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7 07:16최종 업데이트 23.09.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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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금강 모래밭을 맨발로 걷고 있는 모습. 공주보 수문이 열리고 곰나루 모래밭이 자연성을 회복하니 강체험활동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 최수경

 
2020년 9월 23일, 파란 가을하늘 아래 금강을 찾은 사람들이 강모래밭을 걸었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배낭에 묶어 매고 맨발로 걸었다. 모래밭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었고, 자신의 발자국이 흔적을 지울까 비껴서 걸었다.  

걸음을 멈추고 모래밭에 앉았다. 온기가 엉덩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손바닥에 모래를 얹어놓고 루빼(확대경)로 바라보도록 했다. 루빼의 유리막에 햇빛이 투영되며 모래알은 보석같이 반짝였다.   

강이 꼭 금모래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공주 보를 막아 담수하다 보니, 점토질이 두텁게 모래밭을 덮었다. 그 점토질이 건조하며 풀밭을 만든다. 지층처럼 쌓인 흔적으로 담수의 역사를 확인한다. 실지렁이와 깔따구 흔적에 몸살 앓았을 강의 역사에 가슴이 아리다.
 

강활동 참가자들이 루빼로 모래알갱이를 관찰하고 있다. 모래알 공극과 다양한 성상의 광물질 등을 통해 보이지않던 강모래의 시계를 확인한다. 2020.9.23. ⓒ 최수경

 

워드클라우드로 본 강 활동에서 모래알을 루빼로 관찰한 후 느낌 (행위유발 요인분석을 통해 드러난 모래에 대한 느낌) ⓒ 최수경

 

강모래 체험활동을 하는 어린이들. 공주보 하류 1.5킬로 지점이자 유구천 합류점에 형성된 광할한 모래밭은 천연의 강놀이터이다. 2020.9.23. ⓒ 최수경

 
세종·공주·부여의 아이들을 초대해 강에서 놀았다. 물구덩이에서 고기를 잡고, 모래밭에서 기차놀이를 했다. 두꺼비집을 짓고 강에 눕고 물에서 재첩을 잡았다. 놀이터 모래를 뒤집어쓰듯 강모래가 온몸을 감쌌다. 옷이 더러워졌는데도 엄마에게 혼나는 것이 두렵지 않았나 보다. 나도 아이들이 실컷 강을 느끼도록 도왔다.

아이들과 체험활동을 한 뒤, 며칠 후에는 어른들을 위한 시간을 준비했다. 아이들처럼 역동적으로 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강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 활동을 준비했다. 아뿔싸, 그러나 현장에 당도하니 완전히 다른 환경이 되었다. 이곳에 오기 하루 전, 백제보를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고작 하루 만에 공주보 하류까지 이렇게 호수가 될 줄은 몰랐다. 금강의 공주보와 백제보는 그렇게 강 환경을 제 맘대로 바꾸었다.
 

백제보 수문을 열었을 때, 강모래가 쌓인 곳으로 어린이들이 강체험활동을 하러 가고 있다. 금강 공주보 하류 1.5킬로미터 유구천 합류점. 2020.9.23. ⓒ 최수경

 

2020년 9월, 백제보 수문을 닫은 지 만 하루만에 물이 차오른 모습. 앞의 사진과는 딴판이다. 금강 공주보 하류 1.5킬로미터 유구천 합류점 ⓒ 최수경

  
'보'를 통해 강 환경이 바뀐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생물의 서식처로서 단일한 호수생태계가 조성돼 생물다양성이 단일화 되는 것은 당연하다. 종다양성과 유전자다양성의 축소는 서식지 다양성에 영향을 주고 종국에는 강의 수질정화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모래의 공극이 주는 필터 역할, 강바닥의 다양성에서 여울이 갖는 용존 산소도, 수생식물과 석패류 등의 수질정화 역할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강 환경의 변화는 수질을 정화하고 기후를 조절하며 생태계 먹이사슬 체계를 형성하는 조절서비스에 일대 교란을 부추긴다.   


강이라는 장소성이 갖는 문화서비스는 어떤가. 교육·지식 습득·영감·심신 치유·휴식, 휴양·여가·심미적 즐거움·서식처·풍경·관광 등 다양하다. 위의 워드클라우드에서 보여준 강 체험자들의 느낌처럼, 강과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문화서비스는 열거할 수 없이 많다.

