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7시간 50분.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이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학원을 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풍경이 됐다. 밤늦게까지 학원에 남아서 공부를 하다가, 오후 10시가 돼서야 집으로 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겪는 만성적인 학업 스트레스는 이제 국민병이다.

문제는 학습시간이라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찾기도 전에 공부를 강요받는다. 학생들에게 공부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 아닌 부모가 시키니까, 사회에서 당연시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더욱 심화한다.

하지만 이 부조리를 합리화하고, 덮어버리는 말이 있다. 바로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이다. "나중에는 나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 거다", "너도 어른이 되면 왜 내가 이러는지 이해할 거야" 등의 표현들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겪는 부조리는 성공을 위한 통과의례가 된다. 부조리는 더는 부조리가 아니게 된다. 영화 <4등> 속 준호와 그 주변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4등> 속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영화 < 4등 > 한장면

"다 너 잘되라고..."하는 말들, 실제로 그 아이를 '잘되게' 만들어줄 거야. ⓒ (주)프레인글로벌


열두 살의 준호는 수영을 좋아한다. 그저 물속에 있는 걸 즐기는 아이고, 그래서 수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능보다 대회 성적은 좋지 못했다. 영화 제목대로 나가는 대회마다 4등을 기록한다. 그러나 준호가 수영을 시작한 동기를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준호에게 결과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호 엄마의 생각은 다르다. 매번 4등을 하는 준호를 보며 속상함을 느끼며, 그 마음만큼 아들을 닦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 4등! 너 뭐 되려고 그러냐!" 그렇지만 준호는 또다시 대회에서 4등을 한다. 결국, 엄마는 광수에게 코치를 맡기게 된다.

광수는 과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천재 수영선수였다. 하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믿고 연습을 소홀히 하며, 담배, 술 그리고 도박을 전전한다. 그러다 결국 연습에 무단이탈을 하게 된다. 뒤늦게 연습장에 돌아갔지만, 돌아온 건 코치의 매질이었다. 코치는 광수를 때리며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다'라고 말한다. 광수는 이를 참지 못하고 선수를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이미 몸이 망가진 광수는 재기에 실패하고, 동네 체육관의 수영강사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그 결과, 광수는 자신의 실패 원인을, 자신에게 채찍질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데서 찾는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엄하게 대해줬다면 담배, 술 그리고 도박에 빠질 일이 없었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 광수는 이에 부합하여 준호를 가르친다. 준호가 낮은 기록을 세울 때마다 매를 든다. 안간힘을 쓰며 수영하는 준호에게 "더 빨리!"라고 외친다.

준호와 광수 그리고 한국의 학생들

 영화 < 4등 >의 한장면

한국의 많은 학생이 같은 레인에서 경쟁을 강요받는다. ⓒ (주)프레인글로벌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준호 엄마, 광수 그리고 한국의 대다수 부모 또한 학생들이 괴로움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괴롭다. 4등 성적의 수영선수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1등만이 기억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4등의 자리는 없다. 날로 높아가는 청년 실업률, 좁아져만 가는 취업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차별화돼야 한다. 좋은 학벌은 그 시작이다. 준호 엄마, 광수 그리고 한국의 부모들에게 공감이 가는 이유다.

그렇다면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의 끝은 어떨까? 영화 <4등>은 두 가지 결과를 제시한다. 준호는 광수의 매질에 지쳐 수영을 그만둔다. 그러나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라고 말하는 엄마를 만족하게 해주기 위해 다시 광수를 찾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준호는 결국 대회에서 1등을 한다. 그러나 준호는 우승을 한 후 대기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거울 속에 비친 준호는 더는 수영 자체를 좋아하던 과거의 준호가 아니다. "맞을 짓을 했다"고 말하며 광수가 자신을 때렸듯이, 동생 기호를 때리고, 1등이라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새로운 준호만이 존재한다. 준호는 1등을 했지만, 그 결과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들었지만, 준호와 달리 1등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영화는 광수를 통해 그 아이들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광수는 자신의 실패 원인으로 채찍질해줄 사람의 부재를 들었다. 자신은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부정했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광수는 준호를 혹독하게 대한다. "때려주는 사람이 진짜 선생이다, 더 때려줬다면 더 성공했을 거다" 등의 광수의 대사들은 이를 잘 드러낸다.

영화는 두 가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듣고 결국 잘 된 준호 그리고 잘 안 된 광수도 결론은 같았다. 광수는 준호에게, 준호는 기호에게로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반복 재생한다.

준호처럼 현재 한국의 학생들은 부모 그리고 사회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더 좋은 성적, 학벌을 위해 장시간의 학습시간, 목적 없는 공부를 견딘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못 버티고 이탈한다. 나머지는 부모의 기대, 사회의 시선에 부합하기 위해 부조리를 참는다. 그 결과 입시전쟁의 끝에 누군가는 준호가 되고 나머지는 광수가 된다. 하지만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를 겪은 학생들의 끝은 결국에는 비슷할 것이다. 영화에서 준호와 광수처럼 말이다.

물론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에, 영화의 모습은 일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괴롭히는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가 무한 반복되고, 또 다른 이름의 준호와 광수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학원 교습시간을 기존의 오후 10시에서 11시까지 늘리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겪는 부조리는 여전히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는 말에 의해 정당화된다. 영화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고 누군가에게 외치고 있는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멈춰야 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의 반복 속에서 남는 건 학생들이 겪는 고통뿐이다. 더 이상의 준호와 광수는 없어야 한다.

 영화 <4등> 스틸사진

더 이상 1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 ㈜프레인글로벌



4등 부조리 반복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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