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드라마 <전원일기>의 주역들이 20년 만에 뭉쳤다. 10일 방송된 tvN STORY 새 예능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 첫 회는 '22년 동안 못다한 그 말' 편으로 김수미, 김용건, 이계인, 이숙, 박은수, 최불암 등 <전원일기>를 빛낸 추억의 명배우들이 오랜만에 전원라이프를 통하여 반갑게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전원일기>의 추억을 회상하며 김용건은 "안식처 같은 공간", 김수미는 "늘 그리웠다. 그 시골이, 고향이", 이계인은 "푸근하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게 고향"이라고 정의했다. 고정 출연자 세 사람은 김수미의 집에서 먼저 모였다. 요리의 달인답게 김수미가 직접 차린 음식으로 맛있는 식사를 나누면서 옛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첫 게스트는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함께했던 <전원일기>의 출연진들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시골하우스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김수미는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할을 처음 시작할 때 29세의 꽃다운 나이였다고 밝혔다. 젊은 여배우가 한창 나이에 할머니 역할을 맡아야했던 게 부담스러웠을 법도 했지만 김수미는 능청스럽게 그 시절 일용엄니의 캐릭터를 재현해내며 웃음을 선사했다. 김수미가 "이 연기를 얼마 만에 하는지 모르겠다"고 쑥쓰러워하자 김용건은 "아직 살아있다"며 칭찬했다.
 
약 20년 전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 배우들은 각자 바쁜 생활을 보내느라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었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전원일기>의 옛 동료를 다시 만나는데 설렘 을 감추지 못했다.
 
맏아들 '용진' 역의 김용건은 옛날 <전원일기>가 촬영되었던 두물머리 지역을 찾아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김용건은 "전원일기가 시작될 때부터 42년이 흘렀는데 풍경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사람만 변한 거다"라며 아련한 감정에 젖어들었다. 뒤를 이어 일용엄니 김수미와 '노마아빠' 이계인이 차례로 도착했다.
 
세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양수리 시장 일대를 돌아보고 <전원일기>의 대표적인 촬영지이자 극 중 지명인 '양촌리'의 배경(1997-99년)이 된 남양주시 조안면 삼태기마을에 도착했다. 촬영장소인 '전원일기 하우스'는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양촌리 김회장 댁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세 사람은 석유곤로, 맷돌, 재봉틀과 촬영 당시의 사진 등 곳곳에서 옛날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었다.
 
김용건은 "저는 서울 출신이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없다. 전원일기를 통하여 내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김수미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기 들어온 순간 전원일기로 돌아온 것 같다"면서 "엄마 생각도 나고 어릴 적 살던 집도 생각도 난다"라며 신기해했다. 이계인은 "촬영 전날 눈만 감고 있다가 나왔다. 전원일기 식구들을 만나고 촬영지에도 간다는 생각이 드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 소년같은 설렘을 드러냈다.
 
요리계의 큰 손답게 김수미는 어마어마한 음식을 준비하여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덕분에 나이 71세에 졸지에 막내가 된 이계인은 형과 누나들이 시키는대로 온갖 심부름과 잡일을 떠맡아야했다.
 
세 사람은 앞서 전화통화로 전원일기의 옛 동료들을 직접 초대했다. '국민엄마' 김혜자가 오랜만에 전화로 반가운 목소리를 전했다. 김혜자는 김용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잘 있었어요? 나 눈물날라고 그래"라며 반가움과 그리움에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혜자의 눈물에 듣고있던 김수미도 울컥하여 눈시울을 붉혔다.
 
장난기가 발동한 이계인이 최불암의 성대모사로 속이려고 했으나 대번에 눈치챈 김혜자로부터 "아니다, 이건 그냥 까부는거야. 내가 바보인 줄 아냐"라는 타박을 들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최불암과 <전원일기>에서 국민 부부로 불리며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실제 부부라는 오해까지 받았던 김혜자는, "내가 그 사람 목소리를 22년을 듣고 살았는데 나는 못 속이지"라는 말로 듣는 이들을 묘한 감정에 빠져들게 했다.
 
갑작스러운 출연요청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소 주저하던 김혜자는 갑자기 "아이는 잘 자라?"라고 돌발 질문을 던지며 김용건을 당황하게 했다. 김수미는 "선물로 금반지 한돈 준비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청산유수같은 입담을 자랑하던 김용건도 아이 이야기에는 말문이 막힌 듯 쑥스러운 웃음만 지었다.
 
