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

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 ⓒ 채널A

 
“담배도 끊었지만 살인은 끊을수 없었다”는 유명한 어록은 마지막 유언이 됐다. 천여명이 넘는 범죄자를 상대해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도 “만나본 범죄자 중에서 가장 잔혹했다. 세상에 악마가 있다는 이 자가 아닐까.”라고 경악할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을 아무 이유없이 끔찍하게 살해하고도 태연하게 죄책감도 반성도 없었던 최악의 살인마,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악마가 되기를 선택한 자. 그리고 최후에는 자기 자신까지 살해하는 것으로 파국을 맞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이야기였다.
 
5월 27일 방송된 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2004년 1월부터 2년 4개월간 서울 경기 일대에서 무차별 살해 행각을 이어간 정남규의 행적을 조명했다.
 
정남규는 “1000명의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범죄만 총 24사건이었고 13명이 살해당했으며 20명이 중상해를 입었다. 주택 4채, 건물 1채, 차량 2대에 방화를 지절렀다. 노상 흉기 습격, 방화, 성폭행, 주택 침입 살해 등 한 사람의 행각으로 믿기 힘든 다양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 지역과 대상도 기분내키는대로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정남규는 노상 습격 당시 목표물로 밤이나 새벽이나 심야에 혼자 출퇴근하는 여성을 노렸다.마땅한 범행대상을 찾지못했을때는 새벽에 일하는 우유배달원을 노리기도 했다.

살아남은 피해자중에는 정남규의 습격을 받았을 때 처음엔 강도인줄 알고 가방을 던져줬지만, 가방에는 눈길을 주지않고 사람에게만 달려들며 심지어 ‘웃는 모습’까지 목격하며 공포감을 느껴야했다고. 정남규의 범행이 단지 살인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쾌락살인’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남규의 범행 수법과 동기는 일반적인 범죄자들의 심리나 행동패턴과는 달랐다. 정남규는 피해자를 습격할 때 몸을 돌려세워 얼굴을 볼수있도록 정면을 공격하곤 했다. 정남규의 진술에 따르면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것.
 
피해자들이 정남규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손이나 다리에 상처를 입은 경우도 많았다. 또한 피해자들 중에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문 앞에서 참변을 당하여 쓰러진 것을 가족이 목격한 경우도 있어 더욱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정남규는 학창 시절부터 선배들로부터 집단폭행과 음주-절도 강요 등 많은 시달림을 받으며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책감과 열등감이 깊었던 정남규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동물을 학대하고 살해하며 분풀이를 했다.이 역시 사이코패스 성향 범죄자들의 공통점중 하나였다. 각종 비행을 저지르던 정남규는 1995년에는 강간 미수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정남규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교도소안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많이 맞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일용은 “본인의 성격결함으로 인한 문제조차 모든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인지한다.본인이 심리적 고립상태를 자초하면서 모든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아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정남규는 철저히 무시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위한 정남규의 선택은 살인이었다. 2003년 마지막 출소 이후 정남규는 ‘천명의 사람을 죽이겠다.’는 목표를 정한 뒤 몸을 단련하고 각종 범행도구와 수법을 공부해가며 약 1년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진은 “범행을 시작하기전에 심정적으로는 본인을 이미 ‘살인의 고수’로 여겼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남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범행 대상으로 노렸다. 첫 시작은 2004년 부천에서 초등학교 5,6학년생을 납치하여 야산에서 살해한 것. 피해자가 신고있던 운동화 끈으로 손을 결박하고 추행한 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당했던 수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두 소년은 범행 16일후 인근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정남규는 “목을 졸라 살해할 때 가장 만족스럽다. 고통스러운 얼굴은 내눈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정남규는 이후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반드시 언론보도를 확인했고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범행 지역을 이동했다. 일반적인 살인범들과 달리 시신을 그 자리에 방치한 것은, 완전범죄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증거 인멸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살해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는 분석이었다.
 
권일용은 정남규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현장에는 정남규가 저지른 범행 관련 기사들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피해자의 충격과 고통을 떠올리며 즐기기 위해서였다.

정남규는 범행에 실패하거나 마땅한 대상을 구하지 못한 날에는 “예전에 범죄를 저지른 곳에 가서 서 있어봤다. 너무나 행복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범인은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곳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수사 격언처럼, 살인을 추억하는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이었다.
 
