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웬디> 포스터

영화 <웬디>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대다수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시간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놀고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때를 즐긴다. 그래서 대부분 유년기 시절의 좋은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를 넘어 어른이 되면 몸에 커지고 아는 것도 조금은 더 많아진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간혹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일 때 가지고 있던 동심과 순수함, 천진함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동심은 아직 어른이 되어 커진 마음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나이가 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렇게 나이 듦을 경험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유년기 시절의 동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영화 <웬디>

영화 <웬디>는 동심과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터팬을 재해석하여 웬디(데빈 프랑스)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판타지 장르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웬디는 기찻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에서 엄마,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웬디는 옆에 앉아 같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식당에 주변에서 놀거나 간단한 식당 일을 돕는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집 아이들은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내비친다. 

영화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주로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그린다. 그러면서 집 밖의 삶을 궁금해 하는 아이들을 통해 관객들의 궁금증과 호기심도 자극한다. 

영화 초반에 세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의 어릴 적 꿈에 대한 것인데, 웬디는 왜 지금은 그 꿈을 이룰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에 엄마는 지금 하는 일과 상황에 만족하니까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그 뒤 장면이었다. 엄마가 나가고 웬디는 왜 엄마가 꿈을 실행하려 하지 않는지 혼잣말로 궁금해하는데,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엄마는 늙었으니까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에 웬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바로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영화 <웬디> 장면

영화 <웬디> 장면 ⓒ 영화사 진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피터팬과 원더랜드의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영화 <웬디> 안에서도 우연히 기차에 탄 피터(야슈아 맥)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는 늙지 않는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무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이들 역시 나이를 먹지 않은 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놀이를 하며 계속 아이로 생활하고 있다. 그곳에 간 웬디는 처음엔 어색해하지만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재미를 경험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들과 동화된다.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그들에게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쁨 안에 있는 섬의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아이와 노인

그 섬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들도 있다. 섬의 노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이들이다. 영화 속 노인 중 한 명인 버죠(로웰 랜디스)는 몰래 친구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훔쳐보곤 한다. 아이들은 보통 도망가며 그가 버조가 아니라고 외친다. 버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태도는 일종의 늙음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버조가 과거 자신들과 같이 아이의 모습이었던 또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유로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쫒아낸다. 그렇게 노인으로 변한 이들은 노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사실 버조를 비롯한 노인들은 친한 친구를 잃는 등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늙은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아픔을 경험하면 철이 들고 성장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런 아픔과 번뇌를 겪고 나서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된다. 현실에서도 아픔을 겪다보면 어느덧 한층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금방 노인이 되지만 현실에는 아이와 노인 사이에 중간 지점이 존재한다. 영화는 그 모습을 생략하고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키면서 과연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노인들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피터의 일행과 노인 일행이 대립하기도 한다.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팬에서 피터팬과 후크가 대결하는 것처럼 노인들은 젊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들이고, 피터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둘의 대결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노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과 대립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웬디가 제안하는 노인을 바라보는 태도
 
 영화 <웬디> 장면

영화 <웬디> 장면 ⓒ 영화사 진진


 
웬디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노인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노인으로 변한 아이들을 만나서도 함께 대화하며 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춤을 추며 그들과 어울린다. 어두운 표정만을 짓고 있던 노인들이 웬디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소가 떠오른다. 사실 노인들이 아이였을 때 노는 방법이나 느낌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저 늙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든 것뿐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어울릴 것을 제안한다. 

젊음이라는 것은 한 번 잃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 늙는다.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찾아온다. 영화 후반부 누군가가 늙어서 못한다고 이야기할 때, 웬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영화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이 듦을 부정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벤 제틀린은 데뷔작 <비스트>(2012)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미국드라마) 등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웬디>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뛰노는 아이들을 아름답게 그렸고, 피터팬 원작이 담고 있는 내용에서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끌어내 영상화했다. 극적인 요소가 다소 떨어지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조금은 심심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이 던지고자 한 질문을 관객에게 명확히 던지는 데는 성공한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영화웬디 피터팬 재해석 나이 듦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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