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영애의 생전 모습. 글쓴이는 이 사진을 촬영할 때만 해도 김영애 선생이 이렇게 가실 줄은 미처 몰랐다.

배우 김영애의 생전 모습. 글쓴이는 이 사진을 촬영할 때만 해도 김영애 선생이 이렇게 가실 줄은 미처 몰랐다. ⓒ 극단산울림/촬영 이승한


얼마 전 홍대 산울림소극장을 방문했다가 층계참의 벽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벽에는 극단 산울림의 무대에 올랐던 역대 배우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설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대배우들의 젊디젊던 시절 사진들 속엔 김영애 선생의 사진도 있었다. 아마 쥘 르나르 원작의 1976년 연극 <홍당무>에 섰을 때 찍은 사진이리라.

난 선생의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젊은 날의 그가 아름다워서 매료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 담겨 있던 총기와 열정이,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 변함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경이로워서였다. 선생께선 스물 여섯의 나이에 올랐던 그 무대를 어떻게 기억하셨을까. 아마 기억하지 못하셨으리라. 선생께서는 매 배역마다 처음 연기하는 사람처럼 설렌다 말하고, 오케이 사인이 나고도 성에 안 차는 자신의 연기를 확인하는 게 고통스럽다며 촬영현장에서 모니터를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46년의 연기 인생 동안 '의미가 있다'고 복기할 만한 작품이 열 작품 남짓이라 단호히 말하며 집에 트로피도 하나 남겨두지 않았던 사람, 늘 현재를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들에 갇히지 않고 늘 현재를 살던 김영애 선생과는 달리 세상은 종종 그의 이미지를 게으르게 요약하곤 했다. 사람들을 마냥 탓할 수도 없는 것이, 늘 제 자신을 채찍질했던 선생의 연기는 언제 봐도 전작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강렬하긴 했으니까. 유작이 된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잔상 때문인지 선생의 부음을 전하는 뉴스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국민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선생은 영화 <변호인> 출연을 선택한 이유를 "'카리스마'라는 이미지를 벗고 예전에 연기하던 모성애 강한 역할도 맡아보려 했다"고 설명할 정도로 냉혹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요약되곤 했다. MBC <로열 패밀리>의 철혈군주 공순호 회장과 MBC <해를 품은 달>의 대왕대비 윤씨를 연달아 맡은 이후 사람들은 선생의 이전 필모그래피를 싹 잊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최강희와 함께 눈물 없이 보기 어려운 애증의 모녀관계를 연기한 영화 <애자>가 그리 오래 전 작품도 아닌 고작 2009년 작품이었는데도 말이다.

 MBC <로열패밀리>(2011)에서 김영애가 맡은 공순호라는 캐릭터는 냉정한 성격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MBC <로열패밀리>(2011)에서 김영애가 맡은 공순호라는 캐릭터는 냉정한 성격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 MBC


 김영애의 연기는 <특별 수사>의 깊이를 더한다.

김영애의 연기는 <특별 수사>의 깊이를 더한다. ⓒ 콘텐츠 케이


새삼스러운 첨언이지만, 김영애 선생은 '카리스마'나 '국민 어머니' 같은 한 단어로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뽐낸 배우였다. 그는 가늠할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으로 양반들을 압도하며 재인으로서의 긍지를 뿜어내던 KBS <황진이>의 백무였고, 세상 가장 냉혹한 말과 판단으로 JK그룹을 지배하는 <로열 패밀리>의 공순호 회장이었으며, 사측의 방해공작에도 끝끝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을 독려하던 영화 <카트> 속 마트 여성 노동자들의 좌장 순례였다. 어머니라 해도 다 같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선생은 자신이 모질게 내친 삼류 변호사를 찾아가 자존심을 다 버리고 무릎 꿇으며 '변호사님'에게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 오열하던 <변호인>의 돼지국밥집 사장 최순애 여사였고, 남편의 방임 속에서도 어떻게든 가정을 꾸리며 자식들을 건사하려 했던 SBS <형제의 강>의 어머니 순례였으며, 강도가 서서히 더해가는 치매 증세와 가족의 붕괴 속에서 착란과 광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던 <현기증>의 순임이었다. 선생을 '김영애'라는 이름 말고 다른 수식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우린 선생이 펼쳐 보였던 광대한 스펙트럼의 대부분을 놓치고 만다.

