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토요일 저녁 탄천 종합운동장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조금 멋쩍은 상황이 벌어져서 선수 자신은 물론 심판도 표정 관리가 힘들 정도였다. 그 주인공은 성남 FC의 세르비아 출신 키다리 골잡이 뮬리치였다. 놀라운 멀티 골 활약을 펼치며 완승의 주역이 되었지만 두 번째 골을 터뜨리고 유니폼 상의를 훌러덩 벗어버리는 바람에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한 것이다. 1081명 성남 FC 홈팬들은 골을 넣고 28초만에 쫓겨나는 뮬리치를 향해 웃음기 가득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토요일은 '뮬리치'

203cm나 되는 키다리 골잡이 뮬리치의 스프린트 속도는 보는 이들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키가 매우 큰 축구 선수는 예상보다 느릴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른 발걸음만큼이나 빨리 퇴장당하는 바람에 김남일 감독은 남은 시간을 관리하느라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광주 FC와의 토요일 저녁 홈 게임 시작 후 15분만에 첫 골이 멋지게 들어갔다. 성남 FC의 역습 기회에서 미드필더 안진범의 왼발 패스를 받은 뮬리치가 유연한 트래핑 기술을 자랑하며 자기 앞 공간을 열었다. 

뮬리치의 스프린트 속도가 놀라웠다. 바로 옆에는 같은 세르비아 출신의 광주 FC 센터백 알렉스가 달리고 있었는데 두 살 어린 뮬리치가 빨랐다. 낮게 깔아찬 오른발 슛도 왼쪽 기둥을 스치며 빨려들어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골의 기쁨을 홈팬들과 더 멋지게 나누고 싶어서 뮬리치는 손을 유니폼 상의 목 부분에 가져가다가 말았다. 너무 일찍 경고를 받으면 남은 시간 제대로 몸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뮬리치는 29분에 김영수 주심으로부터 옐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살짝 뜬 공을 향해 무릎을 높게 들어올리며 트래핑하려고 했지만 바로 앞 광주 FC 미드필더 김원식의 얼굴이 있었다. 조심스럽지 못한 파울이었다.

그리고 뮬리치는 후반전에도 놀라운 드리블 속도를 자랑하며 더 멋진 추가골을 터뜨렸다. 55분, 역습 과정에서 교체 선수 부쉬가 절묘한 전진 패스로 자기 앞 공간을 열어준 것이다. 이번에도 뮬리치는 알렉스 형을 옆에 달고 뛰었다. 마무리는 역시 오른발 인사이드 슛이었다.

2-0 점수판을 모두 뮬리치의 능력으로 만들었으니 기세등등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뮬리치가 기어코 유니폼 상의를 벗어버린 것이다. 멋진 골을 터뜨렸다고 해서 봐줄 수 없는 규정 위반, 경고 대상이었다. 딱 28초만에 그는 김영수 주심으로부터 두 번째 옐로 카드를 받고 쫓겨났다. 토요일 저녁 그 누구보다 기뻤지만 웃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K리그 팬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토요일을 즐길 수 있었다.

일요일은 '이승기'

토요일 뮬리치에 이어 일요일 주인공 자리는 전북 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 이승기가 이어받았다. 오후 7시 전주성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홈 게임에서 이승기는 50-50 클럽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멋지게 새겨 올렸다.

역대 11번째로 새긴 이 영광의 순간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골로 만든 것이어서 이승기와 전북 팬들은 그 기쁨이 남달랐다. 오재석(코뼈 골절)의 부상으로 수비 라인에 구멍이 생긴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전북 현대의 화끈한 공격 앞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반전 중간에 교체 선수로 들어온 한교원이 코너킥 세트 피스 헤더 골(42분)로 대승의 시작을 알렸고 3분 뒤에 이승기가 50-50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휘청거리는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앞에 두고 김보경이 부드럽게 밀어준 공을 받아 이승기가 오른발 슛을 정확하게 차 넣은 것이다.

