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은 작은 빛을 따라 움직인다. 빛은 곧 희망이고 어떠한 시련이 다가온다고 해도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버리지 않는다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진무는 일상에 스며든 작은 빛 한 줄기, 그 따스함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을까? 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진무(곽진무)는 기억을 잃을 수도 있는 말에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 캠코더에 담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잊어버린 줄 알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가족을 만들어준 매개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아이러니한 존재다.

뇌 수술을 앞둔 남자가 캠코터를 잡은 까닭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영화는 평범한 가족 구성원의 일상을 찬찬히 훑는다. 별 거 없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일어나 밥 먹고 일하고 씻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그저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한 관심이 커지고 복잡한 감정이 교차된다. 이는 진무가 앞둔 뇌 수술 때문일 거다. 혹시나 모를 진무의 후유증이 걱정되어 애잔함이 커지기 시작한다. 비로써 이 남자가 카메라를 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남루하기만 한 가정의 모습, 극한 리얼리즘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 지경이다. 저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담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로써 천연덕스럽게 이입토록 만든다.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내가 알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진무는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찾아간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때로는 함께 자며 불편함을 해소해 준다. 삭아버린 형광들을 고쳐주고, 주저앉은 선반도 뚝딱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버려진 가구를 옮겨와 쓸 만한 자리를 만들어 주며, 큰집에 들러 사람 구실을 하고 아버지 산소에도 찾아간다.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제일 먼저 엄마(변중희)를 찾았다.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는 듯하다. 이도 그럴진대 누나 현(김현)의 호적이 필요해 결혼했지만 폭력을 일삼는 아빠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회상하며 요절한 게 차라리 잘 됐다고 말하는 걸 봐서 말이다. 질문한 진모는 새삼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누나를 데리고 재혼한 엄마와 이미 정도(신문성)형을 키우던 아빠 사이에 태어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복형 정도를 찾았다. 형은 가정폭력으로 집 나간 엄마를 찾아갔다며 씁쓸한 속내를 비춘다. 진모는 어떻게 말해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을 먹으며 위로를 건네는 것뿐.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것보다 백번 낫기도 하니까 말이다. 헤어지면서 정도 형이 잘 추던 춤을 춰달라고 졸랐다. 역시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았다. 진무에게 형은 가장 멋있는 연예인이다.

누나도 찾아갔다. 딸은 엄마의 인생을 닮는다고 했던가. 누나 현은 현재 조카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이다.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자신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심성을 가졌다.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꿈 많은 문학도였던 누나가 이젠 많이 늙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영화에서 반복되는 말은 '남들처럼 잘 지내는 건 뭘까'라는 물음이다. 이는 조민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숨기고 싶었던 기억의 환기라 할 수 있다. 특별함이 없는 장면임에도 은근한 긴장이 유지되고 자꾸만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란 훔쳐보는 행위이기에 가능한 영화적 허용이다. 극을 이끌어 가는 중심 소품인 캠코더를 통해 관음의 또 다른 변주를 맛볼 수 있다.

때문에 카메라는 배우와 멀리 있는 반면 진무가 잡은 캠코더 속의 가족들을 가깝게 담아낸다. 잊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기록하며 잊었던 기억마저 소환한다. 가족들은 본인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며 한 마디씩 내뱉는다. "그땐 그랬지..", "많이 늙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 본인들을 사느라 바빠 잊어버렸던 자신을 화면 속에서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식구란 본디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사이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영화에서는 유독 밥을 함께 먹는 장면이 많다. 정도가 찾아간 가족들과 꼭 하는 일은 바로 식사다. 한국에서는 '밥'과 관계된 인사가 많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밥은 먹었어?', '밥 먹고 가'라는 말로 안부를 묻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다들 바쁘고 같이 살지 않다 보니 가족이 밥 한 번 먹기도 어렵다. 식구란 이렇듯 사소한 밥 먹는 행위를 반복하며 얻어지는 관계인 것이다. 사뭇 가족과 식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작은 빛>은 뚜렷하게 보여주기보다 멀리서 바라보기를 통해 해석을 유도한다. 진모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이 남자의 마음을 읽어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긴 호흡을 함께 내쉬며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시종일관 지속되는데 딱 부러지게 결정지어 주지 않아 좋았던 쪽에 속한다. 그래서일까. 기억이 전부 사라질 수 있다는 진무의 감정은 영화가 끝나도 결코 알 수 없었다. 두려운 건지 슬픈 건지 어쩌면 행복한 건지 알길 없는 얼굴만이 홀로 대변하고 있다.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영화 <작은 빛> 스틸컷 ⓒ (주)시네마달

 
어쩌면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잃어버릴지 모를 가족을 정지 화면에 가둬둔 아버지의 애정이었을지 모른다. 진무가 잊지 않기 위해 캠코더에 일상을 기록하는 일과도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닮고 싶지 않은 부모지만 어쩔 수 없이 닮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한 남자가 발견한 작은 빛을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안의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어둡지만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은 밝고 따스했다. 부디 이원화된 마음의 근거를 영화 속에서 발굴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작은 빛 조민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