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글', <해리포터>라는 작품이 만들어 낸 이 용어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통 명사'처럼 쓰인다. 해리포터를 읽은 이가 아니더라도 '머글'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터이다. 

'머글'이라는 용어의 맞은 편에는 '마법사'가 있다. 런던 지하철 역 기둥을 통해 갈 수 있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에는 주문을 외는 마법사들이 있다. 작가 조앤 롤링이 창작해낸 세계가 책으로, 영화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문화 콘텐츠로 살아 숨쉰다. 

팀 버튼이 만든 별종들의 세계 
 
 웬즈데이

웬즈데이 ⓒ 넷플릭스

 
마법사들의 학교 호그와트, 그리고 마법사들과 머글들의 분리된 세계,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돌아온 팀 버튼 감독은 바로 이런 해리포터 식의 세계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냈다.

마법사 대신, 그 자리에 '별종'을 넣었다.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처럼 보는 이를 돌로 변하게 만드는 '고르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세이렌 등 고전 속 신비한 존재들에, 늑대인간·심령술사 등이 '별종'이라는 이름으로 '네이모어' 학교에 모여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 신부> 등을 통해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 감독은 <아담스 패밀리>를 소환한다. 

장미 봉우리를 잘라내고 가지를 거꾸로 장식하고, 단두대를 사랑하는 매우 '고어(Gore)'스런 취향의 가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인한 '언사'를 내뱉는 딸에게 기꺼이 '웬즈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수심어리다)'라는 영미권의 고전 시가인 마더 구스에서 유래한 문구를 참고해서 말이다. 

그 이름답게 웬즈데이는 동생과 자신을 따돌리고 괴롭히던 아이들이 수영하는 곳에 피라냐를 풀어넣는다. 학교에서 쫓겨난 웬즈데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니던, 어머니의 동급생 라리사가 교장으로 있는 네이모어로 전학을 오게 된다. 

별종들의 학교 네이모어는 제리코라는 소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별종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게서 풍기듯, 네이모어는 제리코 재정에 막대한 도움을 주며 학교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리코 사람들은 네이모어의 자금력에는 기꺼이 환대하지만 보안관 도노반(제이미 맥셰인 분)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늘 사건만 생기면 네이모어, 즉 별종들의 짓일 꺼라 의심한다. 

그런 곳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모두를 대하는 웬즈데이가 전학을 오고, 그 즈음 제리코에는 괴물로 추정되는 연쇄 살인마가 판을 친다. 별종 중의 별종 웬즈데이는 자신을 '마녀'라며 죽이려던 동급생이 자신의 눈 앞에서 괴물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다음 날 죽은 줄 알았던 동급생이 멀쩡하게 학교를 떠난다. 그냥 두고 볼 웬즈데이가 아니다. 

별종 통해 드러낸 10대의 세계 
 
 웬즈데이

웬즈데이 ⓒ 넷플릭스

 
제니 오르테가가 분한 웬즈데이는 기괴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사사건건 부모의 세계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10대의 모습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독설을 내뿜고, 부모의 포옹조차 마다하지만 알고 보면 웬즈데이는 부모의 인정과 지지, 그리고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일 뿐이다.  

웬즈데이뿐만 아니다. 운 나쁘게 혹은 운 좋게 웬즈데이와 한 방을 쓰게 된 늑대 소녀 이니드(엠마 마이어스 분)는 핸드폰조차 쓰지 않는 극단적 아싸인 웬즈데이와 달리, '핵인싸'의 우울함이라고는 1%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도 여름 캠프까지 보내려는 가족에 시달리는 10대 소녀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웬즈데이와 제이비어(퍼시 하인즈 화이트 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세이렌 비앙카(조이 선데이 분)는 사이비 심리 집단으로 돈을 버는 엄마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인기 있는 심령술사의 아들 제이비어는 늘 유명세의 아버지 그늘에서 허우적댄다. 

8회차의 시리즈는 차갑고 냉혈한 같은 소녀 웬즈데이가 네이모어에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한 학기가 끝나고 그곳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시간동안 홀로 아가사 크리스티못지 않은 추리 소설가가 되겠다고 타자기를 두드리던 소녀는 제리코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어디 연쇄 살인 사건 뿐인가. 오랫동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아왔던 아버지의 오랜 혐의도 벗겨낸다.  

또한 10대 청소년 답게 제리코 마을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도노반 보안관의 아들 타일러와 제이비어 사이에서 첫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어낸다. 물론, 아담스 패밀리의 딸답게 그녀의 첫사랑은 연쇄살인와 얽혀 그녀를 위험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세상 그누구도,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조차 거부하던 소녀는 천진난만한 '동방지기', 이니드와 얽히며 카누 경기에도 나서고, 마을 제단식에서 첼로 연주자로 나서기도 하며 견고하게 닫았던 자신만의 성문을 열어간다. 

'별종'과 '평범' 사이
 
 웬즈데이

웬즈데이 ⓒ 넷플릭스

 
우리 사회에서 '머글'이란 용어가 독특한 뉘앙스로 자리매김하듯이, <해리 포터>의 세계관에서 마법사의 순혈주의와 머글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볼드모트라는 거악의 근원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웬즈데이가 전학간 별종들의 학교 네이모어, 그리고 학교가 자리한 제리코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들은 제리코 마을에서 벌어진 별종 학살 사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별종들, 그리고 그들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혐오'의 근원이 현재의 살인 사건 뿌리가 된 것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건의 중심으로 달려드는 웬즈데이,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는 바로 이런 여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에 의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그저 매력에만 그치지 않고 또래 청소년 서넛 쯤은 거뜬히 들쳐엎어 버리는 웬즈데이의 분투기와 성장기가 팀 버튼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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