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가수 박혜경은 먼저 자기소개부터 했다. 오랫동안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모르는 분이 많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모르긴 힘들 만큼 그에겐 많은 히트곡이 있다. 그래서인지 박혜경은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자신의 노래를 한 곡 한 곡 소개하기 시작했다.

'고백', '하루', '레몬트리', '레인(Rain)', '안녕', '빨간 운동화', '주문을 걸어',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이렇게 히트곡이 많은 가수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출발선에 선 것이다.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돌아온 박혜경은 인디 그룹 롱디와 함께 싱글 <너드 걸(Nerd Girl)>을 들고 나타났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열린 박혜경의 기자간담회를 전한다.

목소리 낼 수 없었던 4년, 생각하기도 싫은 시간

박혜경 가수 박혜경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새 싱글 <너드 걸(Nerd Girl)>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혜경은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그룹 롱디와 함께 '너드 걸(Nerd Girl)'이란 콘셉트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가수 박혜경이 돌아왔다. ⓒ 더그루브엔터테인먼트


박혜경의 근황은 그리 밝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심한 성대결절로 노래할 수 없었다. 노래는커녕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가수로 살아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없었고 답답한 마음은 커졌다.

"제가 4년 정도 활동을 못 했어요.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아래 <슈가맨>)에 출연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그 4년의 시간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어요. 가수 하다가 식당가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힘들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엄청난 시련이었죠. 그걸 벗어난 계기가 <슈가맨>이었습니다. 방송 후 달린 수천 개의 댓글을 캡처해서 매일 읽었어요. 읽으면서 '나는 다시 노래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어요."

박혜경은 힘들었던 때를 씩씩하고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울컥할 때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다시 노래하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을까. 성대결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재활과정을 물었고, 그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었다"고 답했다.

"제 노래 '고백'도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고 이상한 소리가 나서 못 불렀어요. 심지어 이 친구들(롱디)과 첫 곡 작업할 때도 그런 소리가 남아있었고요. 성대 붙이는 연습을 계속했어요. 2년 전에는 말을 못했고, 그 후 1년 뒤에는 말은 했는데 굉장히 어렵게 말을 했어요. 이후 성대가 돌아왔지만,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재활은 머릿속의 그 기억, 그 충격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는 재활이에요."

박혜경은 성대결절로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다. 손재주가 좋아 디퓨저와 비누 등을 만드는 것에 몰입했다. 그는 "남들은 제게 '너 재주도 많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네!' 말하지만, 그것이 비꼬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 말 뒤에는 '노래나 하지'란 말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고. 이에 대해 박혜경은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노래가 안 되면 다른 거 좋아하는 걸 해야 에너지가 나와서 사니까" 하고 말했다.

새로운 시작, 롱디와 손잡고 여전히 상큼하게

박혜경 가수 박혜경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새 싱글 <너드 걸(Nerd Girl)>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혜경은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그룹 롱디와 함께 '너드 걸(Nerd Girl)'이란 콘셉트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박혜경은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 더그루브엔터테인먼트


박혜경 가수 박혜경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새 싱글 <너드 걸(Nerd Girl)>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혜경은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그룹 롱디와 함께 '너드 걸(Nerd Girl)'이란 콘셉트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박혜경은 인디그룹 롱디와 함께 '너드 걸(Nerd Girl)'이란 콘셉트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 더그루브엔터테인먼트


박혜경은 밤을 새워가며 곡을 썼는데 4년 동안 모든 게 얼어붙었는지 예전처럼 가사가 안 써졌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원래는 내가 정말 철없는 사람이었는데 마치 현실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 박혜경에게 많은 곡을 주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래,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에 인디뮤지션의 노래를 닥치는 대로 혼자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탐색하던 중에 롱디의 노래를 듣고 대표님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대표님, 롱디를 찾아주십시오. 이들과 함께해야 해요."

<4가지 맛>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첫 번째 맛은 '달콤한 맛'이다. 사랑에 관한 4가지 이야기를 담은 신곡을 차례차례 발표할 예정이며, 과거 히트곡도 재해석해 다시 발표할 생각이다. "후배 가수와 함께 할 수도 있고 혼자 할 수도 있다"며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이번에 발표한 신곡 '너드 걸(Nerd Girl)'은 롱디의 두 멤버 한민세와 민샥이 참여해 만든 곡이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롱디에게 참여한 소감을 물었다.

"박혜경 선배가 저희 롱디 음악을 좋아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저도 어렸을 때 노래방 가면 선배님의 노래를 즐겨 부르던 팬이었는데, 이렇게 함께 만든 음원이 나온다니까 꿈만 같았습니다. 작업을 함께 하며 많이 배웠어요. 특히 저는 보컬로서 녹음할 때 굉장히 머리를 많이 쓰고 많이 시도하는 편인데, 박혜경 선배님은 감각을 활용해 바로바로 끄집어내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민샥)

박혜경 가수 박혜경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새 싱글 <너드 걸(Nerd Girl)>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혜경은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그룹 롱디와 함께 '너드 걸(Nerd Girl)'이란 콘셉트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가수 박혜경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카페 파스텔에서 새 싱글 <너드 걸(Nerd Girl)>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더그루브엔터테인먼트


박혜경 역시 롱디의 두 멤버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 노래를 들려주자 주변 사람들이 '박혜경이 이렇게 요즘 음악도 할 수 있느냐'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며 "나이는 먹었지만 롱디에게 요즘의 리듬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했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성과는 그런 '배움'이라고 말하는 박혜경. 그는 음악적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 중이다.

성장을 통해 음악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딱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고집이다.

"제가 탁성이 있어요. 그게 제 목소리의 매력 같아요. 마냥 깨끗하지 않은, 마냥 미성이 아니라 까칠까칠한 목소리예요. 믹싱 작업을 할 때 엔지니어가 제 목소리를 예쁘게 가공해놓으면 바로 전화해서 제 허스키한 목소리를 지우지 말고 그대로 담아달라고 부탁해요. 목소리를 꾸미는 것을 싫어해요. 있는 그대로의 제 목소리를 지키고 싶어요."


박혜경 너드걸 롱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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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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