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꽤 많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방향성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진짜 맞는지, 선택을 했다면 그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질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엔 부모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신의 자녀가 좀 더 안전하고 쉬운 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조언한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 있다. 아이는 최대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서 그 길이 마땅치 않아 보일 수 있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의 성장기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장면 ⓒ 소니 픽쳐스 코리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2018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후속 편이다.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가 아니라 마일스 모랄레스(목소리: 샤메익 무어)다.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에서 마일스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가 살던 세계의 피터 파커는 죽었고, 대신 거미에 물린 마일스가 스파이더맨 역할을 하게 되지만 그에게는 영웅으로서의 책임감이 피터보다 적다.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과 다르게 마일스의 부모는 살아있고 대신 삼촌이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가 영웅 역할을 해야 할 거라는 당위를 주진 않는다. 

1편에서의 마일스는 우연히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가 해결하지 못했던 악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맨인 피터 B.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와 스파이더 우먼 그웬(목소리: 헤일리 스테인필드)과 힘을 합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왜 스파이러맨이 돼야 하는지 깨닫는다. 그 과정이 1편의 주요 내용이었다면 2편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좀 더 궁극적인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여전히 마일스이지만 그웬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웬은 그의 세계에서 스파이더 우먼으로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 서장인 자신의 아빠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그의 절친이었던 피터 파커는 잘못된 실험으로 죽었다. 그 과정에서 피터의 살인범으로 몰린 스파이더 우먼은 자신의 아빠에게 쫓기게 된다.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 영웅, 스파이더 우먼과 스파이더맨

그웬은 아빠에게 자신이 스파이더 우먼이라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다. 그가 가진 두려움은 모든 청소년이 가진 두려움과 비슷하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모가 알았을 때, 부모가 보일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진짜 모습에 실망하는 부모의 얼굴을 보기 싫은 것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결국 아빠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그웬은 경찰인 아빠가 당황스러워하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절망한다. 이건 마일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마일스도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다. 몇 번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부모의 앞에 서지만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마일스와 그웬이 겪는 절망감은 이내 고독감으로 변한다.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립된 느낌을 받고 그나마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우주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이건 마일스와 그웬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영화에는 모든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총괄 관리하는 흡혈귀 스파이더맨인 미겔(목소리: 오스카 아이작)이 등장한다. 그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면 어떤 불행이 오는지 경험한 인물로, 불행을 막기 위해 전체 다중우주를 관리한다. 일종의 운명론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꽤 생각할만한 문제를 관객에게 던진다는 데 있다. 미겔을 비롯한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 세상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스파이더맨이 그런 운명론을 따르고 있을 때, 마일스는 그 운명론에 반기를 든다.

"너의 삶은 이래야 된다"거나 "이게 너의 한계야"라는 식의 말이 마일스에게 전달되었을 때, 마일스는 그 수많은 운명론자들 앞에서 아니라고 외친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운명론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마일스는 자유의지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운명론과 자유의지론 사이를 훌륭하게 파고드는 서사
 
 영화 <스파이더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장면

영화 <스파이더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장면 ⓒ 소니 픽쳐스 코리아

 
마일스의 선택은 다른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다. 스파이더맨들 중 정해져 있는 운명을 바꿨을 때 세상이 파괴되거나 혼란이 생기는 것을 목격한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들이 바꾼 일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관객도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 어렵다. 영화의 후반부, 어떤 선택이 진짜 옳은 것인지 한참 고민하며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의견대립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영화 속 마일스와 그웬의 부모들은 정해진 길이 있고 옳은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일스와 그웬은 자신이 선택한 길도 옳다고 믿는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각 인물들의 선택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는다. 마일스의 선택이 불러올 파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다음 편에서 확인해야 한다.

영화의 작화나 화면 전환 그리고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배경음악도 무척 훌륭하다. 마치 만화책을 움직이는 화면으로 보는 듯한 작화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경쾌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서사와 문제의식이 훌륭하다. 나는 운명론자일까, 아니면 자유의지론자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유니버스 애니메이션 운명론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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