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소장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소장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어쩌면 지난 30년간 정우성의 연기 인생은 탈주와 변주와도 맞물려 있지 않을까. 데뷔 이후 청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고, 그렇게 대중의 기대에 호응하는 것 같더니 고뇌하는 고독한 성년이었다가, 지금은 신념의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작 <강철비2> <헌트>에서 이어진 우직한 신념은 <서울의 봄>에서 절정에 이른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은 이태신 소장을 연기했다. 가상의 인물이라지만 그 모델은 장태완 소장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 끝까지 항전한 실존 인물과 비교할 때 이태신이란 캐릭터는 거의 모든 부분이 다르다. 단, 소신과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그 성정만 빼고 말이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곡해 혹은 논란의 가능성을 배우 본인도 감지하고 있었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그래도 다행히 언론에서 작품 그 자체로 봐주시는 것 같다"며 인터뷰에 나서게 된 계기부터 전했다.
 
장 '포스' 아닌 이 '소신'
 
<비트>(1997)부터 <아수라>(2016)까지 김성수 감독과 네 작품을 함께 했던 정우성은 본인에게 제안이 올 수도 있겠다고 예감했다. 다만 막 <헌트> 촬영을 끝낸 터라, 해당 작품에서 맡은 안기부 요원과 <서울의 봄> 속 캐릭터가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건넸다고 한다.
 
"감독님이 알았다고 하시고는 그래도 너 아니면 안 돼 이러셨다(웃음). 대본을 읽었는데 정민이 형이 이미 전두광 캐릭터에 캐스팅 된 이후였다. 상상이 되잖나. 와, 만만치 않겠구나 싶으면서도 잘 해냈을 때 그 쫀쫀함이 있겠더라. 부담도 엄청 컸지. 하지만 현장에선 그런 걸 다 잊고 이태신다움을 찾아가야 했다.

물론 저도 어릴 적에 드라마 <제5공화국>을 봤다. 장태완 소장을 연기하신 그 배우분도 기억이 났지. 근데 감독님께서 이태신 만큼은 극 중에서 가장 허구성을 많이 준 인물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제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인터뷰한 영상을 보내주셨다. 이태신은 이랬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여기서 뭘 찾으란 거지 싶었는데, 아마도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정우성의 자세였던 것 같다.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하는 그 모습을 이태신에 얹길 원하셨던 것 같더라."

 
영화 속 이태신은 어떻게든 쿠데타를 막아내기 위해 군 동료들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동분서주하다가 직접 제2한강교(양화대교) 위에 서서 홀로 공수부대를 막아서는 모습은 어떤 인간적 연민마저 느껴지게 한다. 정우성은 이를 '앵벌이 연기'라고 표현하며 말을 이었다.
 
"흘러가는 상황이 답답하고 막막하지만 그걸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외로워지지만, 자기 직무나 책임으로 돌파하려는 사람이었다. 사실 연기하면서도 막연했다. 황정민 형의 연기는 정말 징글징글하잖나. 거기에 맞서는 내 연기는 과연 적절한 건지, 맞는 건지 계속 확인해가며 임했던 것 같다. 근데 정답은 없잖나.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이태신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사실 상대 배우, 그리고 스태프분들의 표정을 보며 확인했던 것 같다. 컷 이후에 촬영 감독님 표정을 보면 이태신을 느꼈는지 알 수 있거든. 말없이 끄덕거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느끼셨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김성수 감독님께도 많이 기댔다. 솔직히 <아수라> 때는 그 지독함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알았거든. 그 시점에 들어가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엔 촬영 초반 때부터 그걸 느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소장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소장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청춘, 정의의 아이콘에 대한 반론
 
감독에 무한 신뢰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출연할 뻔한 사연을 전하면서 "사실 수락하지 않았을 때 감독님을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다음에 또 제안을 주셨다. 그게 <비트>였다"며 "사적 감정을 담아두지 않으시고 배우를 동료로 인정해주시는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감독님과 여러 작품을 하며 어떻게 현장을 이끌어 가는지 많이 배웠다. <비트> 때도 그저 예쁘장한 인기 많은 배우로 대하지 않고 동료로 대해주시더라. 감독이란 직업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 무한신뢰를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본인 연출부 출신들이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본인 영향 아래 성장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신다. 동료로 배우려는 자세로 대하시더라. 그게 감독님이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 아닐까 싶다.
 
사실 지치실 수도 있는데, 계속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제가 뭔가를 써서 보여드릴 때마다 좋다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주셨다. 칭찬 많이 듣는 아이가 더 건강하고, 건전하게 자랄 수 있잖나. 저도 그런 영향을 받으면서 감독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정우성은 영화 후반부 이태신이 겹겹이 쌓인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며 전두광을 향해 가는 장면을 상징성이 크다고 꼽았다. "그때 7월이었는데 정말 힘들긴 했다"며 그는 "걸음이 느리고 무겁지만, 넘어져도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모습이 바로 이태신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이는 평소 소신 발언으로 대중 앞에 서는 인간 정우성과도 견주어 볼 수 있다. <서울에 봄>에 빗대서 정우성이 답변했다.
 
"감독님이 열아홉 때 총성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으로 이번 영화를 시작하셨다. 거기엔 어떤 정의감이나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게 아닌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려는 마음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인간 본성에 집착하면서 끝까지 밀고 가신다. 명분이나 정의를 강요하지 않기에 관객분들이 좀 더 목격자가 된 것처럼 편하게 관람하실 수 있지 않나 싶다.
 
정의로운 캐릭터가 저보고 어울린다고들 하시는데, 다음엔 쌍놈을 해야 하나? (웃음) 사실 <비트> 이후 청춘의 아이콘으로 덧씌워지는 순간부터 그걸 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어떤 아이콘이 되고 싶은 적이 없었고, 단지 한 청춘의 외로움을 연기한 것뿐이다. 그런 외로움을 누구나 겪었을 테니 그런 수식어를 주신 건데 전 민을 연기한 것이지 민 그 자체는 아니잖나. 그것처럼 지금 정의로움의 아이콘이라는 게 있다면 빨리 벗어 던져야 하지 않나 싶다."


결국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정우성은 "내 안에는 전두광의 모습도, 그 육군본부 내 우유부단했던 똥별들의 모습도, 이태신도 있을 수 있다"며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소신이라는 건 중요하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정우성이 추구했던 건 그 캐릭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주류 작품이 아니더라도, 도전하고 경험하려 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용기 낼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거나 채찍질하진 않는다. 지나온 30년을 돌이켰을 때 그런 소신으로 일했구나 발견하게 되는 거지."
 

최근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촬영 막바지에 이른 정우성은 잠시 휴식 기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얻은 피로감을 다음 작품에서 보상받고는 했지만, 지금은 한 박자 쉬어 갈 때인 것 같다"며 재충전의 시간을 예고했다.
정우성 서울의봄 1212 황정민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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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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