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영화리뷰 프로그램 <방구석 1열>이 영화를 통해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에 대하여 조명했다. 7일 방송된 <방구석 1열>에서는 영화 <팬데믹>과 <미스트>를 리뷰하며 거대한 재난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다뤘다.

이날 방송에는 인지심리학자인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와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가 게스트로 출연해 코로나 시대 인간의 심리와 '단계적 일상회복'에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 JTBC

 
<팬데믹>은 여성 치사율 100%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불안과 슬픔을 그린 영화다. 김경일 교수는 "심리학에서 불안하다의 반대말이 두 가지가 있다. 상식적인 반대말은 '안도감'이고, 의외의 반대말은 '슬픔'이다. 불안은 나쁜 것을 떠올리며 느끼는 감정이라면, 슬픔은 좋은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출연자들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쌓여온 상실의 아픔, 여전히 남아있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팬데믹>을 만든 타카시 도셔 감독은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 중 '그녀가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여자라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Only'였고 코로나19와는 무관하게 그 이전에 제작된 작품이었지만 묘하게도 2년 사이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영화가 현실을 예언한 사례로 주목받게 됐다. 극단적인 자가격리-셀프방역-고립과 타인에 대한 공포 등 영화속 묘사는 코로나19 시대 우리 일상의 풍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변영주 감독은 여성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영화적 설정에 대하여 "인류의 종말에 근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출산이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여성들에게만 가해지는 위협에 맞서는 이야기'라고 영화의 메시지를 분석했다. 하지만 변영주는 감염병 발생 이후 단기간에 인류멸망까지 치닫는 설정의 비약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배우 봉태규는 여성들의 비극과 대조적으로 남성들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그려냈다면 더 공포가 극대화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경일 교수는 심리학 용어로 '흔들어놓는 질문'을 언급하며 '만일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당연시했던 것들이 사라진 순간'을 가정하고 질문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질문을 통하여 고민할 주제를 던져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변영주는 그동안 당연시했던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고민이 없는 사회일수록 팬데믹같은 위기가 갑작스럽게 닥쳐왔을 때 대처 불가한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극 중 여주인공 에바가 죽음을 감수하고 방호복을 스스로 벗는 장면에 대하여 출연자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봉태규는 "탄식이 나왔다"며 안타까워한 반면, 변영주는 "에바의 선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자신만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김경일은 '사형수의 자살'이라는 사례와 비교하며 "언젠가 사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슬픔에 빠진 사형수는 주변을 정리하거나(현실 순응), 혹은 마지막까지 저항한다. 에바의 선택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으로서 끝 모를 고통속에서 마지막 주체성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 JTBC

 
한국 사회도 최근 2년간 코로나19로 인하여 전국민들이 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했고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단계적 일상회복에 돌입했다. 명승권 교수는 "코로나19 전체 감염자를 기준으로 사망자는 확진자 치명률의 1/10 수준"이라고 설명하며 "이제 코로나19의 치명률은 독감이나 폐렴보다 그리 높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명승권은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은 이어가되 이제는 막연한 두려움보다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통계수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명승권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지 혹은 중동 메르스처럼 풍토병으로 계속 자리잡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며 현재로서는 독감처럼 매년 찾아오는 엔데믹(주기적 감염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김경일 교수는 명 교수가 설명하는 확률과 통계만으로 결코 채울 수 없는 인간의 불안심리에 대하여 언급했다. 김경일은 "인류 역사를 보면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과학적 사고에 취약한 경우가 더 많다"며 비행기와 총기를 예로 들었다.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나 총에 맞아죽는 데 더 두려움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계단같은 일상적 공간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
 
