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에서도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외국인 감독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게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프로야구 KBO리그의 맷 윌리엄스(KIA 타이거즈), 카를로스 수베로(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K리그2 히카르두 페레즈(부산 아이파크), 프로배구 V리그 로베르토 산틸리(대한항공) 감독 등이 현재 한국무대에서 활약중인 외국인 감독들이다. 남자축구 파울루 벤투-여자축구 콜린 벨-여자배구 스테파노 라바리니 등 외국인 감독에게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맡긴 사례도 다수다.

한국스포츠에서 외국인 감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축구다. 1990년 대우 로얄스(현 부산)이 독일 출신의 프랭크 엥겔을 영입하며 K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 시대를 열었다. 엥겔 감독의 뒤를 이어 대우의 지휘봉을 잡았던 헝가리 출신 베르탈란 비츠케이 감독은 1991년 소속팀의 리그 우승으로 최초의 외국인 우승 사령탑이 됐다.

이후 포항의 K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세르히오 파리아스(브라질), FC서울을 정상으로 이끈 넬로 빙가다(포르투갈), 지난해 전북 현대를 2년 연속(전임 감독 시절부터 4연패) 리그 정상과 FA컵 우승에 올리며 사상 최초의 '더블'을 달성한 조세 모라이스(포르투갈) 등이 외국인 감독의 성공신화를 이었다.

이밖에도 유공(현 제주)의 돌풍을 이끌었던 발레리 니폼니쉬(러시아), 서울을 이끌었던 세뇰 귀네슈(터키)나 부산의 고 이안 포터필드(영국)같은 감독들은 비록 우승과는 큰 인연이 없었지만 재임기간 중 과감한 선수발굴과 선진적인 축구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지도자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독일, 남자축구대표팀), 앤디 에글리(스위스, 부산) 레모스 올리베이라(브라질, 포항), 마틴 레니(미국,이랜드), 에른 안데르센(노르웨이, 인천) 등 검증없는 무분별한 외국인 감독 영입의 실패사례로 꼽히는 경우들도 적지않다.

축구는 프로의 영향을 받아 대표팀에서도 가장 먼저 외국인 감독에게 문호를 개방한 종목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했던 독일 출신 고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 애틀랜타 올림픽을 이끌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에 이어,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라는 족적을 남기며 한국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한 페이지를 열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이후에도 박지성과 이영표 등 한국인 선수들의 유럽진출과 적응에 기여하며 한국축구가 발전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감독은 재일교포나 임시 대행을 제외하면 역대 총 5명이다. 순수 외국인으로서 KBO 정식 1군 감독에 오른 최초의 인물은 2007년 미국 출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당시 암흑기를 보내던 롯데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로이스터 감독은 3년 연속 가을야구를 이끌며 부산의 야구열기를 중흥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비록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로이스터의 성공은 보수적인 한국야구계에서 외국인 감독의 리더십이 통할 수 있임을 증명해다는 게 가장 큰 의미다.

2017년 SK의 지휘봉을 잡은 트레이 힐만 감독은 2년차인 2018시즌 팀을 한국시리즈 성장으로 이끌며 외국인 감독으로는 최초로 KBO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령탑이 됐다. 힐만 감독은 특이하게도 일본 NPB 니혼햄과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의 감독직을 역임하며 세계 최초로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1군 감독을 맡는 기록을 세웠으며, 니혼햄 시절에 이어 SK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한일야구를 모두 제패한 외국인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남겼다.

다음 시즌에는 KBO리그에서 최초로 두 명의 외국인 감독이 동시에 활약하는 것을 볼수 있게 됐다. 한국무대 2년차를 맞이한 윌리엄스 KIA 감독과 수베로 한화 신임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두 팀은 나란히 지난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윌리엄스 감독은 올시즌에는 최초로 가을야구진출에 실패한 외국인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극복할 수 있는 명예회복이 필요하고, 한국야구 첫 도전인 수베로 감독은 최악의 시즌을 보낸 꼴찌 한화의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이끌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다른 종목에 비하여 역사가 짧은 프로농구는 외국인 감독이 기용된 사례 역시 단 2번뿐이다. 남자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는 2005년 미국 출신의 제이 험프리스 감독을 영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NBA 선수 경력을 자랑하는 험프리스 감독이었지만 그가 사령탑을 맡은 기간 동안 전자랜드는 20경기에서 3승 17패(승률 .150)에 그쳤다. 이 기록은 공교롭게도 3년 뒤 같은 전자랜드의 박종천 감독(1승 11패)에게 경신되기까지 국내 최단명 감독 기록으로도 남았다.

2018-19시즌에는 전주 KCC가 시즌도중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을 선임했다. 당초 코치로 합류했던 오그먼 감독은 추승균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면서 외국인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감독대행을 맡았고, 그해 12월에는 험프리스에 이어 두 번째 정식 외국인 감독에 올랐다.

오그먼은 그해 팀을 4위로 봄농구에 올려놓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4강까지 오르는 등 준수한 성과를 남겼지만, 이듬해 KCC는 기술고문이었던 전창진 감독을 승격시키면서 오그먼 감독과 한 시즌만에 결별했다. 오그만 감독은 프로농구 최초로 플레이오프 진출과 시리즈 승리를 이끈 외국인 감독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KCC 구단 역사상 최단명 감독이라는 기묘한 수식어를 동시에 보유한 인물이 됐다.

배구에서는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이 2010년 일본 출신의 반다이라 마모루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한 바 있다. 반다이라 대행은 2시즌 동안 14승 21패(포스트시즌 7승 4패)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준우승)까지 끌어올리며 나름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시즌이 끝나고 아들의 건강 문제로 인하여 자진사퇴했다.

스포츠는 세계적으로 국적과 문화의 벽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외국인 지도자들은 한국 스포츠계 특유의 학연-인맥같은 낡은 관행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 스포츠가 아직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던 시절에는 스포츠 강국들의 선진적인 시스템과 문화를 전파하는 창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제는 국내에도 우수한 지도자들이 많음에도 굳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배경에는, 과감한 혁신이라는 명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가대표팀에서 성적이 좋지않을 때나, 프로리그 하위권 팀에서 외국인 감독 카드로 돌파구를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다.

히딩크와 로이스터 등 한국에서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외국인 감독들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의 부임 이전까지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있는 팀들을 물려받아 '체질과 시스템' 개선에 성공했다는 데 있다. 현재도 외국인 감독들에게 지휘봉을 맡긴 구단들을 살펴보면 프로야구 KIA는 지난해 가을야구 탈락, 한화는 시즌 최하위를 기록했고, 프로축구 부산은 2부리그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음 시즌 외국인 감독들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무한 경쟁이 요구되는 시대다. 높은 영입 비용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 지도자들이 필요한 이유는, 스포츠계의 국제적 흐름을 따라잡고 다양한 스타일의 리더십과 경험이 공존할수 있어야 해당 종목도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력있는 외국인 지도자들이 한국무대에 도전하여 성과를 남기고 국내 지도자와도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좋은 선순환을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스포츠의 수준 향상과 흥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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