두 번째 섭외자로는 큰며느리 역할의 고두심이 등장했다. 스케줄이 너무 바쁘다며 출연을 망설이는 고두심에게 김수미는 서로의 프로그램에 한번씩 번갈아 출연해줄 것을 제안했다. 김용건은 자신도 해외로 영화촬영 일정 때문에 바쁘다며 반나절만 시간을 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고두심은 "오빠, 더 '큰 일' 저지르지 말고, 알았지?"라고 의미심장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날리며 또 한번 김용건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전원일기>는 최근 온라인과 유튜브 등을 통하여 재방송되며 올드팬과 젊은 세대를 아울러 재조명되고 있다. 이계인과 김용건도 최근 <전원일기>와 관련하여 여기저기서 연락을 자주받는다고 고백했다. 때마침 전화통화로 연결된 최불암은 "우리 전원일기 식구들이 30명쯤 되지않나. 그 사람들 생각하면 한번 얼굴이라도 비춰야한다"고 출연을 약속하며 <전원일기>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책임감을 드러냈다.
 
드라마의 시대 배경상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 많았던 김용건은, 20년 만에 다시 그 시절의 라이딩을 재현해보이며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추억에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해당 마을에서 거주했다는 한 농민을 만난 김용건은, 당시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농작물에 피해를 입었던 농민들을 위하여 유인촌-박은수 등 출연진들이 대신 농작물을 구입하여 손해를 배상해줬다는 훈훈한 뒷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해당 주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드라마인 전원일기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이 컸다"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다시 나온다면 농사를 짓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주민들은 김용건에게 밭에서 바로 채취한 싱싱한 채소와 옥수수를 선물하며 넉넉한 시골인심을 보여줬다.
 
이계인은 첫 초대손님으로 '쌍봉댁' 역할을 연기한 이숙을 맞이하려 나섰다. 극 중 노마아빠 역의 이계인과 중년 러브라인을 형성했던 이숙은, 여전히 유쾌하고 활기넘치는 모습이 돋보였다.
 
이계인은 아들의 결혼식 때 축의금을 받았는데, 정작 자신은 이숙의 딸 결혼식 때는 축의금을 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고백하며 즉석에서 현찰을 선물했다. 이계인은 "계좌로 줄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얼굴 보면서 주고 싶었다"고 밝혔고, 놀란 이숙은 "인간성 최고다. 기억력과 매너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손가락 따봉을 날렸다. 이숙은 <전원일기> 시절 노마아빠와 쌍봉댁의 러브라인 등을 둘러싼 추억의 TMI 토크로 이계인을 점점 질리게 만드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냈다. 
 
이숙이 합류한 전원일기 하우스에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점심식사를 마쳤다. 김수미는 잠시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김수미는 극중 고부관계로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며느리 역할의 김혜정(복길엄마 역)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김혜정과는 <전원일기> 종영 이후 20년간 보지 못했다고.

그런데 막상 김혜정이 도착하자 모두 기뻐하며 반기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정작 김수미는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다소 서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용건-이계인-이숙은 두 사람만의 대화를 위하여 잠시 자리를 피해주기로 하고 장을 보러 나섰다.
 
두 사람만 남겨지자 김수미와 김혜정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한동안 묵묵히 할 일만 하던 두 사람은, 김수미가 조심스럽게 "솔직히 말해봐라. 아직도 응어리가 있지?"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김혜정은 "없다. 저도 선배님만큼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었는데, 응어리가 있으면 아직 철이 덜든 거지"라고 밝게 답했다.

그럼에도 김수미는 "그때만 해도 내가 참 많이 모자랐다"며 조심스럽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전원일기>에서 고부관계 역할을 연기하면서 김수미가 김혜정을 크게 혼낸 적이 있었다고 김수미는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진심을 다해서 사과했다"고 고백하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중에, 일용이 역할의 박은수가 등장했다. 무려 20년 만에 '일용이네'가 완전체로 다시 모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극 중에서는 모자관계로 출연했지만 실제로는 아들의 역할의 박은수가 어머니였던 김수미보다 2살 연상이었다.
 
세 사람은 <전원일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조금씩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이어진 예고편에서는 '양촌리 김회장' 최불암의 등장과 함께 마침내 한 자리에 모은 <전원일기> 패밀리의 다사다난했던 후일담들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 21일 방송을 시작하여 2002년 12월 29일, 1088회를 끝으로 종영할 때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장수 국민 드라마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농촌 이야기를 넘어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이야기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시대상, 가족주의를 중심으로 인생의 가치와 교훈 등을 담아낸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다.
 
가족과 이웃 간의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에서는 <전원일기>처럼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서민 드라마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도 많아졌다. 김혜자, 최불암, 고두심, 김용건, 유인촌, 김수미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대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는 지금 다시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회장님네 사람들>은 <전원일기>의 배우들을 20년 만에 소환하여 그 시절의 그리운 레트로 감성을 재현하는 관찰 예능이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의 전원 라이프를 통하여 시골의 정과 고향의 향수를 체험하고, 자연이 주는 위로와 선물을 만끽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대리만족의 힐링을 선사한다.

<전원일기>를 본 사람들도, 못본 사람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구성과 명배우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듯 새로운 향수와 추억을 선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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