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8 19:59최종 업데이트 23.09.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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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0일 태풍 다니엘이 리비아에 상륙한 후 전례 없는 홍수가 리비아를 강타했다. 사진은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시의 피해 모습. 데르나시 남쪽의 두 댐이 붕괴되어 인근 지역 전체가 휩쓸려 갔다. ⓒ EPA/연합뉴스

 
지난주에 있었던 북아프리카의 악몽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며칠 사이 인접한 두 국가가 서로 다른 원인으로 큰 참사를 동시에 겪는 것은 드문 일이다. 북아프리카 서단에 위치한 모로코가 8일 규모 6.8의 대지진을 겪더니 11일에는 동쪽의 리비아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두 재난 모두 이미 역대급으로 기록되고 있다.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사전 대비와 사후 대응은 행정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행정 능력이 극대화되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재해 현장에 가봐야 도움 안 된다는 발상의 정치인이 아니라면 정치는 그래서 늘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북아프리카의 참사도 정치 부재가 빚어낸 인재로 봐야 한다.


특히 리비아의 경우가 그렇다. 리비아 대홍수는 여타 경우와 달리 호우로 인한 것이 아니라 댐이 붕괴해 빚어진 참사였다. 열대성 태풍 '다니엘'이 리비아 동북부 해안을 덮쳤을 때 첫 피해 지역은 67만 인구의 대도시 벵가지였고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역설적으로 비극은 인구가 더 적은, 그것도 댐을 두 개나 갖춘 옆 도시에서 발생했다. 1973년에서 1977년 사이 인근 지역 택지와 농지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데르나강 상류에 두 개의 댐이 건설된다. 모든 댐의 용도가 그렇듯 홍수로부터 하류지역을 보호할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더 안전하다고 믿은 많은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8만 인구의 데르나시를 이루게 된다.

관리가 되지 않는 모든 시설물은 끔찍한 살상무기로 변한다는 사실을 당시 리비아 당국은 민감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이 댐들의 상태는 이미 좋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인근 지역들 역시 앞서 이미 여러 차례 홍수 피해를 겪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에는 오마르 알무크타르 대학교(Omar Al-Mukhtar University)의 수문학자 압델와네스 아쇼르(Abdelwanees Ashoor)가 데르나 지역의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논문까지 발표했었다. 인근 지역의 홍수 규모와 댐의 상태를 대비했을 때 낙후된 시설과 문제점들이 시정되어야 큰 피해를 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해당 논문의 결론에 아쇼르 박사는 "댐의 일상적 유지관리를 위해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홍수가 발생할 경우 계곡과 주민들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논문 발표 10개월 만에 이 불길한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모든 재앙이 그랬듯 발생 징조가 보일 때 어딘가에는 이처럼 경고의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부와 사회의 몫일 뿐이다.

리비아 정부와 사회는 재앙을 경고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큼 현명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는 냉정한 답을 내릴 수밖에없다. 그리고 이 현명하지 못함은 엄밀히 리비아에만 국한될 수도 없다. 2011년 이래 오히려 국제사회는 리비아를 향해 커다란 정치적 과오를 저질러왔다. 그리고 그 과오의 결과는 리비아인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선택적 제거' 대상 된 카다피... 그 후 혼란에 빠진 리비아
 

2011년 2월 22일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 죽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은 리비아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 AP/연합뉴스

 
2011년 북아프리카를 휘몰았던 민주화 열풍은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수십 년 동토의 땅 리비아를 쉽게 녹이지는 못했고 카다피의 반격은 오히려 시민군을 수세에 몰기까지 했다.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무력 개입하면서 카다피 정권은 막을 내린다.

한 나라의 주권 영역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선명한 명분과 함께 현실적으로 더 나은 안정을 보장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특히 도덕적 명분이 정치적 이해충돌로 상이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외세에 의해 무너진 '권위적' 질서가 오히려 더 극심한 사회의 혼란과 피폐한 민중의 삶으로 이어진다면, 과연 외세에 의한 체제 전복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체'로서 독재는 본질적으로 미화될 수 없다. 소수에 의해 권력과 이익이 전용됨으로써 다수가 누려야 할 공리가 현저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으로서의 독재는 조금 복잡하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특정 시간과 장소, 상황과 맥락을 가지며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다. 

