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 ⓒ 이선필


 
시작 때만 해도 일종의 편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영남 알프스'라는 별칭답게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지형을 배경으로 산악영화제를 열겠다는 복안이 실현된 지 7년이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초반의 우려를 딛고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을 받는 국제영화제로 인정받아 행사를 치르게 됐다.
 
2020년까지 가을에 운영되던 영화제는 2021년 들어 봄으로 옮겼고,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행사가 이어지는 올해는 더욱이 벚꽃 개화시기와 맞아떨어져 현장을 찾는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중이다. 여기에 42개국 총 148편의 영화 상영, 즉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행사를 치르는 데에 주최 측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4일 오후 영화제 주요 행사가 열리는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배창호 집행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봄맞이 영화제

"준비과정이 아슬아슬했다"라며 배창호 위원장은 운을 뗐다. 2018년부터 집행위원장직을 수행 중인 그는 취임 2년 만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영화제의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 영화계 안팎에서 호평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올해 영화제에 마련된 상영장은 총 5곳. 실내 상영관 두 곳에 더해 공연과 야간 상영, 관객 참여형 행사가 가능한 세 군데의 야외 상영관으로 구성돼 다채로운 행사가 가능해졌다.
 
"개막 임박해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됐고, 국민들도 많이 답답해하시는 것 같던 차에 야외에서 주로 행사가 있는 우리가 문을 활짝 열어보자고 생각했다"며 배 위원장은 말을 이었다.
 
"물론 가을에 할 때도 좋았지만 태풍 피해도 있었고, 도저히 안되겠더라. (울주군) 등억리 쪽이 벚꽃이 유명하니 봄에 열자고 했는데 지난해엔 코로나19 팬데믹이라 활짝 열진 못했고 올해 본격적인 봄의 영화제가 열렸다. 일단 제 예상보다 관람객들이 더 좋아하시더라. 산악영화들이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게 많아서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휴식도 되는 것 같고.
 
의외로 국제 경쟁 부문 출품작이 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 우리도 신기해했다. 그간 산악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진 건지,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길 기다린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어려운 때에도 영화는 만들어진다는 걸 실감했다. 산악영화뿐 아니라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를 울산 지역에도 소개하고, 또 여기서 보기 어려운 한국독립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했다. 우리가 일종의 특수 장르 영화제인데 갈수록 관객이 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정체성 잘 유지하며 대중성 확보하는 게 과제"
 
 제7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장 이모저모.

제7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장 이모저모.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올해 울주산악영화제가 내세운 슬로건은 '언제나 함께'다. 성장과 개발 중심이 아닌 늘 사람들 곁에 존재하는 자연을 한껏 돌아보게 하는 슬로건이다. 실제로 영화제 곳곳에선 1회용 용기가 아닌 다회 용기를 활용한 행사 부스로 채워졌고, 상영작 중에도 환경 및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상당수였다. 영화제 출범 초기 등장했던 세계 3대 산악영화제로 성장하겠다는 구호에 대해 배창호 집행위원장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제가 집행위원장으로 오기 전 내세운 목표인데 그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잖나. 이곳을 다녀간 세계적 산악인들이 있다. 크리스 보닝턴, 쿠르트 딤베르거, 그리고 올해는 크시스토프 비엘리츠키(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 등. 이런 분들이 우리 행사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고 소문을 내줘서 세계에 우리 영화제 인지도가 꽤 높아졌다. 유럽 쪽이나 미국의 산악영화제들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치러지며 오래 열리고 있다. 우리도 관객 수에 연연하지 않고 규모보단 알찬 프로그램을 내세우려 한다.
 
프로그래밍 원칙은 산과 자연, 인간에 맞춘다는 거다. 여기에 모험과 환경, 극기 스포츠 등을 고루 더하는 편이다. 산악인의 도전 정신, 실패도 가끔 하지만, 극기심이랄까 그런 게 일상에서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영화들이 많다. '언제나 함께'라는 말이 참 친근하잖나. 우리나라는 산이 국토의 70프로다. 어딜 가도 산이 있다. 이웃이자 벗이지. 우릴 받아주고 신선한 대기와 좋은 풍광을 제공해주는 존재다."

 
물론 영화제가 해를 거듭하고 역사를 쌓아오며 불거진 몇 가지 잡음들도 있었다. 울산시, 울주군 일부 정치인들이 내세운 영남알프스 케이블카 공약은 영화제 취지와 반대되는 일이다. 또한 울산시가 주최하는 울산영화제가 지난해부터 시작되며 영화제를 통합해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있다. 울주군 예산이 절대적인 영화제 입장에서 자칫 정치적 사안에 흔들릴 위험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배창호 집행위원장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그런 일이 눈앞에 벌어지진 않고 있다. 영화제 진행엔 문제가 없다. 울주군에서 후원하는 예산이 많은데 긴밀한 협조 관계다. 영화제 성장을 보며 서로 흡족해하고 있다. 또 울산교육청도 영화제를 좋게 인식하고 있어 꾸준히 교류 중이다. 지금도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영화를 보는 중이다.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풍경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걸 보는데 참 흐뭇하더라. 학생들의 체험 학습 등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알고 있다.
 
(영화제 통합에 대해선) 매스컴에서 많이 얘기하던데 피부로 느끼는 정도는 아니다. 사무국장 차원에서 서로 문의가 있는지는 몰라도 울산영화제와 우린 정체성이 다르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부산처럼) 한 지역에 여러 영화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가 1회였는데 우리 쪽에서도 울산영화제 개막식에 많이 갔다. 거기서 상영한 울산 배경의 영화들을 이번에 우리도 틀고 있다."

 
팬데믹 시대 돌파를 상징하는 첫 국제영화제의 역할을 이야기를 하던 중 배창호 집행위원장은 영화 <쇼생크 탈출>을 언급했다.
 
"죄수들이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주인공이 교도소장이 없는 틈을 타 레코드판을 틀잖나. 모차르트 오페라 곡인데 사람들이 모두 전기에 감전된 듯 멈추더니 음악에 집중하고 전율을 느낀다. 그만큼 답답한 일상에서 예술이 큰 위안을 준 것이지. 영화 또한 그렇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빠진 사람들이 양질의 영화를 통해 내면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하실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마음의 감동을 느끼며 답답함에서 탈출하실 수 있을 것이다."
 
순항 중인 울주산악영화제의 이후 과제는 무엇일까.

배 집행위원장은 낮은 인지도 극복을 꼽았다. "그럼에도 한 번 찾아오신 분들이 다음에 다시 찾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고 낙관하면서 그는 "산악영화제라는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규모의 확장과 다른 나름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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