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텔레비젼

마이 리틀 텔레비젼 ⓒ mbc


백종원, 최현석, 정창욱. 이들은 대한민국 방송가에서 '셰프 전성시대'를 이끄는 대표 주자들이다. 하지만 6월 13일 방송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밝혔듯이 백종원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없는, 셰프라기보다는 요식업계의 대표적 CEO에 가깝다. 그에 반해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서 주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최현석과 정창욱은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지만, 각각 레스토랑의 대표 혹은 오너 셰프의 길을 걷고 있다.

백종원과 최현석은 올리브TV <한식대첩>에서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등장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에서 이 두 사람의 차별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백종원이 '백과사전'파의 지식을 현란하게 내보이는 반면, 최현석은 깐깐한 후각과 미각에 입각한 섬세한 요리평을 선보이는 정도?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는 건, 토요일 밤 늦은 시간 방영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과 KBS <인간의 조건>을 통해서이다.

백종원의 서민적 레시피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설 특집에서 정규 방송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 백종원이란 존재의 영향력이 지대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3일 방영된 8회에서도 역시나 백종원이 고급진 레시피를 알려준 인터넷 방송은 프로그램 내에서 70%대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시청률로 굳이 1등이 누군지 밝힐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매회 나머지 출연자들이 '백종원 타도'를 외치지만, 결국 백종원이 선점하고 남은 30%의 시청률 나눠먹기일 뿐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제목이 무색하게 '백종원의 고급진 레시피'는 전혀 고급지지 않은 서민적 레시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이날 그가 선보이고자 한 것은 함박스테이크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반근을 준비한 그는 비싼 부위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이어 각 가정에서 실제 준비하기 힘든, 하지만 실제 함박 스테이크에는 필요한 재료들을 적절히 생략하거나 대체한다.

우스타 소스는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 실제 가정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소스이지만, 백종원은 그조차도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토마토케첩과 간장, 식초로 대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백종원의 요리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가 완성시킨 요리는 그것을 시식해 보는 작가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여느 레스토랑 음식에 손색이 없지만, 그 과정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로 둔갑한다. 가장 서민적인 레시피로, 가장 고급진 음식을 맛보게 한다.

채팅창을 들여다보며 실시간으로 그의 요리에 반응하는 시청자들과의 조화와 더불어, 매회 그의 레시피가 세간에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그의 서민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거기에 더해 종종 등장하는 구수한 사투리, 조리사 자격증이 없다며 '레테르' 따위는 가볍게 넘어서는 그의 내공 덕분에 요식업계 CEO 백종원을 잊어버리고 권위와 서열에 지친 사람들은 열광하게 된다.

최현석과 정창욱의 특별한 요리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 ⓒ kbs2


그렇게 토요일 밤 11시대의 시간조차 백종원이란 셰프 아닌 셰프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내며 비슷한 시간대 방송되는 <인간의 조건>을 무기력하게 만들자, 시즌3에 들어선 <인간의 조건> 역시 칼에는 칼이라는 듯이 셰프들을 내세운다. 바로 백종원과 함께 <한식대첩>을 이끌고 있는 최현석과 그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또 한 사람 정창욱이 그 주인공이다. 시즌3에 윤종신, 조정치, 정태호, 박성광 등이 합류하고 있지만, 그 누가 봐도 이 시즌의 주인공이 두 셰프라는 건 단 한번만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대세 셰프를 필두로 한 <인간의 조건> 시즌3의 방향은 어떨까? 13일 방송에서 두 셰프를 중심으로 한 멤버들은 영등포구청 옥상에 마련한 텃밭에 심을 작물을 구하기 위해 경북 봉화로 향한다. 왜 하필 경북 봉화일까? 거기엔 바로 셰프들 요리의 비법이 되는 신비한 비밀의 정원, 허브 농장이 있기 때문이다.

봉화의 허브 농장에 도착한 두 명의 셰프를 비롯한 멤버들은 커다란 농장에 가득 찬 신기한 허브들에 눈과 마음과 입맛을 빼앗긴다. 이미 스타 셰프이지만 한때 셰프였던 농장주 앞에선 허브의 이름을 알아맞히지 못해 면박을 당하는가 하면, 세상에 처음 맛본 그 맛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이 만난 갖가지 신기한 허브를 구경하고 난 후, 역시나 이곳에서도 두 셰프의 주도로 멋들어진 바비큐 한 상이 차려진다. 갖가지 허브가 들어간 샐러드로 미각을 빼앗긴 멤버들은 정창욱, 최현석 조합이 만들어낸 바비큐 요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허세 캐릭터에 걸맞게 최현석은 "요리사는 만들어지지만, 로티세르(고기를 다루는 책임자)는 하늘에서 내린다"며 그래서 자신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허브 양념을 한 양고기, 삼겹살을 선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리를 남다르게 만든 갖가지 허브를 잔뜩 사들고 돌아와 그들의 옥상 텃밭에 심는다.

이렇게 두 셰프는 그들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의뢰인의 냉장고 속 평범한 식재료를 기가 막힌 요리로 거듭나게 했듯이, <인간의 조건>에서도 예의 마법 같은 요리를 선보인다. 거기에 맞춰 가끔은 그들조차 이름이 헷갈리는 허브를 옥상 텃밭의 작물로 심는다. 이들 요리의 마법은 여전히 기묘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간의 조건> 속 활약과 그들이 심어놓은 허브까지 기묘하지는 않다. 어쩐지 <냉장고를 부탁해>의 김성주의 리액션과 정형돈의 추임새가 그리워지고, 그저 옥수수만 심어도 재미있던 <삼시세끼>가 떠오른다. 그들의 스타성과 요리는 대단하지만, 그게 <인간의 조건> 시즌3의 공감 요소가 될 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들이 심어놓은 이름 모를 허브들처럼.

어쨌든 셰프 전성시대, 토요일 밤 공중파의 두 채널은 서민적 혹은 가장 스타성이 강한 셰프들을 동원하여 시청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들 중 누군가를 선택할지는 결국 시청자들의 취향에 달려있다. 누가 이기고 지는가 여부를 떠나, 다양한 셰프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선도하거나 추수하거나 결국 셰프 만능주의의 획일성은 한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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