 영화 <변호인> 속에서 배우 김영애는 송변의 단골 국밥집 주인으로 분했다.

영화 <변호인> 속에서 배우 김영애는 송변의 단골 국밥집 주인으로 분했다.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그 수많은 스펙트럼 속에서도, 김영애 선생은 자신이 대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인물들의 목소리에 유독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영화 <카트> 개봉 당시 자신을 "굳이 따지자면 보수적인 사람"이라 말했고, <변호인> 개봉 당시엔 엄혹했던 시기 사는 게 바빠 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었다며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선생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편을 향했다. 독재정권의 용공조작 사건에 맞서 싸웠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날을 그린 <변호인>, 노동자를 간단하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자본의 폭력을 고발한 <카트>, 원자력발전에 대한 가장 과격한 문제제기였던 <판도라>, 재벌들이 법의 심판을 멋대로 피해가는 양태를 겨냥한 <특별수사>에 이르기까지, 선생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불편해 할 만한 작품들에도 흔쾌히 출연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 한참 전에 이미 선생은 빨치산 남편은 지리산에서 잃고 아들은 연좌제로 육사 시험에 떨어지는 걸 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SBS <모래시계>의 태수 어머니로 분한 바 있지 않은가.

선생은 배역 선택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고 질문하는 영화"(<변호인>)나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카트>)고 답했다. 정치적인 여파를 계산하는 건 선생의 일이 아니었다. 선생은 배역을 분석하고 계산하는 대신 그저 큐 사인에 맞춰 그 인물에 빠져들어 그 인물의 삶을 살아내는 종류의 배우였고, 그렇게 정신없이 앓고 나와 작품이 끝나고 나면 바로 인물에서 빠져 나오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빠져들어 본인이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늘 이념 이전에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작품을 선택하고 출연해 온 '사람의 배우'였다. 비록 당신께선 자신을 '보수'라 생각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몰라도.

지독한 예술가이자 치 떨리는 재인

 KBS <황진이> 속 배우 김영애의 모습.

KBS <황진이> 속 배우 김영애의 모습. ⓒ KBS


김영애 선생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KBS <황진이>의 송도 교방 행수기생 백무를 언급한다. 물론 김영애 선생이 워낙에 완벽하게 인물을 연기해냈기에 그런 것도 있겠으나, 어쩌면 백무의 삶이 김영애 선생의 생전 모습과도 퍽이나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백무는 자신이 생각하는 재예의 경지를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냉혹하리만치 엄격했고, 그랬기에 조선 최고의 춤꾼이 될 수 있었으며, 자신이 받아 합당한 존중을 받지 못하자 휘어져 창기 취급을 당하느니 차라리 정면으로 치받고는 부서지는 쪽을 택한 지독한 예술가였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조차 학춤을 남기고 간 것이었던 치 떨리는 재인. 선생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하면 과연 백무는 선생의 초상과도 같은 역할이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선생께서는 투병의 마지막 나날 입원 중에도 매주 목요일 외출증을 끊어 병원을 나와 KBS를 찾아 유작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촬영했고, 차근차근 자신의 영정사진과 수의와 장례절차를 함께 검토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선생은 배우로서의 삶을 회고하는 인터뷰까지 마치고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병의 고통은 악랄하게 인간의 심신을 갉아 먹는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조차 말년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지극히 보편적인 일이다. 그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김영애 선생이 자신의 자존을 지키며 퇴장하기 위해 얼마나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부디 계약한 50회를 다 찍을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는 선생은, 실로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하게 배우로 살다 간 사람이었다. 선생의 영전에 찬탄과 경의를 바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배우 김영애 연보
1951년 부산 출생
1973년 MBC <민비>
1978년 MBC <청춘의 덫>
1980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1985년 MBC <엄마의 방>
1995년 SBS <모래시계>
2006년 KBS <황진이>
2011년 MBC <로열패밀리>
2013년 영화 <피고인>
2016년 영화 <특별수사> <판도라>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김영애 황진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