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인디밴드들과 400여 편의 영상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변두리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편집자말]
"감독님, 뮤비(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슬램덩크의 정대만의 대사가 연상되는 문자를 받은 것은 2023년의 겨울이었다. 기억을 끄집어 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전, 영상제작 자원봉사에서 만난 메리헤이데이(Merry Hey Day)라는 밴드의 보컬이었다.

펑크를 기반으로 하지만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과 같은 장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훨씬 감성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들은 이번에 5곡으로 구성된 앨범을 발매하는데 뮤직비디오(이하 뮤비)를 한편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세 편의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하다
 

▲ 메리헤이데이 MerryHeyDay - 위스키 샷 Whiskey Shot (Official M/V) ⓒ 메리헤이데이

 
밴드의 홍대공연이 있는 날, 공연 전에 시간을 내어 근처 카페에서 멤버 전원과 만났다. 1년여 만에 만난 밴드의 분위기는 새로 들어온 드럼을 포함해 달라지지 않았다. 괴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보컬(JJ-본명:전호연), 얌전하고 진중한 기타(정한결), 기가 세고 현실주의자인 베이스(김휘소), 터프함 자체인 드럼(이승배).

개성 강한 네 명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문제는 원하는 곡도, 콘셉트도 달랐다는 데 있었다.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긴장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했다. 

음료를 물로 두번 리필하고도 잔이 바닥날 즈음 발랄한 느낌의 로큰롤 '아무리 기다려봐도'와 팀의 성장을 다룬 'Growing Up', 2곡이 선정됐다. 당초 한곡의 예산을 반으로 나누어 초저예산 뮤비로 촬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임박한 공연시간. 사실 곡 외엔 결정된 것이 없는 회의였기에 아쉬운 마음에 리더와 드럼에게 작은 카메라(고프로)와 가슴에 고정할 수 있는 장치를 건네었다. 공연이건 뒤풀이건 원하는 장면이 있으면 찍고 싶은 만큼 찍어달라는 말과 함께.

주말을 지나 받은 메리헤이데이의 기록은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찍은 당사자도 이걸로 뮤직비디오 한편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촬영된 홍대에서의 뒤풀이 영상은 그들의 수록곡 '위스키샷'과 너무나 어울렸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바로 전날 이미 회의 때 정한 2곡의 촬영장소를 정해버렸다. 대여시간과 섭외비 등 협의가 끝난 상태로 취소하기엔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촬영본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덜컥 뮤직비디오 세 편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시금 환기하는 차원에서 이야기 하지만, 메리헤이데이는 인디밴드이다. 그 말인 즉 뮤비를 만들 때 큰 돈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애당초 뮤비를 만든다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뮤지션이 태반이다. 

괜히 인디뮤비의 배경이 공원이나 옥상, 놀이터가 되는 게 아니다. 장소 섭외할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두 편의 뮤비는 지인찬스로 섭외된 바(Bar)에서 1편, 음원을 녹음한 스튜디오에서 1편을 촬영하기로 했다. 스튜디오는 총 3시간 대여하기로 했다. 연습은 장비세팅이나 렌즈교환 등 중간중간 촬영이 비는 시간이 하기로 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대망의 크랭크 인(촬영을 시작함)인 셈이다. 곡명은 '아무리 기다려봐도'.
 
아뿔싸! 첫 촬영은 망했다
 
 메리헤이데이 : 꿈

메리헤이데이 : 꿈 ⓒ 메리헤이데이

   
그런데 처음부터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스튜디오를 빌린 시간은 오전 10시. 주로 밤에 음악 작업을 하는 밴드맨들(다소의 편견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의 생활을 간과했다. 일단 스튜디오 오너부터 지각이다. 한명씩 도착한 메리헤이데이 멤버들은 하나같이 졸린 표정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리더인 JJ. 그런데 밤에 잘 못잤는지 비몽사몽이다. 항상 웃는 얼굴인 기타(정한결)는 코로나 여파로 몸살 기운이 있는 상태였다. 베이스(김휘소)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 탓인지 가라앉아 있었다. 반면 드럼(이승배)은 에너지가 넘쳤다. 넘쳐도 너무 넘쳐 드럼스틱이 세 번 날라가고 손가락을 베어 피가 나길 두번. 

연습 3테이크(촬영횟수의 단위), 본 촬영 2테이크를 진행한 후 내린 결론은 '오늘은 망했다'는 강한 확신이었다. 집중도나 텐션 등이 너무 제각각이고 실수도 잦아 흐름이 이어지지 않았다. 스케줄에 맞추어 진행하려다 보니 정작 멤버 각자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체크하는 것을 잊은 나의 패착이었다.

