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의 한 장면 ⓒ MBC


군대에 다녀온 아들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다녀오자마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애인을 만나러 다니느라 불철주야 바쁘다. 하지만 해를 넘기는가 싶더니 결국 헤어져 버렸다.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쉴 틈이 생겼다며 한숨을 내쉰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 뛰면서 하는 연애는 녀석에겐 그저 여가마저 없는 버거운 과제처럼 느껴졌나 보다. 연애가 젊음의 향유이자, 권리라 여겨졌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지난 26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는 이렇게 연애조차 버거운 젊은 세대,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세대가 아니라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1회 인디뮤지션 대상을 받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과 함께 전했다.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어쩌면 사랑이란 사치다. 빚을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은 해도 취직은 못 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 알바 하러 간다'(중식이 밴드의 '선데이 서울' 중)

PC방 야간 알바를 전전하지만, 그래도 노래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그 청년은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선데이 서울'이던 노래는 '아이를 낳고 싶다니'로 바뀌었다. 젊은이 중 겨우 30%만이 하고 있다는 연애를 운 좋게 8년째 하고 있지만 여자 친구는 더 이상 그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낮에 연습하고, 저녁에 공연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밤 11시부터 땅속으로 들어간다. 지하철에 통신 케이블을 깔기 위해 위험한 천장을 딛고 다닌다. PC방 알바는 통신 케이블 업체의 야간 임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단지 노래를 하고 싶은 중식이 밴드의 보컬 이야기만이 아니다.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청춘의 삶은 대동소이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며 도서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알바와 공부를 오가는 삶에 연애란 사치이다. 심지어 대학 등록금, 아니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커피 전문점의 화장실을 치우는 야간 알바를 하면서도 다시 다음 학기 휴학하는 처지에 놓인 대학생에게 역시나 연애나 결혼은 그저 저절로 포기해 버린 미래이다.

신혼집을 구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1억에서 2억. 결혼 비용은 남자 1억 5천만 원, 여자 9천만 원을 넘는다.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결혼과 그 전제 조건인 연애를 포기한다. 당장 살아가기 위해 연애할 시간조차 없다. 25~29세 남녀의 평균 미혼율이 무려 80~90%를 넘는다. 거꾸로 가는 경제 정책을 내놓은 최경환 부총리에게 순순히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다는 대자보가 연세대학교에 붙었다. 이른바 명문대 학생이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이 아니다.

 지난 26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의 한 장면 ⓒ MBC


어디 결혼뿐인가?

'아이를 낳고 싶다니...... 나 지금 니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난 재주도 없고 재수도 없어. 집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 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 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넌 지방대야. 계산 좀 해봐. 너와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뭐 애만 없으면 돼. 너랑 나 지금처럼 계속 사랑만 하며 살기로 해.'(중식이 밴드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중)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아이를 낳고 싶다고? 바보 아냐?'라고 반문하는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이 허투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가 승계해주지 않는 임시직 때문에 결혼을 약속하고 살던 애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낮에는 광장에서 시위하고, 밤에는 겨우 대리운전을 하며 연명하지만 밀린 월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이제 결혼은 꿈같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직장이 있다고 해서 나을 게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앳된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 이제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커플은 여전히 연애 중이다. 그저 만나는 시간만으로도 좋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감히 엄두를 낼 수도 없는 사안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 밤, 남자는 홀로 사는 단칸방에서, 여자는 엄마의 병구완을 위해 각자 홀로 밤을 보낸다.

결혼했다고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밥만 먹냐'는 중식이 밴드의 가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삶이 이어진다.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둘째치고,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삶에서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맞벌이를 위해 시어머니를 주말 부부를 만들며 겨우 지탱하는 삶에서 또 한 명의 아이란 사치이다. 직장에서 만든 좋은 유치원이 있지만, 직장 근처의 집값이 비싸서 아내는 경기도에서 좌석 버스를 한 시간여 타고 출퇴근한다. 종종걸음으로 퇴근해 아이를 찾아 돌아온 집. 엄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이렇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은 삼포가 아니라 선택의 기회조차 놓쳐 버리는 삶이다. 이에 대해 대학교수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문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염려한다. 실제 일본에서 40~50대 되어서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교수는 말한다. 이 상태로 가면 인구의 1/3이 줄어드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결혼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된 사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 사회. 하지만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를 보면 그런 교수들의 분석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나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꽃다울 나이의 젊은이들이 남녀 간의 구애조차 미루며 보장할 수 없는 미래의 스펙과 정규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 현재를 연명하기조차 버거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

그렇게 젊은이들을 '지옥도'로 몰아넣은 체계를 만든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석고대죄'를 올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미안했다. 경쟁과 스펙과 더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해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신기루의 그늘에서 젊은이들은 젊음을 유보당한 채, 생존하기 위해 신음하는 중이다. 그것을 그저 '문화'라 규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논하기에는 젊음이 너무 처연하다. 도대체 이들의 젊음을 보상하고 책임질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MBC다큐 스페셜-8년째 연애 중 결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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