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KT위즈의 경기를 응원하는 티아라 지연.

6월 1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KT위즈의 경기를 응원하는 티아라 지연. ⓒ SBS스포츠

 
"아내가 와있기 때문에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럼요 집에 가면 반찬이 달라지는데"
"오늘 만약에 승리해서 가면 어떤 반찬이 나올까요?"


지난 1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kt 위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장에는 kt 선수 황재균의 배우자이자 가수 티아라 멤버인 지연도 와 있었다. 황재균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방송사 중계 카메라는 지연의 모습을 비췄다. 이에 경기를 중계하던 SBS스포츠 이동현 해설위원과 유희종 캐스터가 한 말이다.

황재균이 병살타로 물러나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 캐스터는 "아직 달라진 반찬을 보기 위해서는 몇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와그스'라고 불리는 사람들 

연봉이 높은 스포츠 선수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그 상대방을 '와그스(WAGs: Wives and Girlfriends)'라고 부르기도 한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여자친구, 아내로서 내조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지연이 황재균과의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팬들은 지연 역시 '와그스'가 되어 방송 활동이 뜸해질까 우려했다. 야구 팬들은 황재균의 '결혼버프(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면 경기력이 향상된다는 뜻)'를 기대하지만, 지연 팬들은 경력을 걱정하는 것이 대비된다.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자취를 감춘 '와그스'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들의 SNS 속 근황은 이제 남편을 위한 식단과 아이들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지연이 14년 차 아이돌로서 굳건하게 이어온 활동이 결혼으로 인해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괜한 기우가 아니다.

정작 황재균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내조가 필요 없다"고 거듭 밝혔다. 지난해 2월 공개된 <유어바이브(YOURVIBES)>와의 인터뷰에서 황재균은 "내조를 받으려고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요? 상대도 본인 일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연은 지난해 결혼한 이후에도 올해 영화 <강남좀비> 개봉 프로모션을 이어가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동현 해설위원과 유희종 캐스터의 '반찬이 달라진다'는 농담은 데뷔 후 14년 동안 가수로, 연기자로 경력을 쌓아온 지연을 무시하는 발언일 뿐 아니라, 당사자 황재균에 대한 존중도 없어 보인다.

현실의 '와그스'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들
 
 방송인 기안84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kt 위즈 내야수 황재균.

방송인 기안84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kt 위즈 내야수 황재균. ⓒ 인생84

 
그렇다고 '와그스'들이 이동현 해설위원, 유희종 캐스터의 말처럼 반찬만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와그스'는 호날두의 여자친구 조지나 로드리게스처럼 4천만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인이 되기도 하지만 현실은 늘 외로움과 불안이 함께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베리 스브루가는 메이저리거의 아내로 사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어떤 결혼생활도 야구선수와 결혼하는 것과 같지 않다."
"야구선수의 아내라니, 정말 화려하고 멋진 일처럼 보인다. 머리와 메이크업은 언제나 세팅되어 있고, 매일 쇼핑하고, 전문 베이비 시터가 있고, 백만 달러 연봉의 사나이가 옆에 서 있다. 하지만 이건, 본질적으로 어딘가 이상한 생활이다. 야구선수와 결혼한다는 건, 선수가 자신의 커리어만 책임지는 동안 아내는 그외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베리 스브루가)


워싱턴 내셔널스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던 이안 데스몬드는 스브루가와의 인터뷰에서 "아내는 1년의 절반을 싱글맘으로 사는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스브루가는 이안 데스몬드의 아내 첼시의 일과를 취재한 기사를 공개했다.

첼시는 남편이 팀을 옮기게 될까 봐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마음을 졸여야 한다고 말한다. 선수가 '야구'에만 집중하는 동안 혼자 이삿짐을 싸고, 새집을 알아보고, 아이들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까지 모두 첼시의 몫이다. 메이저리거의 아내들은 풀타임 엄마이자 부동산 전문가, 운전기사나 다름없다.

전 야구선수 서동욱의 아내이자 방송인 출신 주민희는 MBC스포츠플러스의 야구 전문 유튜브 채널 <스톡킹>에 출연해 "(선수 가족들은) 집안의 어려움이 생겨도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남편은 집안 대소사를 하나도 모른다"고 고충을 토로한 적 있다. 첼시 역시 "만약 포스트시즌 중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남편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운이 좋아야만'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스톡킹'에 출연한 주민희-서동욱 부부

유튜브 채널 '스톡킹'에 출연한 주민희-서동욱 부부 ⓒ 스톡킹

   
선수들이 경기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신경 쓰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보다 아내가 더 중요하냐'는 비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2014년 뉴욕 메츠의 내야수 대니얼 머피가 아내의 출산을 이유로 출산 휴가를 택하자, 미식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부머 에시아슨은 "시즌 전에 미리 제왕절개 수술일을 예약했어야 한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첼시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선수 가족을 위해 베이비 시터가 상주하는 '패밀리룸'을 제공하고, 남편 이안 데스몬드 역시 비교적 가정적인 편이었다. 메이저리거 최초로 '출산휴가(paternity leave)'를 사용했고, 2021년에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은퇴했다.

"내조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황재균과 결혼한 지연의 상황도 아마 '운이 좋은 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포츠 선수와 결혼한 여성이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운에 기대야만 한다니. 모두가 스포츠 선수의 아내에게 내조를 기대하고, 선수는 경기력에만 집중하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개인은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들 부부는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하고 있지만 같은 스트레스를 공유하는 한 팀이나 다름없다. 오전 1시가 지나서야 내셔널스의 열여덟 번째 홈게임이 마침내 끝났다. 첼시는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화요일, 또 다른 경기가 이안과 데스몬드 가족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스브루가)

스브루가는 '선수 가족은 시즌을 함께 완주하는 동료'라고 묘사했다. 11일 경기에서 지연은 간절한 마음으로 공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황재균이 내야안타로 출루하자, 지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연은 그날 저녁 반찬을 결정하려고 야구장을 찾은 게 아니다. 가족이 뛰는 그라운드에 열띤 응원을 보내는 팬으로서 자리했다. 중계진이 시청자에게 해설해야 할 것은 그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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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황재균 이동현 WAGS SBS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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