2023년, 금강의 위기
 

지난 11일 오전, 공주보 수문이 닫히기 전인데도, 백제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공산성 앞 금강에는 황포돛배 120여척이 띄워져 있었다. ⓒ 김병기

 
올해는 9월 23일부터 10월 9일까지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대백제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는 일회용 컵 없는 친환경축제를 지향하며 탄소제로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습지의 탄소 저장고를 파괴하고 백제인의 자연숭시사상에 반해 뭍 생명을 하찮이 여긴 축제 본연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  

2012년 4대강 사업의 결과물인 세종보·공주보·백제보는 흐르던 금강을 막아 호수로 전락시켰다. 그럼에도 금강을 사랑하는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투쟁으로 세종보와 공주보 개방이 이루어졌고 세종보부터 공주 곰나루까지는 회복 기미를 보이며 금모래 밭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공주시의 백제문화제 기간은 금강에 찬물을 부었다. 금강이 온전한 회복을 하는데 있어 문화제 전후 한달여의 담수는 강에 치명적이었다. 문화제가 끝나고 수문을 열어도 살아난 금모래를 두터운 진흙 갑옷이 눌렀고, 진흙 속 풍부한 유기물 덕에 모래밭은 수풀 밭이 되었다. 9월 말은 이미 태풍기를 지나 뻘흙이 벗겨지지 못하고 봄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2019년부터 공주시는 공주보를 개방한 상태에서 백제문화제를 개최한다고 민관협의체와 약속했다. 그러나 매년 그 약속은 파기되었다. 수문을 닫아 백제문화제를 하느라 담수될 때마다 금강은 생채기가 났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강을 돕고자 사람들은 뻘흙을 걷어내고, 풀을 뽑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듬해 댕기물떼새가 풀밭이 아닌 모래밭에 알은 낳고, 얕은 물가에 발을 담구고 먹이활동을 하는 어머니 금강이 되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공주시는 민관협의체와 백제문화제 개최시 공주보 개방을 약속했으나 이를 파기했고, 불법점유라 하여 천막을 강제 해체했다. 밤샘 항의하는 활동가들은 공주시의 계속된 담수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 최수경

 

환경단체들이 금강 공주보 상시개방 상태에서 백제문화제 개최를 결정한 민관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고마나루에 설치한 천막을 지난 14일 공주시에서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하고 있다. 공주시는 행정대집행 계고서를 통해 '이 천막이 하천 관리에 지장을 주고 있어 이를 방치하면 공익을 해칠 것으로 인정된다'는 근거를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공주시는 대화나 타협도 없이 활동가들의 정당한 평화시위를 협박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 연합뉴스

    

환경단체들은 지난 15일 공주보 담수 중단을 촉구하며 7시간 동안 물속에서 수중농성을 벌였다. ⓒ 김병기

 
올해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자칫 백제문화제를 계기로 수문이 닫히면, 윤석열 정부의 보 존치 정책에 힘입어 영원히 닫힐 우려가 있다. 금강의 친구들은 생명을 수장시키는 백제문화제에 항의하고, 수문을 여는 백제문화제가 되기를 항거하며 곰나루를 지켰다. 그러나 곰나루를 수호하던 천막은 강제로 뜯겼고, 보 수문은 굳게 닫혔다. 심지어 금강의 친구들(활동가들)이 농성하던 천막에는 가슴까지 강물이 올라와 생명의 위험을 느껴야 했다. (관련 기사: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 공주보 앞 천막농성 돌입https://omn.kr/25lb4)

공주보 수문 막고... 이게 친환경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충남 공주시 금강신관공원에서 열린 2023 대백제전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주보 수문을 막은 채, 공주시에서는 수상멀티미디어쇼, 등불향연 등이 야간에 금강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올해는 웅진천도 475년을 기념하여 475척의 황포돛배 유등이 금강에 띄워진다.

백제 유등의 시작을 따라가면, 수륙제(水陸齋)라는 종교의례에서 출발한다. 백제문화제 수륙제는 1955년에 백제대제를 통해 삼천궁녀의 넋을 달래는 삼천궁녀 위령제로부터 출발했다. 불교 신도들이 수륙제를 마친 후에는 백마강에 소형 용선을 마련하여 유등을 띄웠는데, 바가지에 콩기름을 넣어 기름심지를 붙인 형태였다. 백제라는 역사성과 백제 땅이라는 지역성을 토대로 형성, 전승된 백제의 추모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호수화된 강을 만들어 대규모 황포돛배 선단을 띄우고 백제문화의 도약을 알리는 축제로 변화했다.

도시 브랜딩에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친환경적인 요소가 있다. 다행히도 올해 백제문화제는 1회용품을 안쓰는 탄소중립 친환경축제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공주시 백제문화제를 친환경 이미지로 각인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인지도를 향상시키려면, 백제 고도를 상품화하는데 있어 효율적인 장소마케팅 수단인 금강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지역 인구가 적어 외지인의 유입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외부지향적인 축제가 되다 보니, 지역의 고유한 자연풍경이 이미지화되는 경로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금강을 기반으로 한 백제문화제는 보로 물을 막아 담수된 호수의 강을 바라보는 것에 국한된 친수문화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친환경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강의 역동적인 물리적 변화에 기반한 문화서비스 기능을 복원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얕은 금모래밭을 흐르는 금강물을 계속 보고 싶다. ⓒ 최수경

덧붙이는 글 워드클라우드는 금강 곰나루를 장소로 강체험활동 연구의 일부입니다. (최수경, 2020, 강체험활동에서 행위유발요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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