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프로농구 최고의 득점머신으로 성장한 이정현이 또한번 짜릿한 쇼타임을 펼치며 팀에 극적인 역전승을 선물했다. 하지만 경기 막바지에 벌어진 샘조세프 벨란겔의 안타까운 부상은 명승부에 옥에 티를 남겼다.
 
3월 17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고양 소노가 접전 끝에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82-81, 1점차로 물리쳤다. 8위 소노는 17승 33패, 7위 한국가스공사는 20승 30패가 됐다.
 
봄농구가 멀어진 하위권 팀들의 맥빠진 대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이날 경기는 치열한 명승부였다. 나란히 35점 이상의 고득점을 올린 소노 이정현(35점 4어시스트 2리바운드 3스틸)과 가스공사 앤드류 니콜슨(36점 9리바운드)의 에이스 대결이 볼만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경기는 종료 3분여를 남겨놓고 가스공사가 76-68, 8점차까지 점수차를 벌리며 승기를 잡는듯했다. 하지만 소노에는 이정현이 있었다. 3쿼터까지 26점을 넣으며 분전했던 이정현은 4쿼터 초중반 체력이 떨어진 듯 득점이 중단되며 침묵했다.
 
6점차로 끌려가던 종료 1분여 전, 이정현이 다시 살아났다. 유로스텝에 이은 골밑 돌파로 득점과 동시에 상대 파울로 인한 자유투를 얻어내며 그림같은 3점플레이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니콜슨의 패스를 가로챈 후 속공 득점까지 성공시키며 단숨에 80-81, 1점차까지 점수차를 좁혔다.
 
가스공사의 공격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종료 19초 전 마지막 공격 기회는 다시 소노에게 넘어왔다. 해결사로 나선 이정현은 골밑 돌파를 시도하다가 박지훈으로부터 반칙을 이끌어냈다. 이정현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하며 기어코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해냈다.
 
이정현은 4쿼터에만 9점을 올렸으며 이중 7점을 종료 1분전에 몰아쳤다. 또한 이날만 자유투를 9개나 얻어내 모두 성공시키는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했다.
 
NBA(미 프로농구)에서는 승부처에서 빛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타 선수들의 명장면을 가리켜 'OO 타임'등의 애칭을 붙이곤 한다. 이날 경기에서 이정현의 라스트 1분은 그야말로 '정현 타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이 주로 득점을 책임지는 KBL의 특성상 국내 선수가 해결사로 나서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이정현의 희소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정현은 이날 35점을 추가하며 지난 9일 서울 삼성전(37점) 이후 4경기 연속 22점+ 이상을 기록했다. 30점 이상의 고득점을 올린 경기는 7번째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정현은 올시즌 자신의 평균 득점을 21.9점으로 끌어올리며 국내 선수 득점왕을 예약했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도 리그 전체 6위에 해당한다. 국내 선수중 이정현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린 하윤기(수원 KT. 16.4점)와의 격차는 무려 5.5점이다. 올시즌 득점 1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린 국내 선수는 이들 2명 뿐이며, 평균 20점을 넘긴 것은 이정현이 유일하다.
 
더 나아가 이정현은 13년 만에 국내 선수 최다득점 기록도 갈아치울 태세다. 2010-11시즌 귀화혼혈선수인 문태영은 창원 LG에서 평균 22점을 기록하며 국내 선수 득점1위에 올랐다. 이는 국내 선수가 마지막으로 평균 20점을 넘긴 기록이기도 하다.이정현 같은 순수 토종 선수로만 범위를 좁히면 무려 2007-2008시즌의 방성윤(SK)이 기록한 22.1점이었다.
 
이정현은 올시즌 40경기에 출전하며 총 누적 877득점을 올렸다. 올시즌 소노의 남은 4경기에 이정현이 모두 출전한다고 했을 때, 91점 이상(평균 22점)을 올리면 문태영의 기록을 뛰어넘고, 100점을 넘기면(22.2점) 방성윤의 기록마저 넘어설 수 있다.
 
KBL 역사상 올시즌의 이정현보다 국내 선수가 더 많은 득점을 올린 사례는 모두 합쳐도 총 16차례에 불과하며, 이중 대부분은 프로 초창기인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몰려있다. 서장훈은 홀로 7시즌이나 평균 22점 이상을 넘겼다. 역대 단일시즌 국내 선수 최다득점은 2000-01시즌 조성원(LG)이 기록한 25.7점이었다.
 
프로 초창기에는 평균 20점을 넘기는 경우가 자주 나왔지만, 외국인 선수의 득세와 수비전술의 발전 속에 2000년 후반 이후로는 더 이상 득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선수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당당히 팀내 1옵션을 당하면서도 놀라운 득점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이정현의 올시즌 기록이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이날 경기 막바지에는 불미스러운 장면도 나왔다. 가스공사의 아시아쿼터 선수인 벨란겔이 종료 직전 마지막 슈팅을 시도하던 상황에서 소노의 외국인 선수 치나누 오누아쿠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은 것이다.
 
슛을 저지하려 몸을 날린 오누아쿠에게 깔려 넘어진 벨란겔은 정강이에 큰 고통을 호소했다. 벨란겔은 결국 경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팀동료인 듀반 맥스웰에게 안겨서 코트밖으로 떠나야 했다. 벨란겔은 큰 부상이 우려되며 시즌 아웃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강혁 가스공사 감독은 파울이 불리지 않은데 아쉬움을 전했으나 심판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벨란겔에게 부상을 입힌 오누아쿠는 지난해 12월 28일 정관장과의 경기도중 골밑에서 점프를 시도하던 상대 선수 렌즈 아반도를 공중에서 고의적으로 밀어 큰 부상을 입힌 전력이 있다. 당시 아반도는 허리뼈 골절 및 손목 인대 염좌, 뇌진탕 소견을 받았다. 오누아쿠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자칫 선수생명마저 위협할만한 비매너플레이로 농구팬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고, 이에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KBL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오누아쿠는 이번엔 벨란겔에게 또다시 큰 부상을 입히면서 필리핀 선수들과 뜻하지 않은 악연을 이어가게 됐다. 아반도 사건과는 달리 고의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신 때문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선수를 외면하고 그대로 라커룸으로 들어가버린 오누아쿠와 소노 선수단의 행태는 농구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짜릿했던 명승부의 마무리에 유일하게 오점으로 남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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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오누아쿠 벨란겔부상 클러치타임 KBL득점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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