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고시원에는 더 이상 고시생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시원은 본래 수험생들을 위하여 학원가와 가까운 곳에서 저렴하게 기초적인 수준의 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는 주거및 학습 공간으로 1980년대경부터 탄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한 이들이나 1인 가구를 위한 저렴한 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장기간 거주하는 원룸에 가까운 개념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주거자의 주연령층도 젊은 고시생이나 학생에서 중장년-노년층 위주로 점점 변화해가고 있다.
 
8월 4일 방송된 KBS 1TV 시사고발 <추적 60분>에서는 '2023 고시원 르포, 7제곱미터의 삶'편을 통하여 현재 대한민국 고시원의 실태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애환을 추적했다.
 
서울에서 가장 고시원이 많다는 관악구에 위치한 고시촌 일대에는 장기거주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고시나 공무원을 준비하다가 10년-20년 이상을 고시원에서 보낸 이들도 다수다. 이들은 합격의 꿈을 사실상 포기한 지금도 비용이 저렴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관악구에서도 고시원이 가장 많은 신림동 일대는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월세는 낮아지고 거주자의 연령대는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고시원이라도 골목 하나 차이로 방값이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신림동 고시원 거주자 105명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소득은 99만원, 평균 월세는 23.5만원으로 나타났으며 남성이 91.4%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신림동 언덕 위 고지대는 장기거주자와 새로이 유입된 중장년층이 다수였다. 시민단체에서 1주일에서 몇차례씩 배급하는 도시락을 받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만 120명이 넘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시원 거주자라고 한다.
 
주재종씨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다리까지 다쳐서 고시원에 거주하다가 최근에야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 임대주택에 거주하게 됐다. 주재종씨는 "백원이 없어서 라면을 못사먹을 때도 있었다. 참 서럽더라"고 밝히며 "고시원 사람들은 다 그렇더라.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면서도 안 나가진다. 다람쥐 쳇바퀴돌 듯 그 자리에만 있는 거다"며 고시원을 벗어나는 삶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취약계층 지원사업을 해온 이영후 신부는 "고시에 실패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이 해체된 분들, 밀려밀려서 여기까지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실태를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 들어오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잘 돼서 딴데로 가기보다는 노숙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특별한 일자리도 많지 않고 일할수 있을만한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니까"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 신부는 "지금은 빈곤이 눈에 안보이는 신 빈곤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힘들다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같은 모습으로 드러내지않고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고시원 거주자 15만 명
 
서울시의 2023년 4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4906개의 고시원이 있으며 거주자는 약 15만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고시원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신림동같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저렴한 가격의 고시원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아예 월세가 백만원에 달하는 호텔급 고시원들도 등장하고 있다. 시설에 따라 고시원의 명칭도 원룸텔, 리빙텔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지역별에 따라 신촌 일대는 외국인 유학생, 영등포는 이주노동자, 강남이나 송파구에는 단기출장자나 직장인들이 고시원을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거주자의 지위, 재산, 배경 등이 구분되는 경우도 뚜렷해지고 있다.
 
'왜 고시원에 사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거주자들은 대부분 저렴한 월세 혹은 직장과의 가까운 거리를 이유로 꼽는다. 월세 보증금이 없거나 매우 적은 고시원의 특성은, 당장 손에 쥔 재산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부담없이 맨땅에서 시작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현재 강남이나 송파 일대에서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고시텔, 여성 전문 원룸 등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거나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고시원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취업 이후 본가와의 거리 때문에 월세 38만원짜리 고시원에 5개월째 거주중이라는 김종백씨는, "고시원은 내게 디딤돌같은 곳이다. 큰 자본은 없지만 서울에서 기회를 잡고싶은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공간"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고시원마저도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벼랑 끝에 내몰린 중장년층이 최근 고시원으로 유입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불과 3년전인 2020년만 해도 고시원의 30세 미만 거주자 비율은 약 28%였다. 올해는 18%로 더욱 급감했다. 젊은이들은 점점 빠져나가고 고시원 거주자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이중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연락이 끊긴채 고독하게 지내는 이들도 많았다.

'2021년 서울시 고독사 위험현황 연구'에 따르면 고독사의 11.1%가 고시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룸이나 다가구와 달리, 고시원엔 그래도 관리자가 있기 때문에 일상의 안녕을 외부에서 확인할수 있는 고시원 거주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법적으로 고시원은 주택이 아닌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시원을 사실상의 '집'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고시원 거주자들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고독과 고립이다. 그래서 보호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회취약계층 거주자들에게는 가까이서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존재가 절실한 실정이다.
 
20여년째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거주자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는 재중동포 박영숙씨는, 고시원에서 여러 차례 고독사를 목격했던 안타까운 순간을 회상했다. 영숙씨는 병원을 찾은 거주자의 보호자를 자처하여 동행하기도 했다. 영숙씨는 "여기서 힘든 노인들을 부모처럼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바램을 전했다.
 
언뜻 보면 고시원은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7제곱미터에 불과한 저 방안에는, 누군가 물어주기를 바라는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과 꿈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길고 컴컴한 복도를 통과중인 이들에게 따뜻한 '안녕'을 물어주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몫일 것이다.
추적60분 고시원 신빈곤시대 사회취약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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