본래의 계획은 스튜디오에서 연주장면을 촬영하고 근처 망원시장에서 솔로파트 촬영을 할 계획이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전면 백지화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멤버들과 점심을 먹으며 스케줄 조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식사 후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퇴근 전의 하이(흥분)상태가 온 것인지, 잠이 깬 것인지, 아니면 밥을 먹어서인지 종료시간 직전 '쓸 수 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멤버 스스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스튜디오 사용종료 시간이 찾아왔고 아쉬운 표정을 하자 밴드 측에서 제안을 했다. 아는 밴드의 아지트가 비어 있으니 사용하면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지트는 스튜디오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짐을 싣고 차로 이동하고 나니 일몰까지 한시간 가량이 남은 시간이 됐다. 일단 차를 세우고 컨디션 좋은 베이스가 먼저 솔로 촬영을 했다. 다행히 2테이크만에 완료할 수 있었다. 이어서 기타의 솔로 촬영. 몸은 아팠지만 2테이크만에 만족할 만한 개그컷이 나왔다.

더 이상 촬영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컷을 확인하니 욕심이 생겼다. 아지트의 분위기나 소품을 활용하니 얼추 생각했던 분위기가 나왔다. 앨범의 곡 중에 상당히 잔잔한 곡이 있었는데 해당 곡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 연주신을 멤버들에게 주문했다. 네번째 뮤비인 '꿈'은 이렇게 꽤나 즉흥적으로 완성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네 편을 제작하게 된 메리헤이데이의 뮤비 중 세번째 트랙이자 마지막 뮤비 촬영은 "Growing Up". 그간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밴드의 성장을 다룬 노래이다.

욕심이 생겼다
 
 메리헤이데이 : Coming Back

메리헤이데이 : Coming Back ⓒ 메리헤이데이

 
촬영 장소는 홍대의 바(Bar)다. 밴드의 컨디션도 양호해 수월하게 세팅하고 철수까지 두 시간이 안 걸린 듯하다. 이전에 급조한 '꿈'의 추가 촬영과 여력이 남아 '위스키샷'의 추가 촬영도 이뤄졌다. 
 
앨범에 총 다섯 곡이 수록되는데 어쩌다 보니 네 곡의 뮤비를 완성했다. 그러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마지막 곡의 뮤직비디오도 찍어볼까.

하지만 다 섯번째 곡이자 타이틀곡인 "Coming Back"은 크라잉넛의 박윤식을 포함 총9명의 홍대의 내로라하는 보컬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이다. 곡에 맞는 스케일을 갖추기엔 이미 예산이 바닥이다. 그렇다고 가사만 넣은 리릭비디오나 놀이터에서 악기도 없이 멀뚱히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갈등 섞인 고민을 시작할 즈음 밴드 리더에게 문자가 왔다. 예전 크라잉넛의 뮤비등을 작업한 분이 얼마 전 홍대 클럽에서 촬영할 때의 모습(클럽 앞에서 난리를 치고 촬영했다)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는 것이다. 

본인이 디렉팅과 장소 등을 맡을테니 'Coming Back'의 촬영을 맡아 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명팀과 메이크업까지 동원하지만 무보수(장소대여비까지)로 해주겠다고 한다.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2월 4일 일요일로 촬영 날짜가 정해졌다. 좋은 소식은 더 있었다. 전날 홍대에서 공연을 하는 팀 중 상당수가 우정출연하겠다고 했다. 밴드의 친구들까지 합세해서 엑스트라만 총 40명. 인디밴드의 뮤비촬영에선 보기 드문 규모의 촬영이 됐다. 

촬영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진행됐다. 양주 10여 병, 맥주 60병 이상, 피자 20판이 세팅 된 현장은 촬영장이라기보다는 파티장 분위기에 가까웠다. 참여인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하기에 '텐션'이라고 주문했고 이것 하나만은 정말 잘 지켜줬다.

이틀분의 촬영을 몰아서 하다보니 혼란도 있었다. 야외 촬영에서 장비를 이동시키고 합류해야 할 촬영팀(그게 바로 나다)이 길을 잃어 감독이 직접 촬영을 하기도 했고, 연기를 내는 연무기가 고장나 스파크가 튀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모두들 텐션 하나만 부여잡고 촬영에 임해줬고, 밤 10시 정각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메리헤이데이의 앨범 수록곡 전부를 뮤비로 만들 수 있었다. 납품이 끝나고 음반이 발매된 지금 (뮤비는 순차적으로 공개 예정이다) 생각해 보면, (적은 예산과 1인 제작 등) 상업 촬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해낸 셈이다. 

불과 한달 전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말이다. 작업은 고됐지만 과정이 즐거웠다. 이게 바로 인디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  
 

▲ 메리헤이데이 앨범 홍보영상 ⓒ 장성준

 
 
인디 음악 홍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홍대를 시작으로 변두리의 문화를 느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