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 포스터.?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 포스터.? ⓒ 티빙

 
백연여자고등학교 2학년 5반, 군인 아빠를 둬 수시로 전학을 다니는 성수지가 전학을 온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려는 의도가 확고한 그녀다. 하지만 2학년 5반은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 HR 시간에 이상한 게임을 한다. 일명 '피라미드 게임', 각자 5표씩 투표할 수 있고 투표 결과에 따라 A부터 D까지 등급이 나눠지고 0표가 나오면 F 등급이 되어 무차별 폭력에 노출된다.

성수지는 전학 온 후 처음 실시한 게임 투표에서 0표를 얻어 F 등급이 되어 지옥 같은 한 달을 보낸다. 그녀, 즉 F를 주로 괴롭히는 이들은 B등급이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A등급은 백하린인데 다름 아닌 백연여고를 만든 백연그룹의 회장 손녀딸이다. 더불어 2학년 5반 학생들 상당수가 백연그룹과 얽혀 있었다. 뭔지 모를 찜찜함이 반 전체에 도사리고 있다.

성수지는 다음 게임 투표에선 F에서 벗어나고자 사활을 다해 머리를 쓴다. 우선 그녀가 전학 오기 직전 F였던 명자은과 친해지고자 한다. 한 표씩 주고받으면 서로 F는 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한사코 투표를 고사하는 명자은이다. 이후의 계획은 D등급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높은 등급들은 누군가에게 포섭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피라미드 게임 삭제다. 과연 성수지는 목표에 가닿을 수 있을까? 피라미드 꼭대기엔 누가 있는 걸까. 백하린? 또 다른 배후?

더욱더 악랄하고 치밀해진 학교 폭력의 실체

2020년부터 2년 넘게 연재되면서 인기를 끈 네이버 웹툰 <피라미드 게임>은 학원물이자 사회고발물이다. 모두의 동의에 따라 만든 게임으로 서열을 나눠 합법적(일리가 없지만)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설정이다. 더욱더 악랄하고 치밀해진 '학교 폭력'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

웹툰 연재가 끝난 후 2년 만에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티빙 오리지널 <피라미드 게임>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만, 큰 틀에서 동일한 기조를 가져가되 디테일에선 상당히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보다 더 자극적이고 보다 더 확장되었다. 웹툰과 드라마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으나 가는 길이 다르고 또 방식이 다른 듯하다. 설령 둘 다 동시에 감상한다고 해도 다른 재미를 느낄 것이다.

작품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고등학생이 이 정도로 똑똑하고 또 악랄한가'다. 게임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이미 정해져 있는 구성원들 간의 권력 층위와 마구잡이로 흔들리고야 마는 심리 등을 잘 버무렸으니 말이다. 나아가 F를 괴롭히는 데 치명적인 구타와 각종 치욕적인 짓거리 외에도 '파블로프의 개'를 이용할 정도라니 가히 무시무시하다.

어디에나 계급은 존재한다는 말의 역설

극 중에서 백연여고의 다른 반은 피라미드 게임이 뭔지도 모른다. 오직 2학년 5반에서만 하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이런 엽기적인 게임을 하는 걸까?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말하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표를 행사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무조건 F등급) 왜 이런 살 떨리는 게임에 참여하는 걸까? 또는 참여할 수밖에 없는 걸까?

밝힐 수 없는 스토리적 이유가 있고 밝힐 수 있는 메시지적 이유가 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어디에나 계급은 존재한다'라는 들어봤음직한 메시지를 바탕으로 피라미드 게임을 만들었을 테고 아이들은 '왕따는 어디에나 있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게임에 참여했을 것이다. 언제 누구로 인해 괴롭힘을 당할지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한 명을 콕 짚어 한 달 동안 왕따를 전담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희대의 엽기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말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디에나 계급은 존재한다'라고 말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미시적으로 보면 가정, 학교, 사회 등 어디서나 알게 모르게 계급이 나뉜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 인정하기 싫은 사람, 인정하는 사람 등이 있겠으나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이 작품은 다들 알면서도 누구도 드러낼 수 없는 계급의 피라미드를 '모두'의 동의를 얻어 인기투표의 툴과 게임의 형식을 가져와 체계로 자리 잡으려 한 것이다.

혁명은 밑바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니까. 그런데 '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과 '모두의 동의'라는 단어가 주는 든든함 덕분일까, 가해의 방식과 수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온갖 종류의 폭력이 난무하고 고문과 다름 아닌 짓이 행해진다. 하지만 F가 무슨 짓을 당하든 모두 모른 체한다. 강도가 강해질수록 더더욱 선을 긋고 멀리한다. 잘못 나섰다간 그 자리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 게임은 소수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대다수의 방관자를 양산한다.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거의 모두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방관자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물론 그 대다수에게 어찌할 수 없는 모종의 권력이 작동했을 테다. 그러니 전학 온 성수지가 피라미드 게임 자체를 없애 버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실행에 옮기려는 건 그 자체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하다 하겠다.

권력층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건 그들 입장에선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외견상 가장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체제를 없애진 못한다.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꿰찰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혁명은 반드시 밑바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기반이 흔들려야 하는 것이다.

피라미드 게임에서도 D등급이 가장 많지 않은가. 바로 그 D등급이야말로 체제를 흔들고 부술 수 있다. 성수지는 올바른 목표를 가졌다. 하지만 과연 올바른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럴 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목표가 우선인가, 과정이 우선인가. 그 자체로 여고생한테는 너무 가혹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피라미드게임 학교폭력 왕따 방관자 혁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