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4 20:47최종 업데이트 24.03.0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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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호 가창오리 군무(2024년 1월 12일 촬영) 채식을 위해 서천방면으로 날아가는 가창오리 ⓒ 최수경


어찌 표현하면 좋을까. 마치 강에 거대한 회색 구름 덩어리가 떨어진 형상이다. 구름은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넓게 퍼진 채, 물살에 동요 없이 강 한가운데에서 붙박이고 있다. 망원경을 당겨보면 수면에 작은 군집체가 마치 부글부글 용암 끓는 모습이다.
   
해가 서쪽으로 가장 기울어진 무렵, 검은 구름은 기지개켜듯 점차 몸체를 일으킨다.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똬리 틀고 있던 용이 등을 일으키는 것 같다. 회색의 거대한 구름 떼가 일제히 비상하니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난다. 공중으로 부양한 구름은 갖가지 타원을 그리며 형체를 달리한다.

다양한 형체와 명암의 파노라마는 노을 진 스크린 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상예술을 펼친다. 운 좋게 내 머리 위를 지나며 파노라마가 연출되면, 수십만 마리의 날갯짓이 내는 소리가 경악하는 사람의 소리를 덮을 지경이다. 이것이 우주 속인지, 바닷속인지 모를 극강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한다. 바로 가창오리 군무다.
  

채식지로 이동하는 가창오리(2024년 1월 12일 촬영) 2024년 1월 12일 금강호에 3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운집한 날, 1진과 2진으로 나뉘어 채식지로 이동하고 있다 ⓒ 최수경

 
새는 이동성에 따라 크게 텃새와 철새로 나뉜다. 철새는 여름 철새, 겨울 철새, 나그네새, 길 잃은 새로 나뉜다. 겨울 철새는 시베리아, 중국 등 한국보다 추운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한국으로 와서 겨울을 지낸다. 두루미, 오리, 기러기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이 한반도를 찾는 이유는 월동 때문이다. 기온환경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인 한반도가 도래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창오리는 보통 11월 초순에 한반도에 도래한 후 12월 말까지 서산 AB지구, 아산호, 대호, 삽교호 등지에서 생활한다. 1월 초순부터 금강호, 동림저수지(현 흥덕저수지), 영산 영암호, 고천암호 등으로 분산해 2월 말경까지 월동한다.


가창오리는 강이나 호수 가운데에서 대부분의 낮 시간을 보낸다. 호수가 얼면 얼음 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주로 머리를 묻고 움직이지 않은 채 휴식을 한다. 또한 걷기, 수영, 구애, 싸움, 경계 행동 등의 이동 행동과 깃 고르기와 물 튀기기 등의 안락 행동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외부의 교란을 받았을 때는 대부분 개체가 날기도 하지만, 저수지 중앙으로 헤엄쳐 피하기도 한다.

철새의 증감은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영암호 간척지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암방조제로 인해 만들어진 대규모 호수 영암호. 겨울철새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지이다. ⓒ 최수경


해 질 녘 이후에는 큰 무리로 뭉쳐졌다가 다시 작은 무리로 나뉘는 등 비행을 한다. 채식지로 날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인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1만 킬로미터 미만의 이동은 대체로 수질, 먹이환경, 인간의 간섭 때문이다. 환경 상태에 따라 수질이 결정되므로 수질은 먹이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논은 철새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므로 논 면적의 증감 등도 먹이 환경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가창오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오리였다. 1947년 일본 서남부에서는 하루에 1만여 개체 이상이 포획될 정도로 동북아에서 가장 흔한 종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80년에 1000여 개체 미만의 소수 월동개체군만이 관찰되었으며 국제보호조 및 절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후 1984년 주남저수지에서 5000여 개체의 월동군이 처음 관찰된 후, 1986년 이후 2만여 개체의 월동군이 도래하였으며 최근 10만 개체 이상이 도래한다.
   
개체수가 늘어난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의 간척사업은 물새들의 습지환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주요 강과 갯벌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었다. 대규모 담수호 조성에 따른 홍수조절 기능뿐 아니라 국토확장과 우량 농지조성을 통해 쌀 증산을 가져왔다.

그러나 습지 환경의 변화는 물새들의 종 구성과 개체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갯벌을 주 서식지로 이용하던 도요물떼새는 감소했다. 반면 벼 낟알을 주 먹이로 하는 수면성 오리류가 크게 증가하였다.
       
철새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의 간섭은 심해졌다. 또한 가을철 파종된 농작물의 종자를 파먹거나 하여 부정적 인식도 있다. 그러나 겨울 철새가 많아지는 것은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에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서산버드랜드 철새 기행전, 철원 두루미 축제, 순천만 두루미, 서천 철새여행, 주남저수지 철새축제, 울산 철새여행 등이 생태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따라서 철새의 지역적인 증가와 감소는 그 지역의 생태관광 정책, 친환경 이미지와 관련된 농산물 브랜드 가치제고, 보건위생 정책, 겨울 작물과 관련된 농업정책 등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학적인 모니터링과 연구 지속되어야
  

철원군 동송읍 두루미탐조대에서 바라 본 풍경 온갖 물새들의 천국 철원 한탄강은 과거 민통선 내에 있어 개발에 비껴갔었고, 매년 두루미 등 철새들이 월동지로 찾는 주요 서식지이다. ⓒ 최수경

 
철새는 습지 생태계의 가치와 건강에 대한 훌륭한 지표를 제공한다. 갯벌생태계 내의 먹이사슬에서 최상부에 위치한 철새는 비교적 수명이 길어 환경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평가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에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많은 철새가 찾아온다는 것은 그곳의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음을 대변한다.

최근 온난화의 결과로 종의 분포가 극지방과 위쪽으로 확산되면서 광범위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장거리를 이주하는 철새는 번식지의 봄 기온에 비해 늦게 도착하고 있다. 또 기후변화로 이동 거리도 감소하고 있다. 이동 거리가 짧을수록 번식지에서 봄이 시작되는 시기를 더 잘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도착 날짜가 더 빨라지고 있다.

연중 다양한 계절에 따른 온난화와 강수량 변화는 철새의 분포와 군집 변화에 영향을 줌으로, 이들의 생태학적 메커니즘에 대해 이해하려면 과학적인 모니터링과 연구가 지속되어야 한다.

2011년 한 방송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금강호의 가창오리 군무 촬영 미션을 수행하느라 가창오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가창오리의 황홀한 군무가 방송을 통해 알려진 후 이를 보기 위해 금강하구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철새에 대한 생태 지식이 부족한 무분별한 관광객들로 인해 금강호에서 월동하는 철새가 방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새는 유희의 대상이 아니다. 새는 이미 토템적 지위를 갖고 있다. 십장생 중 하나인 두루미를 비롯해, 부부애를 상징하는 기러기, 제비는 전령의 상징이다. 생물종에 대한 언론의 접근은 반드시 생태자원의 보호와 자연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정립하도록 메시지를 함축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학적 관점에서 한반도가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위험지대에 진입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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