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 넷플릭스


도널드 레이 폴록의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베트남 전쟁 초기까지의 미국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신이 방관하는 가운데 악의 심판은 누구의 몫인가'에 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2대에 걸친 피의 대물림을 통해 악마와 함께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윌러드는 그곳에서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를 본다. 이 기억은 그의 뇌리에 끔찍하게 자리 잡는다. 전쟁터에서 맛본 지옥 같은 기억 때문인지 그는 다시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런 지옥을 인간에게 내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윌러드는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웨이터 샬롯과 결혼한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점찍어 둔 신붓감인 헬렌을 윌러드가 거부한 걸 아쉬워하지만, 헬렌에게는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목사인 로이다. 로이의 연설에 반한 헬렌이 그와 결혼을 택하고 아이를 임신하면서 윌러드는 자연스럽게 샬롯에게로 향한다. 윌러드의 아들 아빈과 헬렌의 딸 레노라는 후에 만나게 된다. 단, 그 만남은 좋지 못한 인연이다. 로이는 신에 집착하는 광신도였고,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아내를 죽인다. 다시 헬렌을 부활시킬 것이라 믿었던 그는 그 믿음이 배신당하자 헬렌을 매장하고 도망친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 넷플릭스


윌러드는 샬롯이 암에 걸리자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한다. 샬롯을 만나면서 행복을 느낀 그는 다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샬롯의 힘으로 다시 주를 만났으니, 주가 자신을 향해 기적을 보여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홀로 남은 아빈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부모가 없어 머물고 있던 레노라를 만나 친남매와 같은 우정을 쌓는다.

놀랍게도 두 아이는 각자의 부모를 닮았다. 아빈은 거칠다. 윌러드가 '세상에는 나쁜 놈들 천지다'라며 주먹을 휘두르고 다녔던 것처럼, 아빈 역시 법과 정의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믿는다. 그는 레노라를 괴롭히는 무리들을 거칠게 혼내준다. 어린 시절부터 왕따를 당하며 폭력에 익숙한 아빈은 자신에게는 오지 않는 주의 구원보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고자 한다. 소중한 레노라가 괴롭힘 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 넷플릭스

 
레노라는 과거 헬렌이 그랬던 거처럼 종교에 심취해 있다. 괴롭힘 속에서도 레노라는 주를 찾는다. 주님이 위기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란 믿음이 그녀에게는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랬던 거처럼 목사에게 빠져든다. 마을에 새로 온 젊은 목사 티가딘은 첫 예배 때부터 아빈의 할머니에게 모욕을 준다. 마을 사람들이 가져 온 음식 중 아빈 가족의 음식만이 고기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이 장면은 티가딘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해 준다. 그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종교를 이유로 남에게 모욕을 주고 젊은 여성들을 유혹해 타락에 빠뜨린다. 하필 그 대상이 레노라가 되면서 아빈의 삶은 절망에 빠진다. 윌러드가 신을 찾았지만 응답해주지 않았던 거처럼, 아빈의 외침 역시 공허하게 사라진다. 아빈의 손에 총이 쥐어지고 피가 묻게 되는 건 신의 음성이 사라진 자리를 악마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 넷플릭스


후에 아빈이 만나게 되는 이런 악마가 칼과 샌디다. 두 사람은 히치하이킹으로 남자들을 태워 살인하는 연쇄살인범이다. 이들 부부의 삶은 오직 한 가지로 채워져 있다. 살인에서 오는 쾌락. 이 쾌락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샌디의 오빠 리가 마을의 보안관이기 때문이다. 리는 동생과 남편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걸 알지만 묵인한다. 엉망인 삶을 살고 있는 동생에게 그나마 칼 같이 지켜줄 남자라도 필요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리 역시 아빈과 같은 생각을 지닌다. 신의 구원과 법의 심판보다 가까운 건 폭력이다. 비록 칼이 악마일지라도 그 악마가 폭력과 살인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면 괜찮다고 리는 생각한다. 이는 아빈이 폭력에 물든 이유이기도 하며, 제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 전쟁까지의 시대가 지옥과도 같은 참상을 지닌 배경이기도 하다. 세상은 신을 찾지만 신의 음성은 너무도 멀다. 그래서 사람은 악마를 심판하고자 스스로 악마가 된다.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록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 더욱 분위기에 몰입되는 힘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의 악마라는 공포로 인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피의 대물림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시대가 지닌 어둠과 공포, 비극적인 운명 앞에 놓인 이들의 암울한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가입자라면 꼭 봐야할 또 다른 필수 오리지널 영화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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