노상습격을 이어가던 정남규는 약 1년이 흐르면서 자택 침입으로 범행 타깃을 바꿨다.계속된 범행으로 주민들의 경계심이 커졌고 노상에서 범행을 저지를 경우 실패 확률이 높다는 판단하에,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하기 용이한 실내 범행을 선택한 것.

정남규는 한 평범한 가정에 침입하여 한 소녀를 성추행하고 진안하게 살해한 뒤 방화까지 저질렀다. 집안에 있던 삼남매는 모두 사망했고 아버지는 큰 화상으로 전신에 장애를 입었다.
 
정남규는 파이프렌치나 호일복스 등 무거운 공구들을 범행도구로 사용했고 범행 이후에는 주변 주택가에 버리는 방식으로 은닉했다. 범행을 거듭할수록 정남규의 방식은 더욱 잔혹해졌고 피해자들은 살아남은 사람도 극심한 고통과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다.
 
권일용은 정남규의 비열함에 가장 분노한 순간으로 피해자들이 “가난해서 못살았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라는 진술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정남규는 원래 부유층을 타깃으로 노렸지만, 정작 CCTV나 보안장치가 있어서 부유한 동네에서는 아예 범행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못했다고. 권일용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서 범행을 분석할 이유가 있을까.” 깊이 회의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극악무도한 정남규의 범행은 시민들에 의하여 막을 내렸다. 서울 신길동의 한 주택에 침입했던 정남규는 집주인 부자와 격투 끝에 붙잡혔다. 정남규는 경찰이 순찰차에 태우려는 순간 도주했으나, 다행히 시민들의 제보로 2시간만에 다시 검거됐다. 2006년 4월 22일 새벽 4시 경이었다.
 
정남규는 체포되는 과정에서도 “천명을 죽여야하는데 너무 빨리 잡혔다. 끝났다, 안타깝다.”는 혼잣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함을 느낀 경찰은 단순강도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압수수색 끝에 정남규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권일용은 정남규를 대면했을 때 첫 인상으로 “다른 사람과 눈을 제대로 맞추지못했다.”고 회상했다. 권일용이 정남규의 전과 경력을 분석하여 수감생활을 소재로 이야기를 꺼내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잘알고있다는데 놀란 정남규가 그제야 대화를 시작했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정남규는 이미 권일용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정남규의 자택에서 권일용의 사진과 프로파일링 기법을 다룬 인터뷰 기사를 따로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됐되며 섬뜩함을 안겼다.
 
정남규는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지 않았다. 현장 검증 당시 태연한 얼굴과 뻔뻔핸 토도로 일관하여 자신을 비난하는 시민들과 맞서기도 했고, 재판정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난동을 부렸다. 정남규는 법원에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남규가 저지른 마지막 살인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정남규는 2009년 11월 21일 만 40세에 구치소 독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정남규가 재판부에 보낸 편지로 자살의 이유는 유추가 가능하다.
 
정남규는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살아남은 피해자 20명도 꼭 죽이고 싶다.”면서 “살인세계가 너무 좋고 환상적이다. 담배도 끊었지만 살인을 참는 것이 더 어려웠다.지금도 구속된 탓에 범행을 못해서 답답하고 괴롭다”며 끝까지 막말로 일관했다.

기호 행위인 담배와 자신의 살인행각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정남규의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와 뿌리깊은 자기합리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권일용의 분석도 “정남규의 자살은 죄책감이 아닌, 살인중독에 빠진 집착으로 끝내는 자기 자신까지 살해한 것“으로 정의했다.

정남규의 사망은 인과응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이 아닌 또다른 상처로 남았다. 한 피해자 유가족이 정남규의 사망소식에 격분하며 남긴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많은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없이 죽는 것은 끝까지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
 
안타깝게도 정남규에게 희생된 이들은 모두 성실하고 무고한 서민들이었다. 새벽을 시작하던 우유배달원, 할머니의 아침 출근길을 배웅하던 여고생, 막내 아들과 잠을 청하던 삼남매의 엄마, 꽃도 피워보지 못한 어린 생명까지. 범인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러한 잔혹한 범죄로 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블랙 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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