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홀씨>와 RM의 <들꽃놀이>

아이유의 <홀씨>와 RM의 <들꽃놀이> ⓒ EDAM / HYBE

 
가사를 살살 문지르면 향이 나는 노래가 있다. 이지 리스닝의 시대에선 더 이상 수필같이 넉넉한 가사보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멜로디가 부피를 키웠다. 그럼에도 시대를 역행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아티스트가 있다. 특히 그 이야기가 단편집이 아닌 성장기일 때 아티스트는 사람이 되어 관객과 만난다. 아이유가 그렇다.

미니앨범 < The winning >으로 돌아온 아이유는 '러브 윈즈 올', '쇼퍼', '쉬(Shh..)' 등 순차적으로 곡을 발표했다. 23일 정오 국내 최대 음악 플랫폼 멜론 '톱 100' 차트 상위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아이유의 신곡 앨범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아티스트와 만나게 된다. 그건 BTS의 RM. 극과 극은 만나는 걸까, 아니면 가요계의 정상을 찍은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난 두 사람은 화려한 꽃이 되길 포기했다. 그 대신 고른 건 홀씨와 들꽃.
 
혹시 나의 안부를 묻는 누군가 있거든

< The winning >은 30대에 진입한 아이유가 발매한 첫 앨범이다. 아이유는 공식 유튜브 채널 '이지금'을 통해 앨범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그는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모든 곡에 승리의 키워드를 넣었다.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솔직한 단어다. 20대 후반에 지치고 번아웃이 오기도 했지만, 30대에 들어 나다운 승부욕이 재점화됐다"고 털어놨다.

2024년에 '승리'라는 키워드는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이분법적으로 갈린 세상에서 승리란 나의 성공이지만, 동시에 타인을 완전히 꺾어야만 쥘 수 있는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0이 되는 게임)을 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유가 말하는 성공은 탈피에 가깝다. 사회가 강요하는 승리를 위해 두꺼운 외피를 썼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그의 메시지는 '홀씨'에서 뚜렷해진다.

'홀씨'는 꽃이 되지 않은 홀씨의 승리를 노래한다. 땅에 뿌리를 내린 다른 꽃들과 달리 화자는 하늘에 피길 원한다. 꽃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법은 단 하나. 꽃이 되길 포기하고 홀씨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다. 홀씨가 된 화자는 공중으로 날아 꼭대기로 올라간다. "난 기어코 하늘에 필래", "날 따라, 날아가 꼭대기루", "다 날 볼 수 있게 날아 줄게 한가운데" 등 '홀씨' 가사에는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지만, 동시에 자유를 놓치지 않는 홀씨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전 앨범에서 아이유는 꽃을 노래했다. 노래 '스물셋'에선 자신을 "한 떨기 스물셋"이라 칭했고 '라일락'에선 "꽃이 지는 날 Good bye"라며 20대의 챕터를 닫았다. 아름다운 꽃으로 살아가던 그는 30대에 들어서자, 홀씨를 꿈꾼다. 꽃은 정착해서 심고 길들일 수 있지만, 홀씨는 다르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를, 비행과 낙하 사이에서 아이유는 어느 길로 향할까. 땅에서 그를 지켜볼 청취자에게 한마디 남겼다.

"걔는 홀씨가 됐다구."

들꽃이 되어 흩어질래

아이유의 '홀씨'와 맞닿는 곡은 RM의 '들꽃놀이'. 사실 RM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랩몬스터'부터 알아야 한다. 2013년 방탄소년단으로 데뷔, 랩몬스터라는 예명을 사용하던 그는 2017년 "보여주고 싶은 음악과 거리가 있다"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RM'이란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랩몬스터의 음악이 날카롭고 꿰뚫는 식이었다면, RM의 노래는 서재와 녹음(綠陰)을 갸웃거린다. '들꽃놀이'는 그 정점을 찍는다.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넘볼 때"로 시작하는 '들꽃놀이'는 정상에 오른 RM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한때 불꽃을 꿈꿨던 화자는 비대해진 삶에서 돌파구를 찾아 헤맨다. 결국 그는 "저 하늘에 흩어질래"라고 노래하며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닌 다시 소소한 나로 돌아가는 들꽃놀이를 즐긴다. 타는 불꽃에서 들꽃으로 돌아온 화자는 "이 황량한 들에 남으리"라며 본질을 짊어진다.

아이유 '홀씨'와 RM '들꽃놀이'의 키워드는 흩어짐. 그들은 하나로 갖춰진 완벽한 모습이 아닌 자신의 파편을 흩뿌리며 홀씨가 되어 공중으로 오르거나 들꽃이 되어 황량하지만, 진짜 나를 되찾았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는 말. 어쩌면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홀씨'와 '들꽃놀이'의 메시지가 이토록 절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브랜드로 삼아 타인에게 판매하는 자본주의 시대성, 완벽함과 일상이란 이질적인 단어들이 뒤섞인 SNS, 자극을 쫓아 도파민의 역치를 높이는 숏폼(짧은 길이의 영상, 길어야 1분 내외)까지. 완벽을 쫓아 달려가는 시대에서 두 아티스트는 유유히 완성을 향해 돌아섰다. 화려한 꽃 한 송이 없는 그들의 세계에선 감각이 마비되지 않는다. 청취자 또한 다시 '나'로 돌아서게 한다.
 
아이유의 욕망은 노골적이다

아이유의 새 앨범 < The winning >은 여타 앨범에 비해 유기성보다 욕망의 나열에 집중했다. 당당하게 욕망하길 원하는 '쇼퍼'나 뉴진스 혜인, 아이유, 조원선, 패티김이 함께 노래한 '쉬(Shh..)'처럼 시대에 따라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미묘하게 짜맸다. 메시지가 선명하기에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놓칠 수 있는 법. 그 사이 균형을 아슬하게 낚아채는 아이유다.

국민 여동생으로 살아간 아이유는 한 떨기 꽃이었지만, 그의 앨범에는 깊숙이 숨긴 자기 고찰이 삐져나오곤 했다. '너랑 나'의 "기묘했던 아이"는 '홀씨'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기묘함이 욕망과 만나 불 붙을 때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속내를 알 수 없는 아이유가 다시 마이크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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