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여성 스포츠 스타들만으로 이루어지는 버라이어티 예능이다. 박세리, 한유미, 김온아, 정유인, 곽민정, 남현희 등 한국 여성스포츠를 대표하는 전현직 스타들이 출연하여 운동 선수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여성 레전드의 유쾌하고 솔직한 매력을 풀어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19일 방송에서는 배우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했다. 세 사람은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세 자매>에 함께 동반출연한 배우들이다. 누가봐도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출연이라는게 명백했다. 문소리는 아예 멤버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영화 제목부터 언급하며 출연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세 배우는 <노는 언니> 멤버들과 토크, 게임 등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만일 다른 일반적인 예능이었다면 배우들의 홍보성 출연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노는 언니>는 어디까지나 스포츠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이고 굳이 연예인이 나와야할만한 명분이 없었다. 오히려 연예인처럼 익숙한 방송문법이나 홍보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스포츠 스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차별화된 매력포인트였다.

그동안 <노는 언니>에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한 것은 멤버들의 첫 만남 에피소드에서 장성규나 황광희, 유세윤 등이 등장했던 사례 정도가 유일하다. 당시만 해도 아직 멤버들이 서로를 막 알아가는 단계였고, 예능이 아직 어색할 수 있는 스포츠스타들의 방송 적응을 돕기 위해서라는 제작진 나름의 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예상과 달리, <노는 언니> 멤버들은 운동선수출신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미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오히려 연예인 멤버들의 갑작스러운 투입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도 연예인 멤버들이 등장하며 운동선수들만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기존 예능의 뻔한 신변잡기식 토크와 말장난을 답습하는 분위기가 된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행히 첫 에피소드 이후로는 제작진이 빠르게 피드백을 했는지 그동안 <노는 언니>에서 연예인 게스트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희극인 홍현희 등이 출연한 사례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진행을 돕는 보조적인 MC의 역할 정도였고 프로그램의 메인은 어디까지 고정멤버인 스포츠 스타들이었다. 또한 방송이 진행되면서 특별한 연예인 출연자나 전문 MC 없이도 <노는 언니> 멤버들만의 자연스러운 케미가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 멤버들은 요리-캠핑-먹방-게임-여행-패러디-화보촬영 등 여러 가지 미션들도 척척 수행해내며 예능감에서도 호평을 받고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 출연한 여배우들은 영화 홍보 이외에는 <노는 언니> 멤버들과 애초에 특별한 연결고리라고 할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나마 문소리와 핸드볼 스타 김온아, 장윤주와 배구 스타 한유미가 과거에 인연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영화촬영을 위해서 만나 안면만 있는 정도였고 지속적으로 친밀한 만남을 이어온 것도 아니었다. 주연배우 문소리가 10여년 전에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출연한 것을 감안한 듯, 배우와 멤버들이 핸드볼 게임을 펼치는 구성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몸을 쓰는데 서툰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후반부 토크 타임에서는 뜬금없는 여배우들의 홍보를 빛내주기 위하여 오히려 프로그램의 주역인 <노는 언니> 멤버들이 들러리를 서는듯한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졌다.

비연예인인 <노는 언니> 멤버들은 토크분량의 대부분 동안 그저 배우들의 이야기를 신기한 표정으로 경청하기에 바쁜 방청객 모드로 전락했다. 마치 <노는 언니>의 스포츠 스타들이 일일 연예 리포터가 되어 영화의 주연배우들을 인터뷰하러 온 것 같은 괴상한 모양새가 되버렸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과 스포츠스타들간의 공감대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십 년도 지난 <우생순> 이야기를 재소환하거나 스포츠 영화의 제작 가능성, 박세리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연 등, '토크를 위한 토크'로만 느껴지는 재미도 없고 신선하지도 않은 진부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연예인 출연자들을 꼭 섭외해야 했다면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거나, 최소한 <노는 언니>만의 개성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화가 이루어져야 했다. 십 년도 지난 해묵은 우생순 이야기를 꺼낼 것이었다면 차라리 영화의 실제모델이 된 핸드볼 은퇴 선수들이라도 함께 섭외하는 것이 여성 스포츠스타들의 이야기를 표방한 <노는 언니>의 컨셉과도 더 맞지 않았을까.

잘 나갈 때 일수록 헛발질을 조심해야하는 것은 스포츠나 방송이나 마찬가지다.
노는언니 영화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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