'49골 52도움' 기록을 안고 전반전을 끝낸 이승기는 후반전에 보기 드문 슈퍼 골을 터뜨리며 50-50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60분, 바로우가 왼쪽 끝줄 가까운 공간을 파고들며 살짝 띄워준 공을 향해 이승기가 날아오른 것이다. 크로스 높이에 맞추기 위해 이승기는 몸을 날리며 오른발 인사이드 발리 슛을 꽂아넣었다. 지난 달 7일 수원 블루윙즈의 김민우가 날아오르며 왼발 가위차기를 성공시킨 순간과 견줄만한 슈퍼 골이었다.

50골 52도움을 찍은 바로 이 골이 일요일 K리그1을 가장 빛낸 골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역대 11번째 클럽 멤버가 된 이승기는 8분 뒤에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한교원의 헤더 추가골을 도와 53번째 도움 기록까지 찍었다. 

이승기의 50-50 클럽 가입 골 순간만큼이나 아름다운 골이 포항 스틸러스의 귀중한 어웨이 게임 승리 소식을 장식했다. 토요일(4월 10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포항 스틸러스 게임 79분에 임상협의 왼발 감아차기 결승골이 짜릿하게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임상협의 골보다 더 극적인 결승골이 남기일 감독의 100번째 승리를 수놓았다. 78분까지 어웨이 팀 수원 블루윙즈에게 0-1로 끌려가던 제주 유나이티드는 79분에 장호익의 자책골을 이끌어내며 1-1 균형을 이루었고 87분에 역전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김영욱이 차 올린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간판 골잡이 주민규가 수원 블루윙즈의 오프 사이드 라인을 간발의 차이로 깨뜨리고 솟구쳐 올라 헤더 골을 성공시켰다. 이 덕분에 남기일 감독은 267게임만에 100승의 영광을 2366명 홈팬들 앞에서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보다 더 기막힌 극장 골은 일요일 오후 수원 종합운동장을 조용하게 만들어놓았다. 센터백 김태현이 42분에 퇴장당한 어웨이 팀 울산 현대가 승점 1점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게임 종료 직전에 믿기 힘든 극장 결승골을 뽑아냈다. 

울산의 마지막 역습 기회가 이동준에서 바코로 이어졌고 72분에 김지현 대신 들어온 김인성이 후반전 추가 시간 1분 54초에 오른발 슛을 밀어넣었다. 바코가 직접 욕심을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반대쪽으로 달려온 김인성에게 찔러주는 어시스트 타이밍과 정확도가 놀라웠다.

이번에도 22세 이하 어린 선수들의 득점 기록이 이어졌다. 퇴장 징계가 끝나서 돌아온 포항 스틸러스의 송민규(1999년생)도 다시 득점왕 경쟁에 불을 지폈고, FC 서울의 김진성(1999년생)도 두 게임만에 잊을 수 없는 프로 데뷔골을 터뜨렸다.

강원 FC 미드필더 김대우(2000년생)도 데뷔 여섯 게임만에 감각적인 오른발 골을 터뜨리며 대구 FC와의 홈 게임 3-0 완승 시작을 알렸다.

이제 K리그1 구단들은 FA(축구협회)컵 3라운드 일정을 주중(4월 14일 수요일)에 치르게 된다. 수원 블루윙즈가 대전으로 가서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과 만나며 인천 유나이티드 FC도 FC 안양을 숭의 아레나로 불러들인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김천으로 찾아가서 김천 상무와 만나며, 성남 FC도 부산 아이파크와 맞붙는다. 이밖에 수원 FC는 전남 드래곤즈와, 광주 FC는 부산교통공사와, 강원 FC는 청주 FC와 만나야 한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네 팀(전북, 울산, 포항, 대구)은 16강(4라운드) 대진표에 먼저 올라가 있다.

이 FA컵 일정 중에서 특별하게 놓치기 아까운 게임이 있다. 바로 FC 서울과 서울 이랜드 FC가 만나는 서울 더비 매치(4월 1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월드컵)다. 정정용 감독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부리그 승격을 꿈꾸게 할 정도로 서울 이랜드 FC(현재 2위)를 이끌고 있기에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게임이다.

