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0-2의 열세를 3-2로 뒤집으며 개막 후 3연승을 내달렸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3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19-25, 16-25, 25-20, 26-24, 15-13)로 승리했다. 1, 2세트를 큰 점수 차이로 빼앗긴 흥국생명은 3세트부터 김연경과 이재영의 쌍포가 살아나면서 켈시 페인이 39득점을 폭발한 도로공사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따내며 선두 자리를 지켰다(승점 8점).

흥국생명은 '핑크 폭격기' 이재영이 38.25%의 공격점유율을 책임지며 28득점을 퍼부었고 '여제' 김연경도 43.64%의 공격성공률로 26득점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수비에서도 무려 30개의 디그를 기록하는 '그물수비'를 뽐냈다. 이날 흥국생명은 주전세터 이다영의 멘탈이 흔들리며 공격수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는데 이 때 박미희 감독의 세터 교체 작전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백업세터 김다솔이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흥국생명의 역전승을 견인한 것이다.

주전 만큼 중요한 백업세터의 필요성
 
 김다솔 세터는 수련 선수로 입단해 흥국생명의 백업세터로 자리 잡았다.

김다솔 세터는 수련 선수로 입단해 흥국생명의 백업세터로 자리 잡았다. ⓒ 한국배구연맹

 
이다영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시절이던 지난 2018-2019 시즌 정규리그 30경기에 모두 출전해 108세트를 소화했다. 이다영이 풀타임 풀세트 무교체 시즌을 치르면서 현대건설의 백업세터 김다인은 2018-2019 시즌 단 한 번도 코트를 밟지 못했다. 물론 쉽지 않은 무교체 시즌을 치른 이다영의 투혼은 그 자체로 칭찬 받을 일이지만 팀을 생각한다면 주전 세터의 무교체 출전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V리그도 어느덧 출범 15년을 넘기면서 각 구단들도 백업세터의 필요성을 점점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주전 세터가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에 빠졌을 때 투입할 수 있는 듬직한 백업세터를 준비해 두지 않으면 자칫 경기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체 실수로 경기 도중에 세터가 빠지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하는데 이 경우 그 팀의 공격전술이 엄청나게 단조로워지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여자부 최고의 '세터 왕국'은 세터 세대교체에 성공한 GS칼텍스 KIXX다. 주전 세터 안혜진을 중심으로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이원정 세터가 있고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는 프로 2년 차 이현 세터도 있다. 여기에 지난 9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전체 1순위로 제천여고의 유망주 김지원 세터를 영입했다. 데뷔 초기 세터로도 활약했던 한수진이 마음 편히 리베로에 전념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세터 이다영을 흥국생명에게 빼앗긴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본의 아니게 세터진이 강해졌다. 트레이드를 통해 V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이나연 세터를 영입했고 그 동안 이다영에게 가려 있던 김다인 세터가 이나연의 자리를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터는 공격수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현대건설에서 4년째 활약하고 있는 김다인이 시즌 초반 이나연에 비해 시즌 초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 알토스, 도로공사는 주전세터와 백업세터의 기량 및 경험 차이가 비교적 큰 팀으로 꼽힌다. 인삼공사는 하효림 세터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고 있지만 아직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고 기업은행도 이적생 조송화 세터가 전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도로공사의 백업세터 안예림 역시 아직 토스보다는 182cm의 신장을 활용한 원포인트 블로커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경기 흐름을 바꾼 김다솔 세터의 투입
 
 김다솔 세터의 투입은 경기 흐름을 흥국생명 쪽으로 가져 온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김다솔 세터의 투입은 경기 흐름을 흥국생명 쪽으로 가져 온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지난 2016-2017 시즌 무릎부상을 당한 조송화의 경기 출전이 힘들어지자 김수지(기업은행)의 친언니이자 현역 은퇴 후 5년이나 지났던 김재영 세터를 복귀시켜 주전 세터로 출전시켰다. 물론 당시에도 2014년 수련 선수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다솔 세터(개명 전 김도희)가 있었지만 아직 실전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송화 세터의 부상을 계기로 백업세터의 필요성을 깨달은 박미희 감독은 김다솔 세터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김다솔 세터는 2017-2018 시즌 14경기, 2018-2019 시즌엔 26경기에 출전하며 팀 내 존재감을 넓혀갔다. 특히 2018-2019 시즌에는 흥국생명의 우승멤버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사실상 주전급이나 다름 없는 GS칼텍스의 안혜진 세터를 제외하고 리그에서 김다솔 만큼 존재감 강한 백업 세터도 흔치 않았다.

하지만 김다솔 세터는 지난 4월 큰 위기를 맞았다. 흥국생명이 FA 시장에서 이다영 세터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다영 영입과 함께 조송화 세터가 기업은행으로 이적하면서 김다솔의 팀 내 역할이 크게 바뀌는 건 없었다. 하지만 이다영 세터는 현대건설 시절 김다인 세터를 시즌 내내 한 경기도 못나오게 했던 적이 있는 만큼 김다솔 세터도 입지가 작아질 수 있었다. 실제로 김다솔은 컵대회와 시즌 개막 후 2경기에서 한 번도 코트에 서지 못했다.

그렇게 실전 공백이 길어지고 있던 김다솔 세터는 31일 도로공사전에서 이다영 세터가 흔들린 2세트 중반 교체 선수로 들어왔다. 3세트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며 경기 분위기를 바꾼 김다솔 세터는 4, 5세트에서는 주전 세터로 활약하며 교체 없이 흥국생명의 공격을 배분했다. 비록 중앙공격을 살리는 데는 다소 미숙했지만 특유의 빠른 토스를 통해 침체돼 있던 김연경과 이재영의 공격을 살리면서 흥국생명의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

김다솔이 도로공사전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흥국생명의 대역전승을 이끌었지만 한 경기 활약이 좋았다고 해서 당장 '국가대표 주전세터' 이다영을 제치고 주전세터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도로공사전을 통해 주전세터 이다영이 아프거나 흔들리는 경기에도 믿고 출전시킬 수 있는 김다솔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도로공사전에서 따낸 승점 2점보다 박미희 감독을 더욱 기쁘게 만든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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