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천재 작가 이상의 작품 '날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고등학생 시절 접한 이 문구는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됐다. 코가 간질간질하는데 시원하게 재채기가 터져 나오지 않는 듯한,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즈음 프로그레시브 록을 접하면서 이상의 '날개'를 떠올렸다. 현학적이고 전체하는 데 매력적인, 납득이 갈 것 같으면서도 가지 않는, 이해하면서도 회의(懷疑)하게 만드는 음악이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1960년대 중반 고개를 들었다. 희로애락을 단순한 멜로디와 박자에 싣던 대중음악에서 조금은 벗어나 예술적 측면을 강조해서 담는 뮤지션들이 등장했다. 팝과 로큰롤에 클래식 음악,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 예술), 블루스, 재즈 등 다른 종의 음악을 섞기 시작했다. 가사도 사랑과 슬픔뿐만 아니라 신화와 전설, 철학, 우주를 다뤘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태도와 지향을 뜻했다.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려는(progressive) 경향을 통칭했다. 위대한 밴드들은 발전을 거듭했다. 경쟁자와 추종자도 늘었다. 토양이 기름져지고, 결과물은 많아졌다.

그러다 정체가 시작됐다. 프로그레시브가 '다르고 나아가려는' 태도에서 '긴 솔로, 긴 연주 시간, 복잡한 구조, 변박과 불규칙한 멜로디, 심오한 듯한 가사' 등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가 돼갔다. 음악 천재들은 과거 영광에 기대 먹고사는 처지가 됐다. '박제가 된 천재'들이다.

영국 밴드 배저(Badger)는 그 와중에 서 있다. 이들을 말하려면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 출범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8년 사이키델릭 밴드 메이벨 그리어스 토이숍(Mabel Greer's Toyshop)이 리허설을 시작했다. 멤버는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베이스), 피터 뱅크스(Peter Banks·기타), 존 앤더슨(Jon Anderson·보컬), 빌 브루포드(Bill Bruford·드럼)다. 스콰이어는 이전부터 알던 토니 케이(Tony Kaye·건반)를 동참시켰다.

밴드 이름을 예스로 바꾸고 그해 8월부터 전국 공연을 시작했다. 1~3집 앨범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네 번째 앨범 <프레자일(Fragile)>을 녹음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예스 멤버들은 더 화려하고 복잡하며 긴 곡들을 선호했다. 이미 피터 뱅크스를 내보내고 다양한 주법을 보유한 스티브 하우(Steve Howe)를 영입한 바 있다.

토니 케이가 불만의 대상이었다. 멤버들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멜로트론, 무그, 신시사이저를 더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니 케이는 반대했다. 그는 피아노와 해먼드 오르간을 좋아했다. 신시사이저 등을 쓰면 다른 음이 묻힌다고 생각했다. 새로 들어온 하우와 다툼이 쌓여갔다. 연주 전면에 나서야 할 두 주자의 불협화음은 밴드로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밴드는 토니 케이를 빼고 스트롭스(The Strawbs) 출신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을 데려왔다.

내쳐진 토니 케이는 1972년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보컬 및 베이스)와 연이 닿았다. 이들은 로이 다이크(Roy Dyke·드럼)를 영입했고, 로이는 브라이언 패리쉬(Brian Parrish·보컬 및 기타)를 추천했다. 4인조 밴드 배저(오소리)가 만들어졌다.

그해 9월부터 연습을 시작하고, 같은 소속사에 있던 예스의 오프닝 밴드로 나섰다. 배저는 1972년 12월 두 차례 런던의 레인보우 시어터(he Rainbow Theatre)에서 공연했다. 공연 실황은 모두 녹음됐다. 예스가 라이브 앨범 <Yessongs(예스송스)>를 만든 무대 위에서 같은 장비로 녹음했다.

멤버들은 스튜디오 앨범을 내려고 했지만, 라이브 녹음에 못 미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스튜디오 레코딩이 실황의 열기와 집중력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1973년 1월 <원 라이브 배저(One Live Badger)>가 나왔다.
 
배저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 앞면 배저(Badger)의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One Live Badger)> 표지는 밴드 예스(Yes)의 중기 앨범 커버를 그린 로저 딘(Roger Dean)이 그렸다.

▲ 배저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 앞면 배저(Badger)의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One Live Badger)> 표지는 밴드 예스(Yes)의 중기 앨범 커버를 그린 로저 딘(Roger Dean)이 그렸다. ⓒ 최우규

 
이 앨범은 예스 음악보다 무겁고 그루브(즉흥적인 리듬감)가 강하다.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파트는 스튜디오에서 만들 수 없는 생생함과 즉흥감이 충만하다.

늘 느끼지만, 데뷔곡 A면 첫 번째 곡에는 뮤지션의 과거·현재·미래가 담겨 있다. 첫 곡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이 딱 그렇다. 에너지가 넘치고, 멜로디도 좋다. 프로그레시브 록 특유의 긴 솔로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뜻밖의 그루브가 있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재즈, 로큰롤, 리듬앤드블루스에 관심을 가진 토니 케이 덕분이다.

두 번째 곡 '파운틴(Fountain)'은 기타와 키보드 독주가 각각 펼쳐진다. 둘은 각축을 벌이다가도 화음을 맞춘다. 세 번째 곡 '윈즈 오브 체인지(Winds Of Change)'는 예스 팬에게 흥미로운 곡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 록답다. 절제하는 듯한 기타 연주 밑에 탄탄한 리듬이 넘실댄다.

B면 첫 번째 곡 '리버(River)'는 록의 근본을 훑는다. 하드록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다음 곡 '더 프리처(The Preacher)'는 블루스 록이다. 마지막 곡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노래는 강렬한 기타 연주와 감미로운 발라드로 시작한다. 음을 쌓아 올리다 기타와 오르간 연주가 각각 불을 뿜는다. 딥 퍼플(Deep Purple) 1기 노래 같다.
 
배저 원 라이브 배저 뒷면  배저(Badger)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One Live Badger)> 뒷면.

▲ 배저 원 라이브 배저 뒷면 배저(Badger) 라이브 앨범 <원 라이브 배저(One Live Badger)> 뒷면. ⓒ 최우규

 
1집은 호평받았지만, 안타깝게도 배저 바로 앞에 예스가 서 있었다. 그 옆으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ELP 등이 늘어서 위력을 과시했다. 배저는 기를 펴지 못했다.

2집 스튜디오 앨범 <화이트 레이디(White Lady)> 사정은 더 나빴다. 멤버가 바뀌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이 아닌 리듬 앤드 블루스/솔 음반이 됐다. 프로그레시브·하드록 팬은 외면했다. 리듬 앤드 블루스/솔 팬들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레이 찰스(Ray Charles), 샘 쿡(Sam Cooke), 어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군림하던 때였으니까.

배저는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토니 케이는 1983년 예스가 재결성될 때 들어가 1990년대를 함께 했다.

돌이켜보면 박제가 됐던 천재들의 한바탕 난장이다. 이상의 <날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과 팬들의 바람도 그렇지 않을까. 박제가 된 천재들이 다시 한번 날기를 기대하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우규 시민기자의 소셜미디어 등에도 게재합니다.
B메이저AZ록 배저 BADGER 토니케이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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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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