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격려하는 파울루 벤투 감독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종료된 후 한국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선수들 격려하는 파울루 벤투 감독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종료된 후 한국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이쯤되면 똑같은 스코어를 일부러 또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유효 슛 기록도 닮았다. 축구팬들이 요코하마 참사로 기억하고 있는 2021년 3월 25일 A매치 '한국 0-3 일본' 게임에서도 벤투호는 유효슛을 1개(일본 10개)만 기록하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490일 만인 2022년 7월 27일에 다시 만나서도 유효슛 1개(일본 8개)로 초라한 기록을 남기며 주저앉았다. 

46일 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아시안컵 8강 토너먼트(2022년 6월 12일)에서 당한 '한국 0-3 일본' 결과는 물론 16세 이하 남자대표팀이 2022년 6월 8일 센다이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드림컵 대회에서 당한 '한국 0-3 일본' 결과까지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치욕의 4연속 '0-3' 성적표다. 중간에 있는 두 게임이야 비교적 어린 연령별 대표팀들의 것이라 일부러 외면한다고 해도 490일 만에 재현된 벤투호의 한일전 0-3 완패 역사의 되풀이는 맨정신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사라 말할 수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7일(수) 오후 7시 20분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2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남자부 일본과의 마지막 게임에서 후반전에만 3골을 내주며 0-3으로 완패해 우승 트로피를 일본에게 넘겨줬다.

2021년에는 이강인, 이번에는 권경원?

남자부 두 번째 게임 결과들이 모두 나온 뒤 한국은 이번 한일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라는 장밋빛 유혹의 편지를 받아들었다. 가운데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위해 벤투 감독은 센터백 권경원을 앞으로 밀어올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게 했다. 우리 대표팀 구성원 중 권경원이 유일하게 J리그(감바 오사카)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J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대표 선수들의 최근 성향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경원을 이 자리에 세운 것이 벤투 감독의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25일 요코하마에서 0-3 완패할 때 이강인을 맨 앞에 내세워 어설픈 제로 톱 전술을 시험했던 게임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다.

게임 시작 후 1분도 안 되어 일본의 강한 압박에 흔들리며 마치노 슈토에게 노마크 중거리슛을 내준 것부터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의 허리가 휘청거렸다. 그로부터 18분 뒤, 수비형 미드필더 권경원은 무리하게 공을 끌다가 위험 지역에서 역습 기회를 일본에게 내줬다. 공을 빼앗은 일본의 왼쪽 날개 소마 유키는 한국 센터백 조유민을 가볍게 따돌리며 왼발 대각선 슛을 날렸고 그 공은 골문 오른쪽 기둥 하단을 때리고 나왔다.

후반전 시작 직후에도 일본 공격수 니시무라 다쿠마의 결정적인 오른발 슛이 날아들기까지 우리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일방적 흐름을 보고도 벤투 감독은 '미드필더 권경원' 카드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점수판이 0-2가 되면서 완패의 기운이 엄습하자 그제서야 벤투 감독은 센터백 박지수를 빼고 공격수 조영욱(68분)을 들여보내며 '미드필더 권경원' 카드를 접었다. 

이렇게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일본에게 질질 끌려다닌 원인 중 하나는 벤투 감독이 급히 꺼낸 실험 카드만이 아니었다. 만 20살밖에 안 된 일본의 유망주 미드필더 '후지타 조엘 치마'가 상대적으로 경험 많은 우리 선수들에게 오히려 한 수 가르쳐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닮아 구릿빛 피부가 눈에 띄는 후지타는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야심작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늠름하게 일본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빠르고 거친 압박 수비의 중심 역할을 해낸 것도 모자라 귀중한 골들을 터뜨리는 출발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49분, 일본의 첫 골이 들어갈 때 한국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모서리 부근 위험 지역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후지타가 기막힌 오른발 스탠딩 크로스를 올려주었고 반대쪽에서 후지타를 믿고 솟구친 소마 유키가 가장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헤더 골을 성공시켰다. 

후지타를 중심에 두고 돌아가는 일본 특유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패스 플레이는 72분에 완벽한 3-0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후지타 조엘 치마가 공간을 이동하며 패스 전술 펼치기를 시작하자 '니시무라 다쿠마-코이케 류타-마치노 슈토'로 이어지는 공 흐름이 한국 수비수들 입장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했던 것이다. 마치노 슈토의 왼발 밀어넣기가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국 미드필더들이나 수비수들은 네 명의 상대 선수를 조금도 따라붙지 못했다.

이처럼 만 20살 미드필더 후지타 조엘 치마의 훌륭한 플레이 메이킹에 비해 실패한 수비형 미드필더 카드를 고집한 우리 대표팀은 한동안 지우기 힘든 '0-3' 꼬리표를 불편하게 달고 다니게 생겼다. 63분에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로 내준 두 번째 골(소마 유키 코너킥 크로스-사사키 쇼 헤더 골) 상황도 지난해 3월 25일 요코하마에서 내준 세 번째 골(83분, 아타루 에사카 코너킥 크로스-엔도 와타루 헤더 골) 상황과 흡사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 참담할 뿐이다.

지난해 일본 대표팀에게 10개의 유효 슛을 내주고 완패할 때보다 2개나 적은 유효 슛을 내준 것과 우리가 기록한 단 1개의 유효 슛 시간이 85분(이동준, 2021년 3월 25일)에서 무려 8분이나 빠른 77분(송민규, 2022년 7월 27일)에 찍혔다는 것들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손흥민-황희찬-황의조-황인범-김민재-정우영1-정우영2' 등 해외파만 바라보며 116일밖에 안 남은 카타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2022 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결과
(7월 27일 오후 7시 20분 도요타 스타디움, 일본 아이치현)

한국 0-3 일본 [득점 : 소마 유키(49분,도움-후지타 조엘 치마), 사사키 쇼(63분,도움-소마 유키), 마치노 슈토(72분,도움-코이케 류타)]

한국 선수들
FW : 조규성
AMF : 나상호, 김진규(85분↔김동현), 권창훈(68분↔이영재), 엄원상(56분↔송민규)
DMF : 권경원 
DF : 김진수, 박지수(68분↔조영욱), 조유민, 김문환
GK : 조현우 

2022 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순위
1위 일본 7점 2승 1무 9득점 0실점 +9
2위 한국 6점 2승 1패 6득점 3실점 +3
3위 중국 4점 1승 1무 1패 1득점 3실점 -2
4위 홍콩 0점 3패 0득점 10실점 -10

2022 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개인상
MVP : 소마 유키(일본)
득점왕 : 소마 유키, 마치노 슈토(공동 1위, 일본)
최우수 수비수 : 타니구치 쇼고(일본)
최우수 골키퍼 : 김동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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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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