김경일은 이에 대하여 "우리가 주도할 수 없는(타의적 요소)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신은 병에 대한 대비책이라면 치료제는 대항책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팬데믹에 대한 인간들의 불안심리를 비판하거나 몰아붙이는 것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성규는 아이들을 둔 부모로서 백신접종에 대한 현실적인 두려움을 고백했다. 명승권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안정성이 입증된 상태"라면서도 한편으로 "성인과 아이를 구분하면 아이들은 47%가 무증상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경우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확률이 낮더라도 백신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여러 입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백신을 접종해서 항체를 생성하면 전체 사회의 집단 면역 차원에서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많은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경일은 코로나19 방역에 대하여 한국이 잘했다고 평가받는 부분으로 국내의 코로나19 이슈를 투명하게 국민들과 공유한 점을 꼽았다. 김경일은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만 들리는 사회는 독재 사회"라며 앞으로도 힘들더라도 진실된 정보 공유를 통하여 국민들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변영주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특히 삶이 무너진 자영업자들과 살인적 업무에 지친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지원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JTBC <방구석 1열>의 한 장면. ⓒ JTBC

 
두 번째 영화 <미스트>는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포함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위기 상황속에서 공포와 불안에 빠져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정체불명의 괴물들의 습격을 다룬 <미스트>가 바이러스 전염을 다룬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시대에 새삼 다시 회자되고 공감을 얻은 이유에 대하여, 김경일은 "지난 2년간 우리 사회에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비이성적인 측면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경일은 "과학적인 관점이 필요할 때 종교적 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흔들어놓던 단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스트>는 과학의 관점에서 시작된 사태가 종교적 신념과의 대립으로 번지는 과정을 비중있게 조명했다.
 
변영주는 원작자 킹이 <미스트>에 기독교적 원죄의식, 총기소유 논란, 사이비 광신도, 심판과 구원의 존재 이유 등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고 분석했다. 외계인으로 은유되는 '종말적인 상황'을 통하여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고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변영주는 충격의 반전으로 기억되는 클라이맥스 엔딩신을 거론하며 미국의 총기소유 부작용을 가장 비판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분석했다. 주인공의 오판으로 비롯된 선택은 마침 총기라는 손쉬운 인명살상의 도구를 만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한다.
 
원작의 결말에서는 주인공 일행은 마트 밖으로 나와 죽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안개 속을 방황하며 아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내의 최후를 목격한 이후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삶에 대한 의지를 체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원작자 킹도 영화의 결말을 보고 크게 만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제목이기도 미스트(MIST)는 옅은 안개를 의미하며, 짙은 안개를 뜻하는 포그(Fog)와 차별화된다. 극 중에서 안개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불확실성, 대적할 수 없는 공포를 형상화한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인간들이 거짓된 종교적 선동에 휩쓸리는 모습을 통하여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코로나19 펜데믹 속 우리 사회의 거울을 보여준다.
 
김경일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예측하는 사람들"이라면 혼란한 시기에 등장하는 음모론자와 선동가들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경일은 "우리 안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하나씩 있다.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떤 모습(인간성)을 꺼낼 것이냐는 문제인데, 그 결정은 연습(평상시의 삶)에 달려있다.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살기 위하여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연자들은 <미스트>의 영화 속 상황이 괴수영화라는 장르를 통하여 펜데믹과 비슷한 상황을 설정했다고 분석하며, 중세시대의 흑사병과 마녀사냥, 코로나19 직후의 아시아인 혐오 등에 비유했다. 잘못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특정분노 대상을 설정하여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부작용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여기서 김경일 교수는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혐오라는 감정 자체는 인간에게 중요하다. 인간은 혐오감을 통하여 접근하면 안 될 것(비위생적이거나 위험한 존재들)을 식별한다. 즉, 혐오라는 감정 덕분에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높은 생존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문제는 감수성이 떨어지는 이들은 혐오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경일은 감수성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불안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감정의 구동력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성숙한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들은 혐오감을 타인에게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행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팬데믹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치닫는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질병 극복 이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무너져버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치유해나가야 할 또다른 그늘이기도 하다.
 
예상치못한 재난에 마주쳤을 때 인간이 대처법을 고민하게 되듯이, 예술 역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영화라는 예술적 수단을 통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풍경을 미리 상상해보고 다양한 고민들을 미리 공유해보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단계적인 일상회복은 이제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야말로 <방구석 1열>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방구석1열 미스트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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