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옥자> 내한 기자회견 당시 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 <옥자> 내한 기자회견 당시 봉준호 감독. ⓒ 넷플릭스


<옥자> 측이 오는 12일(월) 언론 배급 시사회를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13일에는 내한 레드카펫 행사를, 14일에는 내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양일간 진행되는 행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연, 변희봉, 최우식,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니엘 헨셜 등 국내외 출연진이 다수 참석한다. 오는 29일 개봉을 앞두고 벌이는 큰 행사라 할 만하다.

헌데, 그 장소가 눈길을 끈다. 레드카펫 행사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기자회견은 포시즌스 호텔에서 하는데 여기까진 국내외 대형 영화들이 대관하는 일반적 장소다. 이에 비해 언론 배급 시사회장으로 택한 대한극장은 이례적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한 우산 아래 있는 멀티플렉스 체제가 자리잡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대한극장은 일반 관객 대상 시사나 중소영화 언론시사 장소로 활용돼 왔다.

사실 <옥자>와 같이 덩치 큰 영화가 대한극장에서 언론/배급 시사회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옥자>의 온라인 및 극장 동시개봉에 대해 줄곧 반대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시사의 기회마저 내주지 않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매우 특수한 사례다.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자본'으로부터의 배제라고나 할까.

일례로, 박근혜 정권 당시였던 지난 2014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미라클 여행기>가 좋은 예다. 참사 이전 세월호를 주인공이 타고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여행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부 멀티플렉스로부터 거부당했다. 이밖에도 멀티플렉스의 '자의적'인 판단 하에 민감한 소재라 낙인찍혔던 영화들이 상영에홀대받았던 예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옥자>의 경우, CGV 등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영화 산업의 생태계 균형 교란" 등의 이유로 동시 개봉을 반대하고 있다. 결국 넷플릭스가 못 박은 전 세계 6월 29일 동시 개봉 전략에서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이탈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따라 몇 가지 <옥자>를 둘러싼 가상 시나리오가 점쳐지고 있다.

넷플릭스 <옥자>, 한국 멀티플렉스에서 못 보나

 영화 <옥자>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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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는 '최후통첩 아니다', '최종결정 아니다' 등등 <옥자> 개봉과 관련해서 간보기 그만하고 영화생태계 지킬건지 말건지 빨리 결정해라. 당신들이 지키겠다는 그 (제작사+배급사+극장) x독점 라인의 아주 튼튼한 일체형 싹쓸이 수익창출 생태계, 우리가 교란시켜 드릴게."

7일 한 지방 독립예술극장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CGV를 비롯해 3대 멀티플렉스가 <옥자> 동시 개봉을 두고 넷플릭스와 <옥자>의 배급을 맡은 NEW 측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대한극장에서 언론 배급 시사를 진행한다는 건 <옥자>의 개봉일에도 3대 멀티플렉스에서는 관객들이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동시 개봉은 하지 않겠다"거나 "다각도로 개봉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반복 중이다.

사실 NEW가 기존 비 멀티플렉스 극장의 스크린을 모두 가져간다 해도 기묘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전체의 약 8% 수준인 비 멀티플렉스 극장엔 서울극장이나 대한극장 뿐 아니라 독립영화전용관이나 예술영화상영관의 스크린도 포함된다.

이 스크린까지 <옥자>가 확보하게 된다면 치열하게 스크린 확보에 나서고 있는 독립/예술영화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자명하다. 단관극장이나 예술영화전용관 입장에선 <옥자>의 상영으로 멀티 플렉스의 기존 관객을 자기네로 불러들일 기회가 마련되는 셈이기도 하다. (참고기사 : 넷플릭스-영화산업 <옥자> 싸움에 봉준호 잃을 수도 http://omn.kr/ng51)

<옥자>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관객은 많고, 3대 멀티플렉스 이외의 스크린은 지극히 적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에 비해 넷플릭스 한국 가입자는 10만 명 안쪽으로 알려졌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스크린으로 관람하고 싶은 관객들이 어디로 발길을 돌릴지는 자명하다. 여기에 바로 그간 전혀 균형이 잡히지 않았던 한국 극장 생태계의 맹점이 도사리고 있다.

