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2020시즌 KBO리그 개막을 앞두고 각팀의 전력을 전망하며 한화 이글스를 최하위로 평가한 바 있다. ESPN은 "한화는 역사에 빛나는 순간은 많지 않았지만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했다.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던 때의 시카고 컵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유망주 육성은 리그 최악으로 평가받으며, 로스터에는 베테랑들과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로만 구성됐다"고 평가했다. 

한화는 27일 현재 7승 12패로 리그 8위에 머물고 있다. 뜻밖의 폭락을 경험하고 있는 최하위 SK(3승 15패)나 삼성(6승 13패)이 있어서 최하위권만 면했을 뿐, 한화의 전력과 성적은 모두 ESPN이 예상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한화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저조한 공격력이다. 한화는 26일 LG전에서 0-3 영봉패를 당했다. 투수들은 제 몫을 했지만 타선의 한 방이 터지지 않았다. 7회 1사 1,2루와 8회 무사 1루 찬스가 있었으나 연속 병살타로 흐름이 끊겼다. 공교롭게도 지난 시즌까지 한화에서 활약하다가 LG로 이적한 정근우에게는 0-1로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던 6회초 1사에서 솔로 홈런까지 얻어맞았다. 이는 정근우의 시즌 1호 마수걸이 홈런이기도 했다. 

LG전 한 경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화의 올시즌 팀득점은 19경기에서 69점(경기당 3.63점)으로 최하위 SK의 65점(경기당 3.61점)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한화는 지난 23일 NC전에서 역시 0-3으로 완패하며 최근 3경기중 2번이나 영봉패를 기록했다. 한화는 올시즌 3득점 이하에 그친 경기가 무려 12번(2득점 이하는 7번)이었고 여기에 고작 2승 10패에 그치고 있다.

한화는 팀 타율 8위(.249), 출루율 9위(.311), OPS 9위(.660), 홈런 10위(11개) 등으로 주요 공격 부문에서 대부분 하위권을 기록중이다. 반면 병살타는 18개로 최다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부족한 공격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주루와 번트 등 작전야구의 빈도를 높이고 있지만 효율성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다.

타격 주요 부문 20위권 이내 이름 올린 선수 없어

전반적으로 타선에 무게감 있는 선수가 부족하다. 타격 주요 부문 20위권 이내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화 선수가 전무하다.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는 아예 없고, 팀내 홈런 선두인 김문호와 송광민이 2개(공동 24위), 타점 선두인 이성열이 고작 10개(26위)에 불과하다. 외국인 선수 제라드 호잉을 비롯하여 이성열-송광민 등 핵심 타자들의 타율이 모두 2할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초반 타격감이 좋던 하주석과 오선진은 부상으로 이탈해 있다.

이쯤되면 생각날 수밖에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한화의 베테랑 간판 타자 김태균이다. 올시즌 부활을 노렸던 김태균은 시즌 개막 후 11경기에서 타율 .103(29타수 3안타) 2타점이라는 극도의 부진을 보인 끝에 지난 2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김태균마저 빠진 타선의 무게감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태균은 퓨처스리그에서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고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더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의 상황을 감안할 때 조만간 김태균을 다시 1군에 호출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김태균이 복귀 이후에도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한화의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82년생인 김태균은 우리 나이로 이미 39세의 노장이다. 김태균은 이미 2017년을 기점으로 기량과 개인성적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2019년에는 프로 입단 초창기였던 2002년 이후 무려 17년만에 시즌 두자릿수 홈런, 장타율 4할에 모두 실패하며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김태균은 '한국의 조이 보토'라는 수식어처럼 전성기에도 장타력으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거포 유형은 아니었다. 정확한 선구안과 출루율로 승부하는 컨택형 중장거리 타자에 가까웠다. 문제는 나이를 먹어가며 김태균의 최대 장점이던 출루 능력이 반감되면서 장타력 약점이 더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김태균의 홈런 갯수는 2017년 17개에서 2018년 10개, 2019년 6개까지 줄어들었고, 장타율 역시 같은 기간 5할4푼5리에서 4할7푼6리, 3할9푼5리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거듭중이다. 비록 본인은 부정했지만 반발력이 낮아진 공인구의 변화도 김태균의 타격지표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커리어 통산 타율 3할, 출루율 4할에 빛나는 김태균도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는 없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김태균보다도 아직까지 '포스트 김태균'의 자리를 넘볼만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는 한화의 답답한 육성 시스템에 있다.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시절을 포함하여 지난 30년간 독수리군단의 간판타자 계보는 장종훈-김태균으로 이어진다. 장종훈이 커리어 막바지에 접어들던 시기에 김태균이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지만, 김태균의 후계자가 될만한 선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장종훈이나 김태균 같은 선수는 KBO 역사를 봐도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특급 선수들이다. 이런 스타들의 대체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한화가 리빌딩이나 육성을 언급한 게 2000년대 중후반부터임을 감안하면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한화는 2010년대 이후 들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몸값이 비싼 베테랑 FA들을 영입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선수생활 내내 상대투수들의 집중견제로 고군분투해야 했던 김태균이 만일 전성기에 이범호나 윌린 로사리오 같은 수준의 타자들과 함께 했다면 그의 기록이나 한화의 팀 성적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화는 김태균의 부활 여부보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포스트 김태균 시대를 앞두고 대안마련에 고심해야 할 때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태균한화 한화육성시스템 ESPN한국야구전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