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이> 포스터

<시라이>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최근 호러는 그 장르의 성공에 비해 범위가 작아진 모습을 보인다. <킹덤>, <부산행> 등이 유행시킨 K좀비가 전 세계적인 열풍이 된 것처럼 좀비물과 <컨저링>을 필두로 등장한 오컬트물은 흥행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는 반면, 귀신과 저주에 중점을 둔 정통 공포는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J호러는 최근작 <헌티드 파크>를 비롯해 눈에 띄는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링>, <주온>, <착신아리> 등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J호러는 유튜브 등 영상매체의 발달과 현대 관객들의 높아진 공포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링> 20주년을 기념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쥔 <사다코>가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음에도 아직도 개봉 소식이 들리지 않을 만큼 J호러에 대한 국내의 기대감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라이>의 개봉은 다소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일본의 천재 미스터리 작가 오츠이치가 직접 메가폰을 쥐며 감독으로 데뷔한 이 영화는 '믿고 보는 작가'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만큼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작가 출신 감독이 이야기까지 쓴 만큼 탄탄한 줄거리가 돋보일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시라이> 스틸컷

<시라이>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미즈키는 눈앞에서 친구가 안구 파열 후 심부전 증상으로 사망하는 걸 보게 된다. 친구는 죽기 전, 창밖을 바라보며 겁에 질린다. 이후 그녀는 친구와 같은 증상을 겪다 죽은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루오는 전화기를 통해 두려움에 떠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는다. 동생은 누군가를 보았고, 이후 안구가 파열되어 죽은 채 발견된다. 미즈키와 하루오는 죽은 두 사람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하던 중 함께 여행을 갔음을 알게 된다.
 
그 여행에 동참했던 여성은 세 사람이 함께 한 술 판매원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술 판매원은 미스터리한 괴담을 이야기했는데 그 괴담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것. 이야기를 마친 여성은 자살을 시도하던 중 미즈키와 하루오에 의해 구조된다. 이때 여성은 그 저주의 핵심이자 알아서는 안 될 여자의 이름을 말하고 만다. 눈이 기괴하게 큰 그 여자의 이름은 '시라이'다.
  
 <시라이> 스틸컷

<시라이>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꽤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선보인다. 첫째는 저주다. 괴담에서 여자의 이름을 들으면 저주에 빠진다는 설정은 섬뜩함을 준다. 특히 이 저주가 맨 처음 퍼지게 된 과정인 술 판매원 히데아키가 괴담을 말하는 장면에선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 괴담과 시라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점은 함께 저주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민담에서 저주의 근간을 찾으며 이 저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저주를 풀거나 희석시키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스토리를 흥미롭게 이끌어 나간다. 설정에 있어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공포영화의 허술함에서 벗어난다. 최근 구마의식을 통해 저주를 해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오컬트 장르의 영화들과 비교할 때 신선하게 다가온다. 
 
둘째는 추적극의 매력이다. 미즈키와 하루오는 저주를 조사하던 중 기자 코타를 만나게 된다. 코타의 기자란 직업은 두 사람이 저주의 뿌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데 영향을 끼친다. 미스터리한 죽음에 호기심을 품은 코타는 새로운 기사를 쓰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고, 이 과정에서 미즈키와 하루오의 도움을 받는다. 세 사람은 저주를 퍼뜨린 히데아키와 저주를 조사하면서 의문을 추적해 간다.
 
이런 스토리 측면만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최근 등장한 공포영화 중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 완성도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연출이다. 이 부분에서 <시라이>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다. J호러 연출의 약점이라면 더는 무섭지 않은 귀신에게 포인트를 맞춘다는 것이다. 최근 호러영화가 더 무섭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귀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이 영화 속 시라이는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시라이> 스틸컷

<시라이>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이는 시라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 긴장감 넘치는 음악을 선보였던 J호러의 사운드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촌스러운 느낌을 준다. 촬영기법에서도 공포를 자아낼 만한 기교를 선보이지 못하며 시라이의 등장을 초라하게 만든다. 만약 '시라이를 계속 쳐다보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저주의 설정이 없다면, 남들보다 큰 눈을 지닌 시라이는 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괴담 속 '입 찢어진 여자'의 연장선상에만 머물렀을 것이다.
 
호러의 매력은 연출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시라이>의 경우 사운드나 촬영, 공포 장면을 표현하는 기교에 있어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갈라파고스화 되어버린 일본영화의 연출은 공포장르에 있어서도 발전을 보이지 않으며 현 세대 관객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일본의 괴담과 공포 만화가 소비되는 시대에 J호러가 그 위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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