카다피의 독재는 나쁜 것이고 제거되는 것이 더 옳다. 하지만 2011년 리비아의 정치적 상황과 국제사회의 현실적 거버넌스 능력을 고려할 때 과연 나토군이 꼭 '그때' 리비아에 개입해 '그 방식으로' 카다피를 제거하고 (카다피 사살을 둘러싼 여러 의혹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나라를 혼란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문제는 다르다.  

교과서적, 원론적인 판단과 현실 정치에서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상황에서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관계의 복잡성과 국제정치에서 요구되는 신중함, 용의주도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좁은 범위의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국제관계에서의 역학관계는 현시대 최대 지상권(至上權)을 가진 유일한 집단인 국가에 관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외 나토 회원국들은 그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거슬리는 카다피를 독재자 프레임으로 제거했지만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에는 서구 국가들이 비호하는 독재자들이 수없이 있어 왔다. 다만 카다피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 제거'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세계 9위의 가채(可採) 석유매장량 국가이다. 

그렇게 독재자가 제거된 땅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내전과 혼란,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가 무려 12년 동안 계속돼 왔다. 그 사이 리비아는 무려 140여 부족이 공권력 부재 속에서 서로 대립했고 그 혼란을 틈타 러시아의 바그너그룹, 서아시아의 IS 등이 이권을 챙겨 나갔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자신들의 이익 관계에 따라 특정 정치세력의 뒤 봐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국가 단위의 정부 구성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일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은 내전으로 비화되고 지역 간 갈등, 종교 갈등만 확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국민통합정부(GNA)를 표방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서부지역 트리폴리에 단독 정부를, 리비아국민군(LNA)을 자칭하는 세속주의 군부세력이 동쪽 지역 투브루크에 단독 정부를 세우게 된다.

2015년 유엔은 트리폴리의 국민통합정부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지만 모든 국가가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스 등은 카다피를 암묵적으로 추종하는 동부의 리비아국민군을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의 경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시 외무부는 트리폴리 정부를, 국방부는 투브루크 정부를 지지하는 모순적 태도까지 보였다.

서구의 '위험한 장난'... 대홍수는 필연적 인재다
 

9월 15일 금요일 리비아 데르나시에서 구조대원들이 홍수 피해자들의 시신을 찾고 있다. 폭우로 댐 두 곳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인해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6년 4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 중 최악의 실수로 리비아 사태 처리를 꼽았다. 카다피 제거 후 벌어진 리비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말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8년 2월 튀니지 방문 중 국회 연설에서 2011년 나토의 리비아 개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리비아를 혼란과 극단주의의 희생자로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후속 대책 없이 일단 붕괴시키고 보는 서구의 위험한 장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련 붕괴에 진심을 담았던 서구는 이후 러시아의 건전한 자본주의 정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를 그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보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제거에 혈안이 됐던 그들은 이라크의 안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무책임은 10년 넘는 이라크 내전과 IS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리비아 개입 또한 그 패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카다피의 제거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들은 이후의 리비아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현재 무정부 상태의 리비아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거점이 되어 유럽으로 향하는 대부분 난민 항로의 출발지가 되고 있다. 유럽이 그토록 싫어하는 불법 난민에 대해 공권력을 가진 리비아 정부가 없으니 대응도 대책도 요구할 곳이 없다.  

2023년 9월 리비아 대홍수는 이러한 카오스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 인재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12년의 내전 기간 동안 댐,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재해에 대비하는 경보 시스템은 먼 나라 얘기였다. 피해 지역 데르나시의 부시장 아흐메드마드루드는 외신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두 개의 댐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정치가 사라진 무정부의 땅을 자비 없이 할퀴고 지나간 대홍수, 이제 리비아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말 비참한 것은 세계의 구호물자가 하나둘 도착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할 정부가 없고, 여기 저기서 무장세력들이 하나 둘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데르나시를 접수하고 있는 이들은 IS계열의 지하디스트 안사르 알 샤리아(Ansar al Charia), 그리고 알카에다와 가까운 한 연합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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