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스톤> 포스터

<하트스톤> 포스터 ⓒ 아이 엠(eye m)

  
청소년기는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주변인 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부르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에 사회가 지닌 가치관과 본인의 마음에 피어나는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을 겪곤 한다. 성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체의 변화를 겪는 2차 성징 속에서 사랑인지 우정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하트스톤>은 토르와 크리스티안이라는 두 소년을 통해 성 정체성과 개인의 성장 문제를 조명한다.
 
극 중에는 작은 키에 볼록한 볼 살이 귀여운 토르(발더 아이나르손)와 큰 키에 금발머리를 한 미소년 크리스티안(블라에 힌릭손)이 등장한다. 상반된 외형을 지닌 두 소년은 매일 붙어 다니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주변 친구들은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을 '게이 같다'라며 놀린다.

토르는 또래인 베스에게 관심을 지니고, 토르의 마음을 아는 크리스티안은 두 사람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토르와 베스가 가까워질수록 크리스티안의 마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자신이 '우정'이라 생각했던 감정이 '사랑'일 수 있음을 감지한 크리스티안. 토르가 자신의 마음을 담은 목걸이를 베스에게 선물할 때, 크리스티안의 손은 잔디를 쥐어뜯는다.
 
크리스티안이 토르에게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베스가 토르와 크리스티안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묘사된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흥미롭게 여기는 베스는 토르와 크리스티안과의 왕게임에서 다양한 미션을 부여한다. 그 중 하나가 웃통을 벗고 서로 어깨동무를 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크리스티안의 섬세한 감정이 돋보인다. 손끝 하나의 움직임만으로도 크리스티안의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담아낸다. 이런 크리스티안의 감정은 북유럽 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효율적으로 이용한 연출을 통해 극대화된다.
  
차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우물에 절규하는 크리스티안
 
 <하트스톤> 스틸컷

<하트스톤> 스틸컷 ⓒ 아이 엠(eye m)

 
영화는 세 번 크리스티안의 절규를 보여준다. 이 절규는 토르를 향한, 주체하지 못할 크리스티안의 감정을 담고 있다. 그 중 인상적인 장면이 우물에 머리까지 몸을 넣은 채 그가 절규하는 장면이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가장 친한 토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감정을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연못 속에서 오열하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이 영화의 연출과 맞물려 효과적으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는 토르와 크리스티안 사이의 감정이 점점 끓어오르다 절정을 맞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두 소년의 일상적인 모습만을 잔잔하게 담아내기에 감정적인 흐름을 잃기 힘들다.
 
이런 흐름 속에서 크리스티안의 절규는 생뚱맞은 느낌보다는 차마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는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한다. 감정선을 읽고 있었다고 생각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위해 감독은 두 가지 장치를 설정한다. 바로 크리스티안과 토르의 캐릭터이다. 도입부에서 동네 아이들은 쏨뱅이를 낚은 후 못생겼다며 밟아 죽인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쏨뱅이를 다시 살던 곳으로 돌려 보내주려고 한다. 손가락에 붙은 거미를 차분하게 손에서 내려놓으려 하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섬세하고 여린 그의 내면을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크리스티안의 내면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과격하다. 크리스티안은 그런 아버지와 충돌을 겪으며 좌절한다. 크리스티안이 더 적극적으로 토르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건 그가 지닌 내면의 연약함과 동시에 자신은 아버지처럼 강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다. 이런 크리스티안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받는 토르의 심리는 극의 중심을 함께 구성한다. 토르의 심리 구성은 성에 대한 호기심과 크리스티안처럼 자신을 이루는 가족 내부를 통해 이뤄진다.
  
퀴어 코드를 바탕으로 자아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
 
 <하트스톤> 스틸컷

<하트스톤> 스틸컷 ⓒ 아이 엠(eye m)

 
도입부의 낚시 장면 이후 토르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털 하나 없는 깨끗한 몸에 빗에 걸려 있는 머리카락을 빼내 성기에 털이 난 것처럼 붙인다. 이런 토르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베스에 대한 관심과 크리스티안의 애정에 대한 불수용을 가져온다.

거부나 혐오가 아닌 불수용의 반응은 토르의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다. 남편과 이혼한 토르의 어머니는 나이가 많고 볼품없는 스탠 아저씨와 연애를 즐긴다. 토르의 누나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고, 심지어 어머니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이때 토르는 누나를 폭력으로 막아서면서 어머니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몰래 술집에 들어갔다가 어머니와 스탠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뒷문이 막혀 못 들어간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토르의 모습은 어머니의 행복을 존중하지만 그 행복을 받아들이고 수용하지는 못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이런 그의 마음은 크리스티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크리스티안을 좋아하고 행복하길 원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촘촘하게 만든 두 주인공의 설정과 이런 불수용의 자세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충돌과 공존을 동시에 보여준다. 토르와 크리스티안은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면서 욕망이 어긋난 지점에서 충돌을 겪는다.
 
<하트스톤>은 퀴어 코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로맨스보다는 세계관을 통한 자아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세계가 인정하는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 사이의 갈등과 고통, 이를 통한 내적 성숙을 잔잔하지만 폭발적인 감성으로 담아낸다. 북유럽 특유의 잔잔하고 정적인 템포에 화산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정적인 힘을 지닌 이 작품은 아름답지만 슬픈 성장통을 품은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하트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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