그리고 K리그1 10라운드는 4월 17일(토), 18일(일) 이틀 사이에 벌어진다.

2021 K리그1 9라운드 결과

4월 10일 강릉 종합 ★ 강원 FC 3-0 대구 FC [득점 : 김대우(29분,도움-황문기), 김영빈(48분,도움-윤석영), 한국영(69분,도움-고무열)] 관중 1627명
4월 10일 서울 월드컵 ★ FC 서울 1-2 포항 스틸러스 [득점 : 김진성(35분) / 송민규(21분,도움-강상우), 임상협(79분,도움-타쉬)] 관중 4147명
4월 10일 탄천 종합 ★ 성남 FC 2-0 광주 FC [득점 : 뮬리치(15분,도움-안진범), 뮬리치(55분)] 퇴장 - 55분, 뮬리치(성남) / 관중 1081명
4월 11일 제주 월드컵 ★ 제주 유나이티드 2-1 수원 블루윙즈 [득점 : 장호익(79분,자책골), 주민규(87분,도움-김영욱) / 최정원(12분,도움-김태환)] 관중 2366명
4월 11일 수원 종합 ★ 수원 FC 0-1 울산 현대 [득점 : 김인성(90+1분 54초,도움-바코)] 퇴장 - 42분, 김태현(울산) / 관중 1056명
4월 11일 전주성 ★ 전북 현대 5-0 인천 유나이티드 FC [득점 : 한교원(42분,도움-김보경), 이승기(45분,도움-김보경), 이승기(60분,도움-바로우), 한교원(68분,도움-이승기), 바로우(90+3분,도움-구스타보)] 관중 3128명

2021 K리그 1 현재 순위표
1 전북 현대 23점 7승 2무 22득점 7실점 +15
2 울산 현대 20점 6승 2무 1패 16득점 6실점 +10
3 성남 FC 15점 4승 3무 2패 7득점 4실점 +3
4 FC 서울 12점 4승 5패 11득점 11실점 0
5 강원 FC 12점 3승 3무 3패 10득점 12실점 -2
6 수원 블루윙즈 12점 3승 3무 3패 9득점 8실점 +1
7 제주 유나이티드 12점 2승 6무 1패 8득점 7실점 +1
8 포항 스틸러스 11점 3승 2무 4패 10득점 13실점 -3
9 광주 FC 10점 3승 1무 5패 10득점 11실점 -1
10 인천 유나이티드 FC 7점 2승 1무 6패 9득점 17실점 -8
11 대구 FC 7점 1승 4무 4패 8득점 15실점 -7
12 수원 FC 6점 1승 3무 5패 6득점 15실점 -9

개인 득점 순위
1 일류첸코(전북 현대) 7골(게임당 0.78)
2 송민규(포항 스틸러스) 4골(게임당 0.57)
3 김인성(울산 현대) 4골(게임당 0.5)
4 이동준(울산 현대) 4골(게임당 0.44)
4 뮬리치(성남 FC) 4골(게임당 0.44)
6 한교원(전북 현대) 3골(게임당 0.6)
6 김진혁(대구 FC) 3골(게임당 0.6)
8 주민규(제주 유나이티드) 3골(게임당 0.43)
8 펠리페(광주 FC) 3골(게임당 0.43)
10 김민준(울산 현대) 3골(게임당 0.38)

◇ 2021 K리그1 10라운드 일정
4월 17일(토) 오후 2시 수원 FC - 강원 FC (수원 종합)
4월 17일(토) 오후 4시 30분 인천 유나이티드 FC - 제주 유나이티드 (인천 전용)
4월 17일(토) 오후 4시 30분 FC 서울 - 대구 FC (서울 월드컵)
4월 17일(토) 오후 7시 광주 FC - 포항 스틸러스 (광주 전용)
4월 18일(일) 오후 2시 수원 블루윙즈 - 울산 현대 (수원 빅 버드)
4월 18일(일) 오후 4시 30분 전북 현대 - 성남 FC (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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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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