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지옥> 포스터

연상호 감독 <지옥> 포스터 ⓒ 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만족스러웠다. 흥미로운 시나리오와 아이디어는 자본과 기술로 근사하게 탄생했다. 거대한 사자가 나타나 지옥을 '고지' 받은 자를 '시연'하는 장면은 훌륭한 CG로 잘 표현되었다. 유아인과 김현주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박정자가 시연을 당하는 장면. 사이비 교주의 우스깡스러운 행동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갈피를 잃어버리고 발생하는 혼란. 공포를 먹고 자라는 세력. 그리고 그 세력을 추종하는 무리. 그것들을 물리치려는 또 다른 세력들. 그 모두가 자신의 믿는 정의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일반 사람들은 어느 한 곳을 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어쩌면 세상은 내가 아닌 타인으로, 나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으로 살아야 할 때,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감독은 신과 지옥 같은 비현실적 개념이 우리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 개념들이 현실에 들어와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간을 속박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지옥으로 간다는 '고지'와 불에 타 죽는 '시연'은 구체적인 기준도 주체도 없었다. 신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세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신의 의도를 안다는 그들을 믿었다. 길 잃은 양 떼는 몽둥이를 든 양치기를 무작정 따라나섰다. 그곳이 절벽이든 울타리든 상관없었다. 기존 세계의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모두 숨죽이며 누군가 길을 열어주기를 바랐다.

정진수 의장은 무엇을 원했을까

20년 전 고지를 받은 정진수(유아인 분)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왜 고지를 받았는가. 내게 죄가 있다며 무엇인가.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한 그는 내가 앞으로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한다면 이 고지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 것 같았다. 수많은 질문과 풀리지 않는 의문 속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인간 세계가 더 정의로워지도록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이미 지옥을 고지받은 자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어차피 고통 속에서 죽고, 다음 생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정진수가 선택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한편으로 신선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생에서 인류애와 정의를 부르짖는 그의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했지만, 이 역시 풀리지 않을 숙제였다.

정진수는 20년 동안 '고지'와 '시연'을 연구했다. 그리고 '공포'와 '정의'를 추가해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시연을 중개하며 사람들이 더욱 정의를 위해 살고 죄를 짓지 않기를 원했다. 죄를 지으면 인간이 아닌 신이 벌한다는 공포. 하지만, 정진수가 믿은 가난한 목사는 그 두려움을 이용해 세력을 꾸리고 신이라 이름 아래 악행을 저지른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불의를 동원하는 아이러니. 결국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가져와 진리가 되지 못하는 숙명을 품고 있었다. 세력들은 신도 지옥도 모두 믿지 않았다. 재해에 가까운 '고지'와 '시연'에 별다른 기대로 희망도 걸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삶이 타인의 고통과 공포를 밟고 더 나아지기를 원했다. 이들을 벌할 신은 또 어디에 있는가.

박정자의 환생과 다음 이야기

박정자는 환생한다. 환생은 지금까지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다. 그 환생이 그들에게 어떻게 해석될까. 그리고 그 환생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환생한 박정자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할까. 이미 현실이 지옥화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그녀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 모든 해답이 다음 시즌에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넷플릭스 지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