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아름다운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판타지 러브 스토리다. 작년 개막작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가 사회성 짙은 주제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었다면, 올해는 애니메이션이 갖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작품을 선정하였다. 이번 작품은 최은영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는 문화청미디어예술제 대상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대상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대상,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소설가 도리미 도미히코의 원작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일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주기마다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역량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번 개막작을 통해 다시 한번 꿈과 사랑을 향한 힘찬 메시지를 환기하고 있다.

영원히 곁에 있겠다는 약속, 함께 하고 싶은 믿음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서핑을 좋아하는 '히나코'는 작은 바닷가 마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곧 화재사고로 지역 소방관 '미나토'와 사랑에 빠지며 알콩달콩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둘은 정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파도를 가르며 바다 위를 활보하는 히나코는 사실 육지에서는 별 볼일 없는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다. 늘 좌충우돌, 사고를 몰고 다니지만 씩씩하고 발랄한 성격이다. 언젠가는 홀로 자립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특별한 날에는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어 하는 소박함을 갖고 있다.

반면 미나토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완벽한 사람이다. 어릴 적 온 힘을 다해 바다로 가는 아기 거북이의 모습을 보며 열심히 살고 싶은 의지를 불태운 노력파 소방관이다. 정의감, 자질, 요리 실력, 마음을 움직이는 섬세함까지 갖추었지만 바다 위에서는 항상 불안하다. 서핑을 잘 하고 싶지만 마음 만큼 되지 않자 히나코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을 시샘이라도 하듯 불의의 사고로 미나토는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런 미나토의 죽음이 자신이 한 말 때문인 것 같아, 좋아하던 서핑도 그만두고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히나코는 매일이 괴롭다. 크리스마스에 밤을 새우고 왜 바다로 뛰어 들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잠긴 미나토의 핸드폰을 열어 단서라도 찾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느날, 슬픔에 잠겨 있던 히나코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둘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부르면 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나토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미나토의 영혼이 승천하지 못하고 자신이 죽은 곳을 맴도는 지박령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슬픔이 커져 헛것이 보이는 건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히나코는 사랑했던 연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노래를 불러 소환하게 된다. 매번 혼잣말을 주고받는 히나코를 주변 사람들은 안타깝고 이상하게 보지만 상관없다. 그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고, 어떻게 보여든 괜찮다. 히나코는 전력을 다해 못다 한 연인과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함께 손잡을 수도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줄 수 없는 미나토는 자괴감이 쌓여간다.

귀여운 작화, 컬러풀한 색감, 귀에 꽂히는 OST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영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전작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확장판과도 같다. 쇠퇴한 항구마을에 이사 온 '카이'가 오직 음악이란 소통 창구로 인어 '루'와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와 토속 귀신이라 할 수 있는 지박령은 동양권에서 자주 차용하는 신비로운 존재다. 또한 음악만 들려주면 다리가 생기는 루와 노래를 부르면 물속에서 자취를 드러내는 미나토는 어딘지 닮았다.

귀여운 그림체, 마치 사진을 보는 듯 리얼한 풍경과 색채는 관객을 한여름의 바다로 초대한다. 푸른 하늘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하얀 포말을 이루며 터지는 파도 위를 가르는 서핑보드는 찬란했던 여름의 맛을 소환한다. 방금 간 원두로 부풀어 오르는 커피빵을 선사하는 커피의 향, 포슬포슬한 계란을 맛보고 싶은 오므라이스 등 맛과 냄새가 떠오르는 공감각적 심상이다. 불꽃놀이는 또 어떤가,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아름다움과 야경의 이미지는 이 영화를 관람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그 밖에도 바다를 상징하는 쇠돌고래, 거북이, 파란문어고래 등이 귀여움을 한껏 살린다. 둘이 함께 듣던 음악은 영화 내내 전반에 깔리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사랑'이란 전세계적인 메시지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삶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물을 다룰 줄 아는 서퍼 히나코와 불을 다스릴 줄 아는 소방관 미나토는 '물'을 매개로 사랑을 키워 간다.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서로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며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나토는 히나코가 단단히 두 발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해준다. 아무리 작은 파도라도 먼 길을 온 이유가 있다. 남과 비교하는 삶 말고 너만의 파도를 탈 수 있을 때까지, 즉 내 자리에서 나답게 살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정진한다면 누구든 꿈을 이룰 거라고 말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국가와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의 보편성을 재확인하게 한다. 국내 개봉은 오는 12월이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유아사 마사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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