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젊은 투수가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떠나게 됐다. 13일 윤석민이 결국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윤석민은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에 있는 타이거즈 구단 사무실을 찾아가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움을 밝혔다.

윤석민은 기약없는 재활로 엔트리 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보다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구단에 전달했다. KIA 구단 측은 윤석민의 은퇴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11 투수 4관왕이었던 윤석민의 뜨거운 과거

1986년 7월 24일 생으로 경기도 구리 출신의 윤석민은 고등학교 재학 중 성남으로 이사하여 야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2005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KIA가 윤석민을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2005년부터 KIA 1군에서 기회를 얻은 윤석민은 주로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53경기 84이닝을 던졌다(3승 4패 7세이브 평균 자책점 4.29). 2006년에는 필승조와 마무리투수를 맡아 94.2이닝 5승 6패 9홀드 19세이브 평균 자책점 2.28로 활약했다.

2006년 초반에 선발투수로 데뷔했던 1년 후배 한기주가 시즌 중반 불펜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윤석민은 마무리 역할을 한기주에게 넘겨줬다. 이후 2007년부터 선발로 전환하게 되면서 28경기 162이닝을 던졌다. 평균 자책점은 3.78로 좋은 편이었지만 득점 지원을 워낙에 받지 못한 탓에 7승 18패로 리그 최다패 투수가 되고 말았다.

각성한 윤석민은 2008년 24경기에서 154.2이닝 14승 5패 1홀드 평균 자책점 2.33으로 다승 2위에 평균 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주로 필승조로 활약하며 2승 무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2.35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27경기 9승 4패 7세이브, 6승 3패 3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어느 한 역할로 고정되지 못한 탓에 많은 이닝을 던지지는 못했다. 2009년 KIA의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기여하긴 했지만 팀 상황에 따라 보직을 이동하느라 컨디션 조절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2011년 선발로 고정된 윤석민은 사정 상 구원 등판이 가끔 있긴 했지만 27경기 172.1이닝 17승 5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2.45에 178탈삼진을 기록했다. 승률까지 0.773으로 1위를 기록하며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승률 4관왕으로 정규 시즌 MVP도 차지했다. KBO리그에서 이 4개 부문으로 타이틀을 차지한 투수는 선동열(전 국가대표 감독)과 윤석민 뿐이다.

끝내 이루지 못한 메이저리그의 꿈

2011년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 윤석민은 서비스 타임 7시즌을 채웠다. 윤석민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소속 팀 KIA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윤석민은 FA 자격까지 2시즌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윤석민의 이후 2시즌은 2011년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2012년에는 28경기 153이닝 9승 8패 평균 자책점 3.12, 2013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또 왔다갔다 하면서 30경기 87.2이닝 3승 6패 2홀드 7세이브 평균 자책점 4.00을 기록했다.

그리고 FA 자격을 획득한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FA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다소 늦은 시점인 2월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일단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한 번 들어야만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생기는 계약이었다.

이 애매한 옵션이 윤석민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취업 비자 발급 문제 등으로 스프링 캠프 합류가 늦었고, 결국 개막 전까지 감각을 완전히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오리올스는 윤석민에게 마이너리그 옵션을 행사한 것이다.

윤석민은 2014년 시즌을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노포크 타이즈에서 보냈다. 트리플A 리그에서 10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굴욕적인 기록도 남겼으며, 23경기 95.2이닝 4승 8패 평균 자책점 5.74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윤석민은 2014년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지 못했으며,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게다가 2015년에는 스프링 캠프 초청도 받지 못하며 메이저리그 진입 기회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 됐다.

일단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 로스터에서 제외되자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스캇 보라스 코퍼레이션 트레이닝 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실시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캠프 조기 소집자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2015년 3월 KBO리그 복귀를 발표했다.

복귀... 그리고 어깨 부상으로 일어서지 못한 윤석민

2015년 3월 윤석민은 KIA와 4년 90억 원(계약금 40억 원, 연봉 각 12억 5천만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윤석민이 KBO리그 FA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고, 오리올스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조건으로 이적료 1달러를 지불했다. 윤석민의 90억 원 계약은 2015년 3월 기준으로 최대 규모의 FA 계약이었다.

복귀 첫 시즌 윤석민은 다시 마무리 투수로 돌아갔다. 51경기 70이닝 2승 6패 30세이브 평균 자책점 2.96으로 세이브 3위에 오르며 건재함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나 선발로 돌아가려고 했던 2016년부터 결국 부상으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2016년 16경기 31이닝 2승 2패 6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3.19에 그쳤다.

2016년부터 윤석민의 어깨는 그를 고질적으로 괴롭혔다. 일단 2016년에는 수술을 하지 않고 재활을 통해 후반기에 복귀하기는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2016년 12월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과 재활로 1년을 통째로 날리게 되면서 2017년 KIA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는 힘을 보태지 못했다.

