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A대표팀과 김학범 감독이 지휘하는 23세 이하 올림픽대표팀이 다음 달 9일, 12일 두 차례 친선경기를 치른다. 28일 두 감독은 경기가 열리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각각 23명씩의 대표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축구협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해 A매치 일정이 모두 연기된 상황에서 대표팀 운영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A팀과 올림픽팀간의 이벤트 매치를 성사시켰다. 일정상 해외파 선수들이 합류할 수 없는 상황이라 벤투호와 김학범호 모두 K리거들로만 명단을 채우게 되면서 사실상 'K리그 올스타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대결을 앞두고 양팀 감독의 공통된 고민거리는 선수차출 문제였다. 소집대상이 K리거로 한정된 데다, A팀이나 올림픽팀 모두 차출 가능한 최고의 자원들을 데려오려고 하다보니 몇몇 선수가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김판곤 KFA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서로 겹치는 선수가 상당히 많았고, 양측의 입장차이가 커서 직접 두 감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조율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측은 1996년생 이후 선수 3명만 A대표팀에 선발하는 방향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올림픽팀 핵심자원인 이동경- 원두재(이상 울산현대) 그리고 이동준(부산 아이파크)이 이번 스페셜매치에서는 A대표팀에 합류하여 김학범호와 경쟁하게 됐다. 특히 기성용의 후계자로 꼽히는 전천후 미드필더 원두재는 A대표팀에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낸 젊은 유망주들의 차출 문제를 두고 각급 대표팀간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은 축구계에서 흔한 일이다.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럽에서는 보통 나이를 월반하여 성인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을 정도로 출중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연령대별 대표팀을 건너뛰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킬리앙 음바페(파리생제르망, 프랑스)나 마커스 래쉬포드(맨유, 잉글랜드)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며 이들은 아직 올림픽이나 연령대별 대회 출전도 충분히 가능한 나이대지만 이미 10대 시절부터 A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A매치만 벌써 30여 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한국에서는 손흥민(토트넘)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유럽무대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손흥민은 19세였던 2011년부터 A대표팀에서 자리잡으며 연령대별 대표팀에는 거의 차출되지 않았다. 병역문제가 걸려있던 2016년 리우올림픽이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형식으로 특별히 합류한 사례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올림픽 대회의 비중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A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라고 연령대별 대표팀에 중복차출되는 경우가 흔했다. 이동국, 고종수, 이천수, 박주영같이 10대 때부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이미 월드컵 본선까지 출전할 만큼 A대표팀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도 이후 올림픽 대표팀까지 넘나들며 활약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중복차출에 시달리는 유망주들의 '혹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A팀과 올림픽팀간 선수차출 문제로 정면충돌한 사례도 있다. 2011년 조광래 감독이 이끌던 A대표팀과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런던 올림픽 대표팀은 당시 구자철-지동원-홍정호 등 핵심선수들의 중복 차출문제를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다. 세대교체를 표방한 조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A팀에 중용하고 있었고, 이들은 올림픽팀 홍명보호에서도 절대적인 핵심자원들이었다. 다행히 축구협회의 중재로 교통정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당시 이회택 기술위원장과 조광래 감독이 선수차출의 권한 해석을 놓고 공개적인 언쟁을 벌이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선수차출 문제는 A대표팀에 좀 더 우선권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올림픽도 한국축구에 매우 중요한 대회이고 A팀과 연령대별 대표팀은 연속성 측면에서 함께 공생해야 할 존재다. 양팀 모두 외부와의 A매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수 점검과 경기력 유지를 위하여 스페셜 매치라는 대안을 선택했다면, 서로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했다.

현재 사정이 좀더 어려운 쪽은 누가봐도 올림픽팀이었다. 벤투호는 어차피 김학범호보다 유럽파 선수들의 비중이 훨씬 높은 팀이다. 해외파가 합류할 수 없는 조건이 같다고 해도 모든 연령대를 아울러 자유롭게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벤투호가 선택의 폭은 훨씬 더 유연하다. 영건 3인방은 김학범호에서는 대체불가한 핵심 자원이라면, 벤투호에서는 점검해야 할 선수의 일부분에 해당한다. 만일 벤투 감독이 이들 3인방을 데려다 놓고 스페셜 매치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면, 김학범호나 소집된 선수들 개개인에도 비효율적인 상황이 된다.

벤투 감독은 23세 이하에서 3명의 선수만 데려온 것도 양보라고 하겠지만, 김학범호로서는 애당초 주축 선수들을 내준 상황에서 평가전의 의미가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다. 김학범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23세 이하 선수들중에서 K리그에서 현재 꾸준히 주전으로 경기에 출장하거나,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는 한정되어 있다.

차라리 23세 이하 선수를 벤투 감독이 데려가는 대신, 선수 1명당 '와일드카드' 형식으로 김학범호도 24세 이상 선수를 3명까지 소집할 수 있게 하는 대안은 어땠을까. 김학범호도 어차피 내년 올림픽 본선을 대비한 와일드카드 점검도 필요한 상황이었고 원두재나 이동경 같은 핵심 선수들이 빠졌을 때를 대비한 대안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스페셜 매치의 결과는 양팀 감독 모두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향후 대표팀에서 기용될만한 선수들의 경기력 점검이라고 했을 때, 벤투 감독으로서는 23세 이하 선수들을 소집에서 아예 배제하고 상대팀으로 마주쳤을 때 A대표팀 형님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기량을 점검하기에는 충분했다. 

벤투 감독은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울산에서만 무려 9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사실상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베스트11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울산과 양강 구도를 형성중인 2위 전북에서는 단 2명의 선수만을 선발했다.

또한 이주용(전북)이나 나상호(성남)처럼 그간 소속팀에서도 그리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선수들도 선발된 반면 문선민(상주)-한교원(전북)같이 이번에도 K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여전히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도 다수 존재한다. 벤투 감독이 리그에서의 활약상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고유의 스타일'을 중시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벤투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영건 3인방을 비롯하여 23명의 선수들을 얼마나 고르게 활용할 지, 차포를 뗀 김학범호가 형님격인 A대표팀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렵게 성사된 스페셜 매치에서 두 팀 모두 만족할만한 소득을 거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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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김학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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