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남자부에서는 2005년 출범 후 6시즌 연속으로 삼성화재 블루팡스와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물론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전은 'V클래식'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흥미롭고 치열하지만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일부 스포츠 커뮤니티에서는 '괜히 여러 팀 힘 빼지 말고 두 팀이 챔프전 치러서 우승팀을 가리자'고 불만을 토로하는 배구팬도 있었다.

대한항공 점보스의 성장과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약진으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오랜 양강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최근의 배구팬들에게는 새로운 불만(?)이 생겼다. 프로 초창기부터 꾸준히 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대캐피탈과 2016년 박기원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강 팀으로 거듭난 대한항공이 2016-2017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챔프전에서 맞붙게 됐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 내내 꾸준히 선두 다툼을 벌이며 1~2위 자리를 나눠 가졌다. 대한항공이 시즌 내내 강한 전력을 유지하며 역대 3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문성민, 신영석, 김재휘 등이 부상을 당하며 고전했던 현대캐피탈도 봄 배구를 앞두고 부상 선수들의 복귀와 주전 센터 최민호의 전역으로 '완전체' 전력을 구축했다. 이제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은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챔프전에서 양보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첫 통합 우승 달성 위해 탄탄한 전력 구축한 대한항공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정지석은 가장 유력한 정규리그 MVP 후보로 꼽힌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정지석은 가장 유력한 정규리그 MVP 후보로 꼽힌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에 밀려 정규리그 3위에 그쳤던 대한항공은 봄 배구에서 전통의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4번의 준우승으로 만년 2위팀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날린 우승이었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외국인 선수 미차 가스파리니를 비롯한 우승 멤버들을 대부분 지켜내며 연속 우승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대한항공이 이번 시즌 '역대급 삼각편대'를 거느린 현대캐피탈을 제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정지석의 성장이다. V리그 드래프트 시대의 첫 고졸선수 정지석은 3시즌 만에 주전으로 올라선 후 이번 시즌 548득점(9위), 공격성공률 55.3%(3위), 리시브 성공률 50.95%(2위)로 공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번 시즌 대한항공의 진정한 에이스는 가스파리니가 아닌 정지석이라고 평가하는 배구팬도 적지 않다.

2010년 프로 데뷔 후 두 번이나 수비상을 받으며 리그 최고의 살림꾼으로 성장한  곽승석은 이번 시즌 50%의 공격 성공률로 418득점을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가스파리니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었음에도 정규 리그에서만 5번의 트리플크라운을 작성하며 여전히 대한항공의 믿음직스러운 주공격수로 활약했다. 정지석-곽승석-가스파리니로 이어지는 대한항공의 삼각편대는 현대캐피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한항공이 현대캐피탈에 비해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은 역시 국가대표 주전세터 한선수의 존재다. 2007년 프로 입단 후 대한항공에서만 10년 넘게 활약하고 있는 한선수의 풍부한 경험은 주전 경력이 많지 않은 현대캐피탈의 이승원, 이원중 세터를 압도한다. 한선수가 챔프전에서 왜 자신이 그리 최고의 세터로 군림하고 있는지 증명한다면 대한항공은 시리즈를 훨씬 쉽게 풀어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정규리그에서 세트당 2.57개의 팀 블로킹(2위)을 기록하며 높이에서도 현대캐피탈(2.66개)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다만 이번 봄 배구에서 재결성된 현대캐피탈의 '트윈타워' 신영석과 최민호가 워낙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김규민, 진성태, 진상헌 등 대한항공의 센터진이 현대캐피탈의 중앙을 감당하지 못하면 공격수들의 위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한항공의 챔프전 2연패를 위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높이'가 될 전망이다.

삼각편대 동시에 터지면 누구도 두렵지 않은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의 챔프전은 파다르의 출전과 컨디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현대캐피탈의 챔프전은 파다르의 출전과 컨디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18일 우리카드 위비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둔 현대캐피탈은 비상이 걸렸다. 1차전에서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하며 30득점을 퍼부은 주포 크리스티안 파다르가 허리 통증을 호소한 것이다. 최태웅 감독은 고심 끝에 1998년생의 허수봉을 라이트에 투입했다. 허수봉은 이번 시즌까지 정규리그 통산 득점이 207점에 불과한 신예로 아직 봄 배구에서 주전으로 나서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허수봉은 부담이 컸던 원정경기에서 62.5%의 공격 성공률과 4개의 서브득점으로 양 팀 합쳐 가장 많은 20득점을 터트리며 현대캐피탈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아직 만 20세에 불과한,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유망주지만 허수봉은 대한항공과의 챔프전에서도 중요한 순간에 '비밀병기'로 코트에 투입될 확률이 높다. 허수봉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하지 못한 대한항공에도 허수봉의 존재는 작지 않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허수봉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활약'으로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정규리그 득점 4위(801점), 서브 1위(세트당 0.77개)에 빛나는 파다르의 허리 부상은 현대캐피탈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물론 우리카드에서 활약했던 지난 시즌에 비하면 점유율이 다소 줄었지만 파다르는 현대캐피탈에서도 가장 높은 공격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다. 따라서 파다르가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챔프전의 추는 대한항공 쪽으로 크게 기울 수밖에 없다.

정규리그에서 리시브 성공률 49.76%, 디그 세트당 1.39개였던 여오현이 플레이오프에서 리시브 성공률을 57.14%, 디그를 2.75개로 끌어 올린 것은 현대캐피탈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확실한 센터진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여오현 리베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멋진 수비 한두 개만 선보인다면 현대캐피탈은 단숨에 경기 흐름을 가져 올 수 있다. 이는 최태웅 감독이 한국 나이로 42세가 된 여오현을 큰 경기에서 풀타임 주전으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주전 세터로 활약하며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할 이승원 세터는 아직 자신감을 더 회복할 필요가 있다. 최태웅 감독은 1차전에서 루키 이원중 세터가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2차전에서 이승원 세터를 풀타임으로 기용할 정도로 이승원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자신감만 회복하면 동료들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세터인 만큼 이승원의 활약은 이번 챔프전에서 현대캐피탈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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