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휘감는 노래> 포스터

<산을 휘감는 노래> 포스터 ⓒ The U-ra-mi-li Project

 
노래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적인 연대를 얻게 된다. 그 가사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입을 함께 맞추는 것만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얻는다. 노래에는 언어와 인종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이 힘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끈끈한 우정을 지닐 수 있게 만든다.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산을 휘감는 노래>는 이런 노래의 힘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2019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인 이 작품은 미얀마와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인도 나갈랜드 주의 마을 펙(Phek)을 배경으로 한다. 이 마을에선 5000명의 인구가 농사를 지으며 협동조합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계단식 논을 일굴 때, 묘목을 심을 때, 추수를 할 때 등 일상 모든 순간에 노래를 부른다. 작품은 롱테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덧붙여 그들의 끈끈한 공동체를 조명한다.
 
계단식 논을 일구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한 곳을 응시한 채 마을 남성들이 논을 일구는 장면을 찍는다. 끈적끈적한 진흙에 맨발로 들어온 그들은 삽과 곡괭이로 흙을 푸고 물길을 만들어 논을 만든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고되고 힘겨운 노동의 순간임에도 그들은 지치지 않는다. 다음 소절을 이어가기 위해 힘을 내고 기운을 차린다. 카메라는 그 연대의 순간을 쉼표 없이 담아낸다.
  
 <산을 휘감는 노래> 스틸컷

<산을 휘감는 노래> 스틸컷 ⓒ The U-ra-mi-li Project

 
이들의 노래가 특별한 이유는 그 뜻에 있다. "당신 없이 나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어요. 당신과 함께일 때, 고단한 하루도 빠르게 흘러가요. 당신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는 노래의 가사는 혼자가 아닌 함께 부를 때 의미가 있다. 이들의 노래는 답가의 형식을 취한다. 한쪽이 한 소절을 부르면 이어서 반대쪽이 다른 소절을 부른다. 펙 마을의 노래는 서로가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마을 자체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다. 한 형제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일보다 공부를 시킨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두 형제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고 마을을 떠나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마을을 잊지 못한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은 도시보다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기에 따뜻한 이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남자는 한때 마을을 떠났던 여성에게 네가 떠나서 마을 남성들이 모두 힘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녀를 좋아했던 마을 남성들에게 떠나간 그녀의 존재는 상실감과 슬픔을 주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치 10대 사춘기 청년처럼 순수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적인 경험을 말하며 함께 웃기도 하고 이성에게 가졌던 흥미를 털어놓기도 한다. 서로가 너무나 가까운 그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기침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다 함께 식사를 한다. 학교는 3교시로 끝이 나며 아이들은 어른들을 도와 일을 한다. 주말이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들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고 노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의 다리가 되어준다. 이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 다큐멘터리에서 딱 두 번 노래가 끊기는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수확한 곡물을 기계로 돌릴 때이다.
  
 <산을 휘감는 노래> 스틸컷

<산을 휘감는 노래> 스틸컷 ⓒ The U-ra-mi-li Project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 기계의 소음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다. 자연 속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는 이 순간 자취를 감춘다. 두 번째는 군인들의 등장이다. 마을은 미얀마와 국경지대에 위치한 분쟁지역에 속해 있다. 군인의 등장은 마을이 지닌 아픈 역사와 현실을 조명한다. 이 순간 다큐멘터리는 모든 소리를 꺼버린 채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인들의 모습만을 비춰준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지닌 끈끈한 연대와 사랑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을 휘감는 노래>는 개인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이야기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노래를 통한 소통과 연대, 그리고 사랑과 우정의 감정을 담아낸다. "당신 없이 나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어요"라는 마을의 노래 속 첫 구절처럼 타자(他者)가 있기에 사랑이 존재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정신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 씨네 리와인드에도 실립니다.
산을휘감는노래 제16회서울환경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