2018년 윤석민은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다. 재활을 거쳐 6월에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했지만 어깨 수술의 여파로 빠른 공의 속도가 시속 140km를 넘기는 것도 힘겨웠다. 사실 KIA는 어느 정도 투수들의 보직이 정해져 있었으나 윤석민이 한 곳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엔트리 전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수술 여파로 구속도 떨어졌고 어깨의 상태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지만, 윤석민은 2018년에 28경기 40이닝을 던지며 8패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6.75를 기록했다. 그렇게 FA 계약 4년이 만료된 윤석민은 2019년 연봉 10억 5천만 원이 삭감된 2억 원에 계약하고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윤석민의 어깨는 웃자란 뼈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7월 13일 이범호의 은퇴전에서 은퇴식 도중 이범호에 의해 언급되었는데 이범호가 라커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윤석민을 응원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윤석민은 2019년 퓨처스리그 몇 경기에 등판한 것을 끝으로 또 재활만 하다가 시즌을 마감했다. 윤석민은 5월 쯤에 이미 구단에 은퇴의 뜻을 전달했음이 이번 은퇴 소식에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계현 단장이 1년만 더 재활해보자고 하면서 은퇴를 말렸지만 어깨가 나아지지 않아 이번에는 단장도 은퇴 의사를 막지 못했다.

윤석민과 한기주, 부상으로 신음한 두 투수의 작별

사실 KIA에는 윤석민 말고도 비슷한 사례로 부상에 신음한 또 다른 투수가 있었으니 바로 얼마 전에 은퇴를 선언한 한기주였다. 한기주는 1987년 4월 29일 생 광주 출신으로 2006 드래프트 1차 지명을 통해 윤석민이 입단한 다음 시즌에 KIA에서 함께하게 됐다.

한기주는 데뷔 시즌인 2006년 선발로 데뷔했다가 후반기에 불펜으로 전환했다. 2006년 44경기 140.2이닝 10승 11패 8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3.26을 기록한 한기주는 윤석민이 선발로 전환한 2007년부터 KIA의 마무리투수를 맡았다.

2007년 55경기 70.1이닝 2승 3패 25세이브 평균 자책점 2.43, 2008년에 46경기 58이닝 3승 2패 26세이브 평균 자책점 1.71을 기록하며 2시즌 동안 KIA의 주전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윤석민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문제를 해결했지만 정작 등판했던 경기에서는 3경기 2.1이닝 1승 무패 평균 자책점 19.31로 부진했다.

올림픽 출전을 기준으로 한기주는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 26경기 34이닝 4승 5패 4세이브 평균 자책점 4.24에 그친 한기주는 이미 광주 동성고등학교 시절부터 혹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올림픽 때부터 부진하기 시작한 것도 팔꿈치에 걸린 과부하로 인해 결국 탈이 난 것이었다.

결국 2009년 한기주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 후반기 시즌을 접게 되면서 KIA의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기여하지 못했고, 결국 재활에 전념하느라 2010년 1군 경기는 1경기도 던지지 못했다. 2011년 여름 선발로 복귀했으나 이후 다시 불펜으로 전환했다.

어렵게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통해 복귀했으나 한기주는 2012년부터는 어깨 염증에 시달렸다. 한때 시속 150km를 쉽게 넘겼던 한기주의 빠른 공은 시속 140km를 넘기기도 힘들어졌다. 2012년 시즌을 마친 뒤 결국 한기주는 투수에게 치명적인 어깨 회전근 파열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활 후 2015년 7월에 복귀한 한기주는 일단 실전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2016년 시즌에는 29경기 56.2이닝 4승 3패 1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7.62를 기록하면서 윤석민과 마찬가지로 선발에서도 불펜에서도 한 곳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한기주는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다. 2018년에는 주로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33경기 1승 4패 3홀드 평균 자책점 6.69를 기록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다시 퓨처스리그에서만 등판했고, 9월에 잠시 1군에 등록되기도 했지만 등판 기록은 없었다.

한기주는 2019년 5월 이후에는 퓨처스리그 등판 기록도 없었다. 결국 한기주도 윤석민처럼 어깨 상태가 상당히 나쁜 상태에서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한기주도 윤석민도 두 선수 모두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들이었는데, 팀 상황을 이유로 보직까지 확실치 못한 상황에서 무리했던 탓에 결국 공을 던지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어깨가 망가진 상태로 은퇴하게 됐다.

한기주와 윤석민의 사례는 아무리 구위가 뛰어난 투수라도 어릴 때부터 몸 상태를 철저히 체크하고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공교롭게 두 선수가 비슷한 시기 타이거즈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었으며, 두 선수 모두 30대 초반에 안타깝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물론 두 선수가 타이거즈 출신이라고 해서 이러한 선수 관리 문제가 한 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기주의 사례처럼 유소년, 청소년 시절부터 지나친 혹사로 인해 프로 선수가 된 이후 몸이 망가진 사례들도 상당히 많다. 두 선수의 사례를 교훈삼아 향후 선수들의 몸 관리에 있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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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KIA타이거즈 윤석민은퇴 한기주은퇴 혹사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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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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