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청춘물이든 액션에서든 혹은 사극이나 멜로에서든, 유아인이 표현한 인물은 '이 시대의 청년'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면서도 방황하거나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모습을 주로 맡았다는 말이다. 연기 데뷔작인 <반올림1>(2003)부터 쭉 그랬다. 본인 스스로도 "비주류의 기질이 있다"고 일관되게 밝혀왔고, 그 기질이 작품 선택의 기준이 돼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좋지 아니한가>(2007) <완득이>(2011) <깡철이>(2013)까지 이어졌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베테랑>이 그 흐름에서 벗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명백하게 오락 액션 영화임을 표방해왔고, 그 안에서 유아인은 고뇌하는 청춘 연기보다는 개성 있는 캐릭터 연기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재벌 3세 조태오라는 캐릭터는 분명 형사들(황정민, 오달수, 장윤주, 오대환 등)의 공분을 사는 악역으로 기능했지만, 그 자체로 이 시대를 사는 불완전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웃음기를 뺀 조태오의 모습에서 유아인만의 인장이 엿보였다. 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나 그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베테랑>은 오락 영화?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었을 뿐"

- 류승완 감독이 작정하고 액션 오락 영화로 만들었다. 기존의 <부당거래>와의 연관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유아인이 맡은 역할은 재벌의 적나라함을 보이기도 하고, 웃음기 역시 싹 뺀 재벌 3세 청년이다. 독립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는데 작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푸는 방식이 유쾌할 뿐이지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는 아주 무거운 주제다. 재벌 3세 조태오를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괴물이 나올 수 있을 거다. 안하무인, 자기밖에 모르면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나. 재벌 1세대가 보통 자수성가한 이들이라면, 2세대는 금수저를 물긴 했지만 후계자로서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이에 비해 3세대? 역시 금수저를 물었지만 그걸 자유롭게 사용하고 누릴 자율성이 좀 더 있겠지.

가정교육이 참 나빴던 거다. (극 중 연예인을 성노리개로 여기고, 돈으로 한 노동자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등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못 느끼지 않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싼 똥을 치워주곤 했으니 태오는 전혀 모를 거다. 책임에 대한 개념도 없기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일 뿐이다."

- 아마 태오는 혼자서 버스도 못 탈 거다. 개인적으로는 태오가 자신의 노동자를 때리고, 이를 아버지가 감싸는 모습 등을 보면서 한화 김승연 회장 일가를 비유한 건 아닌지 생각했다. 재벌가 소식이나 뉴스 등을 따로 공부하며 연기했는지.
"일단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를 걸? 그리고 딱히 신문 기사를 찾아보진 않았다. (한화 그룹 이야기는) 모르는 걸로 하자! 모르겠다. (웃음)"

- 반면 태오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있었을 거 같다. 괴물이라고 해도 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도 있지 않나.
"영화 자체는 정의가 뭔지 말하고 있고, 난 그 안에서 악의 축을 담당해야 했다. 분명 태오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연민의 코드는 있었다. 괴물이지만 처절한 심정일 수도 있겠지. 인간 모습이 정말 다양하지 않나. 태오 역시 전형적인 악이라고 정의하고 싶진 않다. 내 역할은 내가 가진 이미지와 캐릭터를 잘 조합해서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최대한 안 주는 것이었다."

 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세상에 불만 많던 배우 "행동으로 보이고 싶었다"

- 그 이미지를 소년성 내지 천진성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간 해온 작품이 대부분 불완전한 가족 내에서 내면 혹은 외부로 투쟁하는 인물들이지 않았나. 20대 한국 남자 배우 중에서 '미완의 청춘'을 가장 잘 반영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말 그대로 기사에 써 달라! (웃음) 맞다. 양친 부모가 제대로 있는 작품이 없었다. 근데 우리 부모님은 잘 계신다. (웃음 뒤 잠시 생각) 내 첫 영화가 중요했던 거 같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의 종대가 시작이었지. 흔히들 아웃사이더라고들 하는데 그런 표현 역시 그 인물 입장에선 사치스러운 말이다.

첫 영화 이후 시스템 밖으로 내몰린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배우로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알아야 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대표성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백마 탄 왕자 같은 역할보다 소외받는 친구들을 연기하는 게 좋았다. 사실 그런 친구들이 극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그리고 20대의 얼굴은 미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자체로 그게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20대지 않나."

