, 거기서 파생된 음모론적 이야기를 명확하게 양분하지 않고 하나로 뒤섞는다. 이러한 선택은 마치 영화가 스스로를 고발영화라는 장르의 특성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겠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부터 속박되지 않으려는 영악한 선택이기도 하다. 상업영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결말 또한 의도적이다. 반드시 명확한 진실을 파헤치고 승리하는 상업영화의 공식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는, 진실이 조명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회색지대(온라인)에 현대판 서동요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사가 되길 원하는 영화는 그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한낱 커뮤니티 게시물로 전락할 수 있는 선택을 망설이지 않고 행한다. 이 흥미진진한 게시물(영화)을 본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면서까지 진실이 무엇인지 의심하며 찾아보게 될 테니까.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 그리고 매체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았던 영화들은 십중팔구 관객보다 먼저 뜨거워지며 자신의 의견을 목청껏 외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댓글부대>는 이런 관습적인 태도와 거리를 두면서 최대한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자신의 의도한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 선택이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온통 회색지대로 변하고 있다는걸 확인시키는 비통한 선택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이 뻔뻔함이 밉지 않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 업로드한 글을 옮깁니다.
영화 댓글부대 안국진 손석구 여론조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비스 노동자.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인 감상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