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장난이 아닌 일들이 있다

 두 주인공 해나 베이커(좌)와 클레이 젠슨(우).

두 주인공 해나 베이커(좌)와 클레이 젠슨(우). ⓒ Netflix


"그저 장난이었어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많이 내뱉는 저 문구는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할 때 많이 쓰인다. 본인은 상대를 괴롭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그저 함께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포장하고자 하는 것. 가해자는 저렇게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가벼운 것들로 포장하고, 그 가벼운 말과 행동에 상처받는 상대는 금세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치게끔 한다. 그러나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격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때로 우리에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때로 우리에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 Nextflix


자살을 선택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주변에 여러 가지 사인을 보낸다고 한다. 그 사인은 미묘하고 때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워, 그냥 흘려보내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곡절들과 사건들이 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차곡차곡 쌓인 일련의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보내는 사인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SOS 사인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내민 손을 잡고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말하기 어렵지만, 꼭 이야기해야 하는 이 사회적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드라마다.

루머의 힘, 학교 폭력, 그리고 자살

 드라마 < 13 Reasons why >는 한국 버전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번역됐다.

드라마 < 13 Reasons why >는 한국 버전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번역됐다. ⓒ Netflix


여주인공 해나 베이커가 자살했다. 해나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녀의 자살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클레이 젠슨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배달된 의문의 소포를 받는다. 소포 속에는 해나로부터 온 편지 한 통과 카세트테이프 13개가 들어 있었다. 해나가 죽기 전 13개의 테이프를 만들고 그것들을 자기 죽음과 관계된 13명의 사람에게 보낸 것. 클레이는 그 테이프를 하나씩 들으며 그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하나씩 알아간다.

 어느 날 클레이는 의문의 테이프 13개를 받는다.

어느 날 클레이는 의문의 테이프 13개를 받는다. ⓒ Netflix


원제인 < 13 reasons why(13가지 이유) >는 해나가 자신이 자살한 이유를 설명하는 13개의 테이프에서부터 나왔다. 관객들은 해나가 설명해주는 스토리라인을 따라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겪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모든 일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녀의 '맥락'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 결국 그녀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남주인공 클레이 젠슨과 함께 하나하나 알아간다.

그저 드라마일 뿐?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해나 베이커(가장 오른쪽)는 왜 자살했을까.

해나 베이커(가장 오른쪽)는 왜 자살했을까. ⓒ Netflix


이 드라마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따돌림, 소위 말하는 '왕따' 문제다.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따돌림은 단순히 학교와 학생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학생들의 괴롭힘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문물과 만나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으로까지 발전했다. 악의적인 소문이나 동의 없이 찍힌 사진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된다. 한 친구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카톡방을 만드는 '카톡 왕따' 또는 '카톡 감옥' 역시 이제는 익숙하다.

사이버 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24시간 괴롭힘에 노출된다는 데 있다. 기존의 학교폭력이 대면 관계에 머물러 피해자들이 학교에서 벗어나면 잠깐이나마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 지금의 학교폭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일상생활을 파고든다. 동시에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인 요즘 세대 청소년들은 이런 형태의 괴롭힘에 대해 더욱 민감하다.

 이것은 너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것은 너의 책임이기도 하다. ⓒ Netflix


해나 베이커가 만든 13개의 테이프 속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등장한다. 어떤 아이들은 해나에게 직접적인 잘못을 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해나가 힘들 때 그녀를 외면하거나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해나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그들의 잘못은 경중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녀를 자살로 몰아넣었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의 양상도 비슷하다. 몇몇 아이들은 왕따인 친구에게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그저 그 상황을 외면하고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상황을 방조하는 데 그친다. 우리는 아마 그 '대부분'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보고 외면함으로써 우리는 그 폭력이 유지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피해자는 아무리 도움을 청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에게도 일상이다

 따돌림은 다양한 형태로 일상을 파고든다.

따돌림은 다양한 형태로 일상을 파고든다. ⓒ Netflix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뉴스 검색창에 입력해보았다. 금세 수십만 건의 기사가 떠오른다. 이른바 '부산 여중생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9월의 끔찍했던 사건과 그 외에도 수를 셀 수 없이 생겨나는 학교폭력 관련 뉴스들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씩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학교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을 중단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의 삶에 이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물음 몇 가지를 던진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저 순간에 무언가가 아주 조금만 달라졌다면?'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저 순간에 누군가가 해나에게 친절하게 웃어주었다면? 저 순간에 누군가 해나와 밥을 먹었더라면? 해나가 놀림 받을 때 함께 웃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도움을 청할 때 그 말들을 허투루 듣지 않았더라면? 내가 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 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개인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 그 사이의 경계선

 그녀에게도 평범한 미래가 있었다.

그녀에게도 평범한 미래가 있었다. ⓒ Netflix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각도에서 학교 따돌림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 동시에 최근의 10대들이 일상에서 겪는 미묘한 감정과 상황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학교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의 시작과 양상, 그리고 10대 소녀들이 겪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볼 가치가 있다. 동시에 주인공 해나 베이커와 그녀를 사랑했던 친구 클레이 젠슨에게 몰입하여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내가 한 행동으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Netflix


그러나 동시에 '왕따 문제'는 절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왕따 피해자 중 내가 힘든 상황에 있다고 가정과 학교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말이다. 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10대 중에 저 상황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본인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 때문에 학교가, 가정이, 사회 시스템이 함께 따돌림과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함은 분명하다. 사후적 처벌과 수습에만 급급해서는 이 문제를 절대 뿌리 뽑을 수가 없다.

또 동시에 피해자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저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친구를 도와라'고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서도 보복을 당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던가,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달라질 수 있고 실제로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만 아이들은 달라진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갖는 사회적 의미

 피해자와 주변인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피해자와 주변인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Netflix


이 문제는 너무나도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라 오랫동안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가 되어 왔음에도 아직 뾰족한 해결책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작품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이 문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양상이 더욱 폭력적이고 심각해져 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의미에서 제 역할을 하기 때문. 또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흥미롭고도 날카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 역시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미디어의 역할이다.

지난 2017년 3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방영됐던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내년 초 시즌 2로 돌아온다.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오는 이 작품이 다음엔 어떤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게 될지 기대가 된다. 돌아오는 2018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수정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404homealon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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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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