-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쳤고 대학에 입학했다. 유아인이 살아온 삶 역시 주류와는 거리가 있지 않았나. 그게 작품에 반영되는 건 아닌지. 
"그렇다. 세상에 불만 많은 학생이었다. 근데 학생들은 원래 다 불만들이 있지 않나? 중요한 건 불만을 가졌다는 사실보다 행동을 했는지다. 분명 난 반항아 기질이 있었고,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며 그게 좀 커진 부분도 있다. 사회에 진입해서 겪게 되는 다양한 불순한 일을 통해 세상에 반기를 드는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게 누구보다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퇴는...음, 요즘에도 많이들 하지 않나. "

- 그렇지 않다. 생각 없이 잘 순응해 사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시스템을 뛰쳐나가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에이, 그렇게 보여도 그 안에는 나름 소용돌이들이 있을 거다. 나 역시 단순히 불만이 있어서 학교를 나간 건 아니었다. 생각하고 움직였겠지. 별의 별 행동을 다했고 지나고 보면 방종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아쉽지 않을 만큼 살았던 거 같다. 좌절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베테랑>의 배우 유아인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타인의 평에 흔들리지 않아...'나'를 찾는 구도자로 살다

- SNS 등을 통해 사회 비판 등 날카로운 말을 할 때 이리저리 불특정 다수에게 비난 받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유아인이란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진짜 개성 있는 배우로 인정받았을 거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요는 그 통통 튀는 모습이 안 꺾이면 한다는 거다.
"오히려 한국이라 특이한 존재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미국? 그 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 인터뷰 보면 다들 철학과 신념이 있다. 내가 거기 있으면 오히려 평범한 아이일 거다. 너무 개인주의적이라고들 하지만 자신이 소중한 줄 알기에 타인을 그만큼 존중한다. 다른 나라로 이민 가네 마네 이러는데 부러울 따름이다. 난 이 나라의 국민이고 내 역할을 찾는 사람이다. 기다리면 언젠가 세상이 바뀔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기다리나! 우리가 바꿔 가야지.

물론 작품적으로 미국이 부럽긴 하다. 20대 배우들의 선택권도 많지 않나. 운이 좋아 한국에서 영화를 하고 있고, '청춘의 아이콘' 뭐 이런 수식어도 들었지만 주류 영화에서 청춘 역할을 했던 거지 진짜 아이콘은 아니었다. 그게 아쉽다. 그리고 SNS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많은 창구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도 있고, 나 역시 요즘 친구들처럼 장난스럽게 이용하기도 한다. 그걸 또 다큐로 받는 사람도 있고..."

- 트위터, 인스타그램 계정에 유독 'sick', 'seek' 이런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단어만 보면 뭔가 갈망하며 찾는 느낌이다.
"일단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식보이(sick boy) 캐릭터를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seek은 단어 그대로 찾는다는 의미 맞다. '씩씩하게 찾아갈게' 이 정도인데 말하고 나니 엄청 오글거린다!"

- 참 한결 같다. 과거 인터뷰에서도 초심을 말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초심이 아니라 그 본질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중심이 중요하지. 우선 순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초심이 어떻게 안 변하겠나. 가끔 자기반성하며 돌아보면서 가는 거지. 동시에 너무 그 중심이란 거에 강박을 느끼고 싶진 않다. 무슨 이념이나 신념을 지켜야지! 이런 게 아니라 내 삶에서 날 발견하고 싶고, 내가 맞는 순간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우선 순위가 뭐냐고?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감동 받은 건 뭔지 그걸 기준으로 살아는 거다. 이 시대, 그리고 우리 나이가 남들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게 집중해서 중요한 결정을 하자는 거지."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질렸음을 느낄 때 방향을 틀어왔다"고 유아인은 말했다. 그는 이제 이십대를 넘어 갓 서른을 맞이했다. 이후 그가 보일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니 즐거워졌다. '나를 찾는 구도자'로서 유아인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참, 당장 차기작은 멜로 영화 <해피 페이스북>이다. "낯간지러운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다"고 말미에 그가 덧붙였다. 이 말마저 유아인스럽다.

유아인 베테랑 황정민 류승완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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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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