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낙스의 효능
 
테넷(Tenet)이라는 단어처럼,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똑같은 철자로 구성된 단어 '자낙스(Xanax)'는 '항불안제'다. 자낙스를 복용하면 불안(anxiety) 및 공황장애(panic disorder) 증상이 빠르게 사라진다. 자낙스는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s) 계열의 약물로서, 이 계열의 약물로는 자낙스 외에도 발륨(Valium)이 있다. 자낙스는, 강하고 빠른 약효를 자랑한다고 한다. 발륨에 비해 부작용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그 약물을 복용해본 적이 없어서 그 약효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Drugs.com 웹사이트에 들어가 자낙스 사용자 리뷰를 훑어보았다. 2022년 12월 5일 오후에 접속했는데, 거의 '자낙스 찬사'로 도배되어있었다. 시험삼아 스크롤을 한참 내려봤지만 추천글 말고 단 한 편의 경고글(합리적 의심이나 약간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글)도 읽을 수 없었다.
 
30년간 먹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는데 주치의가 은퇴하고 새로 의사가 오더니 자낙스 용량을 줄여버린 바람에, 불안증과 불면증 때문에 자신의 일상생활이 어렵게 되었다는 한탄의 글이 우선 눈에 띈다. 또다른 리뷰 작성자는 만일 자낙스를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지 알 수 없다는 식의 무시무시한 '가정법'을 사용한 글을 올렸다. 공황장애를 겪는 또다른 환자는 "이 약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문장에 느낌표 두 개를 붙여놓고 시작해서는, "누구든지 (이 약의) 도움을 받아 버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로 글을 끝맺었다. 대단한 약이구나 싶다.
 
자낙스의 모습 Xanax

▲ 자낙스의 모습 Xanax ⓒ public domain

   
자낙스의 경고
 
다큐멘터리 <테이크 유어 필스: 자낙스의 경고>는, 원제에는 없는 '경고'라는 글자가 한국어 제목에 이미 붙어있어서 짐작되지만,  자낙스에 대해서 찬사와 경고 중 살짝 경고 쪽으로 기울어져있는 감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정말 '살짝'일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찬사와 경고를 두루두루 '공평하게' 보고 듣게 된다. 그러나 아마 불안증과 공황발작을 겪어본 사람은 항불안제의 약효에 대해 의심하고 경고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올라올 수 있다. 반대로, 항불안제의 남용을 크게 우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필요할 땐 자낙스를 복용해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다소 께름칙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영화의 전반부를 볼 때는 '필요할 땐 자낙스를 복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께름칙하게 느껴졌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메시지에 그럭저럭 많이 동화된 케이스다. 솔직히 나는 약물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도 1년이면 한 번 복용할까 말까 할 정도다. 아플 때는 약보다는 음식이나 휴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불안증이나 공황증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저급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고백컨대 나는 그 같은 정신적 질환에 대해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주변에서 친구나 가족이 불안증이나 불면증이나 공황증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하면 '아, 약 말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면 어떨까'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항불안제의 부작용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증세가 나타났을 때마다 번번이 자낙스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불안, 공황 증세를 이겨낼 수 없게 되는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사는 약의 모양을 한 술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알콜중독자들이 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자낙스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중독가능성 외에 자낙스 장기적, 습관적 복용이 문제가 되는 또다른 이유는 자낙스의 효능발생 원리 때문이다. 불안과 공황 증세가 환자를 압도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효력을 지닌 약물인 까닭에, 자낙스는 뇌 신경세포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볼 때 두뇌 쪽에 어떤 정도로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자살충동에서부터 치매까지, 사실상 인과관계를 아직 선명하게 지목해 단정할 순 없다 해도, 자낙스 복용이 인간의 두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여러 의학연구들이 이미 굉장히 많이 나와있는 실정이다.   
 
다큐멘터리에, 자낙스를 정말 아주 조금씩 줄여가는 환자가 한 명 출연했다. 그는 자신이 대학 때 익혀두었던 화학지식을 총동원해서 알약을 쪼개고 부숴서 액체 상태로 만들어서, 작은 눈금 단위로 정말 처절하게 복용량을 줄여가는 중이다. 의사들은 (여러 환자들을 상대해야 해서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알약 크기나 개수를 줄이거나 하는 방식으로 처방할 뿐, 지금 그가 하는 것처럼 정성껏 복용량을 줄이도록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복용량을 지정된 단위로 단계적으로 줄였을 때조차 그게 갑작스러워서 그의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충동이라는 금단증세만을 노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낙스의 중독성이 맹렬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속 한 장면:  자낙스의 용량을 스스로 줄이는 장면.

▲ 영화 속 한 장면: 자낙스의 용량을 스스로 줄이는 장면. ⓒ 넷플릭스

 
항불안제 권하는 불안한 사회
 
다큐멘터리는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증과 공황장애 환자들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안과 공황장애는 다만 개인의 기질적 문제만이 아니며, 실제로 개인적 병증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총기사고가 자주 발발한다. 테러의 위험도 상존한다. 기후위기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공포를 홍보하는 시위를 대할 때, 해결방안이 쉬 보이지 않으면, 예민한 사람들은 낙담하고 걱정근심에 더 많이 더 깊이 빠져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학여행객을 태운 배가 눈앞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나기도 하고, 모처럼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여있는 길에서 압사사고가 나기도 하며, 노동하는 중이나 군대훈련 중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 험악한 사건사고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취급되고 처리되는지 그 전후과정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들이 불안증 혹은 공황장애 등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사회적 수습절차와 향후 대응방안이 건강하지 않거나 불안정하면 불안증과 공황증 환자들이 더 양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럴 때 심약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쯧쯧, 한탄할 일이 아니다. 그분들의 존재를, 마치 '잠수함 토끼'처럼 이 사회를 더 건강하고 덜 불안하게 바꿔가는 원동력이자 계기로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다. 물론 사회가 몹시 불안해도 정신건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걸 실천해나가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불안한 사회, 인간의 회복탄력성 신뢰하며 살아가야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개인들이 저마다 정신의 근육을 키워서 평소 불안과 공황 증세에 대처하다가, 그게 정 안 될 때에만 자낙스를 복용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평상시에 정신의 근육을 키워놓으면 자잘한 불안과 공황 증세가 오더라도 자낙스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인간의 '회복탄력성'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으니,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의견이다. 이는 개인을 넘어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정신적 근육(불신과 불안을 줄여주는 상호신뢰)을 키워놓으면 적어도 평소에는 그 사회구성원들 대다수가 불안증과 공황증을 그래도 대체로 잘 다룰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단, 어느 한 사회가 평상시 그 사회의 여러 불안한 상황을 건강하게 견뎌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회복탄력성'이란 사회적, 정신적 근육이 갖춰져있다 해도, 다른 나라에서 테러나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다시 그 사회에도 불안증과 공황증 발발비율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 글로벌 시대인 만큼 사회적, 정신적 근육도 글로벌하게 키워야 할 일이다.  
 
영화의 한 장면: 출연한 신경정신과 의사 중 한 분.

▲ 영화의 한 장면: 출연한 신경정신과 의사 중 한 분.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주간기독교>에도 실립니다.
자낙스 불안 공황장애 항불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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