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이 어쩌면 당분간 KBO리그 고별전이 될 수도 있는 마지막 등판을 아쉬운 패배로 마감했다. 양현종은 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시즌 홈 최종전에 선발 등판해 5.1이닝 10피안타(2피홈런) 2볼넷 2탈삼진 7실점(6자책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KIA가 2-9로 맥없이 패하면서 양현종은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날 경기는 KIA의 올시즌 마지막 홈경기이자 일찌감치 해외진출을 선언한 양현종에게는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 고별무대이기도 했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등판 일정을 앞당겨서 양현종이 홈팬들 앞에서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올시즌 내내 양현종을 괴롭혔던 두산은 끝까지 호락호락하게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현종은 1회부터 김재환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는 등 무려 5실점을 허용하며 고전을 면치못했다. 양현종은 올시즌 두산을 상대로 4경기에서 1승 2패 자책점 7.17에 그쳤다.

비록 마지막 인사가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KIA 선수단과 관중들은 양현종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14년간 팀을 위하여 좋은 날이나 궃은 날이나 헌신해준 '에이스'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다. 양현종은 마운드를 내려가며 서재응 투수 코치와 포옹을 나누고 더그아웃 쪽으로 향하면서 홈관중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덕아웃에서는 윌리엄스 감독과 선수들도 모두 앞으로 나와 박수를 보내고 주먹을 맞대며 돌아오는 양현종을 격려했다.

2020시즌은 양현종과 KIA에게 모두 아쉬운 시즌이었다. 윌리엄스 감독 부임 첫해 KIA는 시즌 내내 5강 경쟁을 펼쳤지만 72승 70패로 6위에 그치며 가을야구 진출이 좌절됐다. 양현종도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늦어지면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70로 예년에 비하면 많이 저조한 성적표를 남겼다. 물론 7년 연속 10승-170이닝 투구를 달성하며 팀의 기둥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현역 국내 최고 선발투수라는 명성, 올시즌 이후 해외진출을 노린다는 기대감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현종이 KIA와 한국야구를 위하여 보여준 헌신의 가치는 단지 올시즌의 기록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양현종의 KBO리그에서 무려 14시즌을 활약하며 통산 425경기에 출전하여 1986이닝을 소화했고 147승95패, 평균자책점 3.83, 탈삼진 1673개 등의 기록을 남겼다.

양현종의 기록은 누적 숫자가 주는 무게감도 크지만, 기복없는 '꾸준함'으로 쌓아올린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값지다. 2007년 기아에 2차 1라운드(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이래 양현종은 두 자릿수 승수를 돌파한 시즌만 9번이나 된다. 2016년에는 토종 투수로 200이닝 돌파,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2017년에는 '꿈의 20승' 고지에 오르기도 했다.

부상으로 다소 주춤했던 2011~2012년 정도를 제외하고 양현종은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 2014년 이후로는 매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와 정규이닝 소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국내 투수였다. 2010년대 이후만 놓고보면 KBO리그 투수부문 누적 WAR, 다승, 탈삼진, 이닝, 완투, QS(퀄리티스타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양현종이 1위를 독식하고 있다.

사실 양현종은 동세대를 풍미한 '메이저리거' 류현진과 김광현 등과 비교하면 오히려 늦게 주목받은 케이스다. 이들이 데뷔 초기부터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며 일찌감치 정상급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면, 양현종은 비록 출발은 다소 뒤쳐졌을지 몰라도 기복없이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장수하는 이른바 '거북이형' 에이스의 표본이라고 할만하다.

특히 부상과 개인사 등으로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보냈던 윤석민-한기주-김진우 등 KIA의 '80년대생 천재투수 4인방'중에서 양현종은 가장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했으며,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만일 이들이 동시기에 모두 전성기를 맞이했다면 KIA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흥미로운 가설이기도 하다. KIA 팬들에게 다른 세 선수가 '애증'에 가깝다면, 유일하게 장수하며 영욕의 세월을 오롯이 함께 지탱해준 양현종을 바라보는 감정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야구성적도 훌륭했지만 인성적인 면에서도 양현종은 프로선수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정상급 선수생활을 이어오면서도 사생활 문제나 경기매너, 팬서비스 등으로 불필요한 구설수에 오른 경우가 단 한번도 없다. 유망주 시절 고 호세 리마와의 우정, 올시즌 가족의 교통사고로 시즌중 부득이하게 한국을 떠나야했던 애런 브룩스를 위한 응원 세리머니 등 양현종의 따뜻한 인간미를 드러내는 여러 일화들은, '야구란 결국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스포츠'라는 본질을 일깨우며 훈훈한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양현종은 이제 KBO리그에서의 야구인생 1막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사실 수년전부터 몇차례나 해외무대 도전 가능성이 거론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어느덧 30대를 넘겨서야 출발점에 선 것은 많이 늦어진 감이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무대에서 그리 압도적이지 못했던 양현종의 활약상, 올시즌 국내 무대에서도 많이 떨어진 구위, 14년간 이미 KBO리그에서 많은 공을 던져서 소모된 어깨상태 등을 고려하며 해외진출에 우려의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선배인 윤석민의 사례처럼, 굳이 적지않은 나이에 무리하게 해외무대에서 도전했다가 시행착오를 겪느니, 안정적인 KBO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송진우와 이강철 등 선배들의 기록에 도전하는 'KBO 레전드'로 남는게 더 좋지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에게 빅리그란 평생의 꿈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발전도 가능하다. 류현진은 KBO리그 한화에서의 마지막 시즌은 두 자릿수 승리에도 실패하며 부진했고, 김광현은 아예 메이저리그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두 선수 모두 빅리그에서 첫해부터 보란 듯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양현종도 못하라는 법은 없다. 해외 스카우트들도 단지 한 시즌의 성적이나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올시즌의 부진이 아쉽기는 해도 양현종의 해외진출 여부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양현종은 지난 14년간 KIA와 한국야구를 위하여 충분히 헌신을 다했다. 어느덧 선수생활의 후반부를 향해가는 지금, 이제는 결과를 떠나 선수의 의지와 꿈을 존중해줘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평가는 양현종의 해외무대 도전이 끝난 다음에 이뤄져도 늦지 않는다. 많은 야구팬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투수'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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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대투수 KIA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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