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친절> 포스터

영화 <타인의 친절>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처음 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 본 적 있는가. 내가 오늘 무심코 건넨 작은 친절이 불러온 나비효과를 확인하는 영화가 개봉했다. <언 에듀케이션>, <원 데이>를 만든 론 쉐르픽 감독이 연출한 <타인의 친절>은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덴마크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을 배경으로 만들었던 감독은 뉴욕을 무대를 옮겨 6년 만에 신작을 선보였다.

꿈을 안고 찾아온 뉴욕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거나 상실을 경험하고 슬퍼하는 여섯 사람의 사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영화다. 오래된 러시아 식당을 배경으로 폭력에 노출된 상처를 보듬고 갈 곳 잃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인연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희망에 한 걸음 다가간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다인종이 모여있는 도시 뉴욕의 모습을 담았다. 론 쉐르픽 감독이 의도한 대로 사적인 집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직장이나 임시 거처 등 공공장소에서만 인물들이 만나기 때문에 확실한 거리감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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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인의 친절> 스틸컷

영화 <타인의 친절>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폭력 남편을 피해 두 아들과 무작정 출발하게 된다. 마침 유능한 매니저를 찾고 있던 식당 주인 티모피(빌 나이)는 선조가 물려준 식당 경영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병원 응급실의 간호사이자 용서 모임 상담사, 무료 급식소 운영자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일중독자다. 몇 해 전 부모님과 애인마저 잃고 상실감을 잊고자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앨리스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자로 오인한 실수투성이 제프(케일럽 랜드리 존스)를 만난다.
  
 영화 <타인의 친절> 스틸컷

영화 <타인의 친절>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뉴욕은 고급 식당과 무료 급식소, 빽빽한 마천루와 탁 트인 공원, 거리를 활보하는 뉴요커와 교통지옥을 유발하는 자동차가 공존하는 도시다. 게다가 한복판에 있는 응급실은 바쁜 뉴욕의 모습처럼 정신없이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다인종이 모이는 도시이자 빈부격차가 큰 도시 온도는 수도 없이 지나쳤을 사람의 이야기로 들끓는다.

스스럼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을 돕고, 말하지 않아도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2001년 9.11 테러가 지난 이후 더욱 짙어진 경향이 아닐까. 낯선 이의 친절을 경계하면서도 혹시 모를 어려움에 선뜻 손을 내밀어 주는 따스한 온기는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이 영화의 특징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그저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채로운 배우들의 멀티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다. 서로 다른 화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음악 속에서 앙상블을 이루는 방식이다. 론 쉐르픽 감독은 "타인에 거부감이 없는 뉴욕의 모습, 관용의 감각이 살아 있는 도시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끝날 줄 모르는 나라 안팎의 상황에 지칠 대로 지친 요즘. 때로는 가족보다 더 자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타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관대하지만 스스로 친절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나에게 베푸는 친절을 좀 더 값비싸게 해줄 필요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받은 호의는 나를 살리고, 이웃에게 퍼져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나 하나 살기도 벅찬 팍팍한 삶 속에서 피운 불씨, 따뜻한 배려와 도움의 손길은 무관심으로 쌓아 올린 완고한 도시의 벽을 천천히 무너트리는 작은 구멍이 되어준다.
타인의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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