멀티플렉스에 편중된 극장 생태계

 봉준호 감독의 <옥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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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낸 '전세계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추세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9~15개의 상영관을 갖춘 극장이 41%이고, 16개 이상은 30%로 매우 높은 비율이었다. 아울러, 전체 영화관의 18.8%만이 소규모 멀티플렉스에 속했고, 상영관 5개 미만인 극장이 10.1%로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극점에 서유럽이 자리한다. 서유럽은 1~4개의 상영관으로 이뤄진 극장들이 전체의 39.7%라는 가장 높은 비율로 운영됐다. 이는 매우 높은 수치로 전 세계 평균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라 보면 맞다.

2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미국은 대규모 멀티플렉스 편중 비율이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다. 이러한 미국도 소규모 멀티플렉스와 상영관 5개미만 극장을 합치면 30% 안쪽의 비율을 보였다.

반면 소규모 멀티플렉스를 포함해 국내 비 멀티플렉스 극장은 2017년 기준 고작 7.6%다. 관객들이 <옥자>를 스크린에서 관람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은 반대로 3대 멀티플렉스에 극심하게 편중된 한국의 극장 생태계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한국의 3대 멀티플렉스들은 절대적인 스크린 점유율(92.4%)을 바탕으로 극장 생태계를 좌지우지 해 왔다. 게다가 투자/제작사와 한 지붕 아래 '특수관계'를 영위해 온지 오래다. 과도한 스크린 밀어주기를 비롯해 CGV 등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영화계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손꼽혀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옥자> 개봉 논란에서 관객들이 멀티플렉스의 손을 쉽사리 들어주지 않고 있는 기류가 형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옥자>가 교란시킨 극장 생태계,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선다?

CGV 등 멀티플렉스는 <옥자>의 '개봉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는 원칙으로 "극장을 포함한 영화 산업의 생태계 균형"을 내세웠다. 여기에 그간 묵계처럼 지켜져 왔던 '극장 개봉 후 온라인(인터넷 IPTV나 케이블 TV를 포함한 부가 플랫폼) 서비스'란 '홀드백' 개념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수입영화의 경우 '상영작 프리미엄'을 노린 IPTV 동시 서비스를 통해 홀드백 제도를 스스로 무너뜨려 왔다. 한국 영화 역시 극장 흥행에서 실패할 경우 IPTV 공개 시점을 앞당기면서 수익 보전을 위해 힘써왔다. 2~3주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홀드백 개념이 깨진 지 오래란 얘기다. 

결국, 향후 <옥자>와 같이 한국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대형 영화들이 넷플릭스 극장 동시 개봉을 추진하고 또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를 조금이라도 늦춰보자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이에 반해 비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옥자>를 통해 그간 잃어버린 관객층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여지도 다분하다. <옥자>가 초래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옥자> 개봉 이후다. 과연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천명하는 '영화계 생태계 교란'이 과연 누구의 손익계산을 위한 것인지 이번 사태로 더욱 명확해 졌다. 아울러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옥자> 이후 건강한 극장 생태계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지켜보는 눈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의 인선이 영화계에 파장을 불러일으키리란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이동통신, 영화 분야 등 서민 밀접 업종을 중심으로 불법적인 독과점 행태를 집중 관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상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제출 답변 자료를 통해 "독과점 고착 산업 중 규제 등으로 소비자 후생이 크게 제한된 이동통신, 영화 등 분야를 우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영화 생태계의 독과점 행태를 시정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2017년 <옥자>가 '교란'시키고 문재인 정부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술을 천명한 한국영화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될지 흥미롭게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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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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