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등장은 'K-좀비' 열풍의 시작이자, 한국 전통 의복인 '갓'이 유행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2019년 시즌1을 공개한 이후, 앞으로 시즌3 제작까지 예정되어 있는 <킹덤>은 실제 조선시대 배경에 상상력을 더해, 탐욕스런 권력과 그에 희생되어 '좀비'가 된 백성들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킹덤> 좀비 서사의 시작은 죽은 사람을 살려준다는 '생사초'라는 풀이다. 중전이 회임할 때까지 왕을 살려두기 위해 쓰인 생사초, 하지만 왕은 살아나지 못하고 좀비가 되었다. 그 좀비의 제물로 애꿏은 아랫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사초를 제공한 이승희 의원의 제자였다. 그 제자는 결국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이는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의 사람들에게 죽어 돌아온 이의 육신은 고깃국으로 둔갑했고, 이 극단적인 상황은 <킹덤> 서사의 프롤로그였다. 남부지방에 순식간에 '생사역'이 퍼지게 만들고 결국 궁궐까지 좀비들의 무한 살육전으로 만든 <킹덤> 시리즈를 보고나면, 그 시초가 어디였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킹덤: 아신전> 포스터

<킹덤: 아신전> 포스터 ⓒ 넷플릭스


성저야인의 아이 아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에 나와 있었다. 시즌2 마지막 장면에서 존재를 드러냈던 아신(전지현 분)의 이야기가 90분여 러닝타임의 한 편을 통해 풀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킹덤>에서 왕의 죽음을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를 통해 봉건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하고자 했던 김은희 작가의 세계관이다. 

시즌2에서 손에 피를 묻힌 세자 이창(주지훈 분)은 자신 대신, 중전의 아들이라고 권신들이 알고 있는 아이를 권좌에 올린다. 실제로는 좌익위 김무영(김상호 분)의 아들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온 나라를 좀비로 붉게 물들인 원인을 찾기 위해 북방으로 향한다. 

<킹덤: 아신전>은 조선 북방 지역에 사는 어린 아신(김시아 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 아신은 조선의 국경선인 압록강 주변 마을에 살아가는 성저야인이다. <킹덤: 아신전>에서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조선에서 이방인이었던 여진족 성저야인들이었다. 아신의 아비 타합(김뢰하 분)은 여진족 출신인 자신들을 받아들여준 조선을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꺼이 조선을 위해 밀정 임무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타합이 은인으로 여기는 조선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까? 그건 돼지를 잡는 일을 타합에게 맡겼으면서 정작 손질이 끝난 돼지에는 타합이 손을 댔다는 이유만으로 바닥에 버리는 조선 여성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희생양이 된 호모사케르, 성저야인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 Netflix

 
행색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같은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성저야인의 존재에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떠오른다. 호모사케르는 고대 로마에서 사회로부터 배제된 죄인들을 뜻한다. 조선에서도, 여진족에게도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성저야인들은 양쪽 모두에게 이방인이 되어 살아간다.

조선 군관 민치록(박병은 분)은 강직한 무인이다. 조학주의 권력이 막강하고 중전(김혜준 분)은 조학주의 딸이지만, 그럼에도 중전의 회임이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을 놓지 않는다. <킹덤: 아신전>에서도 조선을 향한 무인으로서의 충직함은 여전하다.

왜란으로 인해 조선이 위태로운 시점, 여진과 압록강을 두고 국경을 마주한 이 곳은 특히 조심해야 할 지역이다. 그러나 조학주의 아들 조범일(정석원 분)은 그런 현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폐사군의 숲에 들어온 여진족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민치록은 이번 일이 아이다간(구교환 분)을 중심으로 힘을 결집하기 시작한 파저위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 직감한다. 어떻게든 호랑이 탓으로 돌려보려 하지만, 제 아무리 괴물같은 호랑이라도 무술에 능한 여진족 15명을 한꺼번에 살상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때 민치록이 생각해낸 희생양은 바로 성저야인이었다. 조선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파저위에게 던져 줄 먹잇감이 됐다. 파저위의 아이다간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성저야인, 아신의 마을을 휩쓴다. 그들의 방식대로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다. 아신의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덕분에 조선의 국경은 지킬 수 있었다. 

<킹덤: 아신전>은 바로 울타리 밖의 존재들에게 드러내는 우리의 야만성을 좀비 재앙의 근원으로 삼는다. 이미 드라마는 시즌1부터 끊임없이 우리가 쳐놓은 울타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동래에서, 문경 새재에서 그리고 한양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좀비들에 대해 권력을 쥔 자들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장막을 치고자 했다. 그리고 <킹덤: 아신전>은 비극의 시작이 왜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조선을 지키고자 우리 안의 타자들에 가해진 살상이라고 설정한다.

아신은 진실을 채 알지 못한 채 복수해달라고 민치록을 찾아온다. 민치록은 아신을 거두고, 조선의 변방 요새에서 아신은 온갖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복수의 칼을 간다. 실종된 아비를 대신해 밀정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러다 몰래 숨어들어간 파저위의 마을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비를 발견한 아신은 비로소 자신들의 부족에 닥친 비극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파저위는 물론, 조선을 모두 몰살하고자 한다. 아신이 어릴 적 어머니를 구하려고 했던 생사초는, 이제 적을 향한 아신의 무기가 된다. 

앞선 시즌에서 조선왕조를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리려 했던 조학주의 욕심은 결국 조선 전체를 좀비떼로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왕권의 심장인 왕궁을 피로 물들인다. 봉건 권력은 인간의 권력욕 앞에 좀비로 변했고, 왕권의 수호라는 미명은 왕과 혈연이 없는 한 아이에게 계승된다. 

봉건 권력에 대한 풍자는 <킹덤: 아신전>에서도 이어졌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조선의 품으로 들어온 타인들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민치록이 돌아간 곳에서 그가 만난 건 생사초에 잠식된 좀비 군상이다. 민치록은 지키려고 했지만 그 선택이 오히려 모두를 파국에 빠뜨리게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킹덤; 아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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