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JTBC <싱어게인>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명가수들의 오디션'이라는 콘셉트로 시작했던 이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편집을 배제하고 가수들의 노래와 말을 전달하는 데 힘을 쏟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화제성은 갈수록 높아졌고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 '무명가수'들이 여럿 등장하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말솜씨로 화제가 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승자인 '30호 가수' 이승윤이다.

그의 말에서는 겸손과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실제로 이승윤의 영상 댓글을 보면 '왜 이렇게 말을 잘하냐', '겸손함이 배어있는데 자신감이 있다' 등등 '말'에 관한 의견이 많다. 그렇다. 이승윤에게는 독창적인 편곡 실력과 뛰어난 음악 능력과 더불어 대중에게 어필하는 또 하나의 매력, 그만의 화법이 있다. 그의 '말하기'에 주목해보자.

'나'를 아는 사람이 말하는 자기소개
 
 그의 자기소개

그의 자기소개 ⓒ JTBC

 
1라운드 맨 처음 그의 소개를 들어보자. 그는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자주 배가 아픈 쪼잔 뱅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깜냥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를 안다'는 것은 지혜다. 나 자신을 직면해봤던 적이 있는 사람, 철저하게 '나'를 탐구해 본 사람.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노래를 꿋꿋이 불러온 사람. 그래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겸손함. 그의 말에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1라운드 이후 소감을 말하는 이승윤

1라운드 이후 소감을 말하는 이승윤 ⓒ JTBC

 
1라운드에 합격하고 소감을 말하는 이승윤. 모든 걸 다 보여줬기 때문에 다음에는 '인사하러 오겠다'는 그의 말에서 여유와 센스가 느껴진다. 이때 유희열은 '쟤 보통 아니다'며 감탄한다. 대중도 감탄한다. '쟤는 좀 다르다'고.

오디션 프로에서 경쟁하지 않고 이기는 법을 보여주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을 플롯으로 한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며 그곳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는 데서 오는 감동과 재미, 이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서사다. 그런데 이승윤의 태도는 달랐다.

화제의 3라운드 라이벌 무대에 앞서 그가 한 말을 들어보자.
 
 3라운드 라이벌 무대에 앞서 소감을 말하는 이승윤

3라운드 라이벌 무대에 앞서 소감을 말하는 이승윤 ⓒ JTBC

 
앞서 부른 라이벌 이무진이 호평 속에 무대를 마치자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 둘이 붙을 줄 알았다. 그는 잘했다. 나도 잘하겠다. 둘 중 하나가 패배자가 아닌 이 무대를 보는 심사위원들을 패배자로 만들겠다."

말에 간투사가 없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다. 음성은 낮고 속도는 느릿하다. 그렇지만 또렷하다. 간명한 말은 청중을 집중하게 만들고 인상 깊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아마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오디션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내가 얻을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음악인생에서 이 무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과 오래 대화한 사람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3라운드에서 패하고 나서 담담히 소감을 밝히는 이승윤

3라운드에서 패하고 나서 담담히 소감을 밝히는 이승윤 ⓒ JTBC

 
승패로 자신의 운명이 갈리는 오디션 프로에서 그는 '불호를 감수하는'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준다. 이것은 얼마나 큰 용기인가. 이 무대는 심사위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만큼 의견이 분분한 무대였다. 그러나 승윤은 모든 것을 예감했다는 듯, 그러나 후회가 없다는 듯 "직진한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설레요.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무대예요"라고 말했다. 승패가 아닌 '나만의 음악'을 보여주는 데 의의를 뒀던, 그의 과감한 선택은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저만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4라운드 전에 각오를 밝히는 이승윤

4라운드 전에 각오를 밝히는 이승윤 ⓒ JTBC


 
4라운드에 앞서 그는 자신의 각오를 담담하게 전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존재의 의의를 구체화해야겠다. (처음에는) 요행이 길다고 생각했지만,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것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운 좋게 이 곳에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부분을 시청자 분들이 보셨다면 이 무대 밖에 수많은 72호 가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내가 먼저 주단을 깔아놓고 기다리겠다."

'이기려는 마음'이 아닌 '나도 잘하고 상대방도 잘해서 하나의 세트' 같은 무대를 만들려고 했던 그의 선한 의지는 대중으로 하여금 경쟁을 초월하여 오롯이 '이승윤'을, 단독자로 보게 만들었다. 우열의 차원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보여주는 데 매번 의의를 두었던 그는 오디션 프로에서 대중에게 자신의 실력과 매력을 충분히 각인시켰다. 

1989년생인 그의 나이는 올해 서른셋. 현실과 이상의 저울질 속에서 서른의 고개를 넘어온 한 무명가수는 이제 전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받는 가수가 되었다. 지난 몇 달간 펼쳐진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시간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해석해 나갈 이승윤은 앞으로 펼쳐질 부침 많은 연예계 생활도 잘해나갈 것이다.

그가 홀로 보낸 뒤척이며 잠 못 이루던 밤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라디오에 처음 자기 노래가 나오던 설렘을 곱씹으며, 또 어느 날은 유독 열기가 뜨거웠던 공연장의 온기를 떠올리며, 반짝이던 관객들의 눈망울을 만져보며 그렇게 긴 무명의 생활을 버텨왔을 것이다.

그 밤의 '구겨진 마음'(*)들이, 고민들이 지금의 우주 같은 '30호 장르'를 만든 건 아니었을까. 유난히 힘들었던 작년 그리고 올해, 터널 같은 그 시간들을 버티고 있을 수많은 '소우주'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자신의 의미를 헤아리고 있을 '72호 가수'들에게 새해에는 승윤에게 찾아왔던 축복 같은 시간이 찾아오길 빌어본다.

"이승윤씨,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구겨진 하루들'이라는 그의 노래가 있다
** 이승윤이 마지막 회를 앞두고 한 사전 인터뷰의 마지막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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